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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으로 가늠하는 어제 먹은 저녁

by DesignBackstage

사랑, 가난, 기침. 탈무드에서 말하는 사람이 절대 숨길 수 없는 세 가지라고 한다. 난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숨길 수 없는 네 가지가 있다.


사랑, 가난, 기침 그리고 '어제 먹은 저녁'이다.


5월, 생기 넘치고 푸릇푸릇한 계절을 상징하는 달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정의 달'로 굉장히 많은 이벤트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이번 5월은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그리고 대체 휴일로 하루연차를 낸다면 6일이라는 꿀연휴가 가능하다. 어버이날까지 앞둔 상황이라 연휴 내내 저녁 일정으로 꽉 차있었다. 양가 부모 님들과의 식사, 오랜만에 내한한 친척고모님, 아들 친구가족들과의 여행 등으로 꽤 화려한 저녁이 연달아 계속 됐다. 모임별 취향에 따라 한우구이, 보쌈, 양갈비스테이크, 회 등으로 화려한 라인업이 세워졌다. 함께하는 이들과 좋은 음식으로 채우면 관계도 단단하게 채워지는 듯했다. 연휴 내내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나름의 장황한 이유였다.


그래서 모임별 취향에 따라 한우구이, 보쌈, 양갈비스테이크, 회 등으로 화려한 라인업을 세웠다. 그렇게 연휴 내내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와인도 곁들여졌다. 알코올섭취로 위장감각이 무뎌지니, 오히려 젓가락 움직임은 바빠졌다. 몸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당연한 일이지만 살이 찌고 있었다. 어제 먹은 저녁으로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더부룩한 속, 뾰루지가 올라온 얼굴,
그리고 '바지허리주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지는 청바지다. 잘 구겨지지 않는 탄탄 한 소재의 데님이 좋다. 세탁을 하고 툭툭 두 번 정도 털고 말리면 주름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관리가 간편해 좋은 것도 있지만, 치명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두툼한 소재가 옆구리살을 단단하게 감싸주며 살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준다. 눈 속임이 가능한 기특한 바지다. 반면에 가장 싫어하는 바지는 린넨바지다. 린넨소재는 통기가 좋고 얇아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지만, 내 군살마저도 시원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몇 번 앉고 일어났을 뿐인데 접히는 부분에 빳빳한 주름이 여러 줄로 생긴다. 그 주름이 사람마저 꼬깃꼬깃하게 만드는 것 같아 입기 꺼려진다.


이번 연휴 동안에 내가 좋아하는 청바지를 입고 소중한 이들을 만났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앉을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움직임이 무뎌지고 얼굴에 뾰루지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살이 찐다는 신호였다. 이런 신호들을 다 무시하고 살이 찌지 않았다고 부정하고 싶어도 현실을 정확히 보라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다.

청바지의 벨트 루프가 붙은 허리띠 부분에 주름이 잡히는 순간이다. 데님은 두툼한 소재로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다. 청바지의 주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체중 변화의 증거다. 며칠간의 과했던 저녁이 허리주름으로 깊게 파여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깊은 골짜기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깊은 인상이 써진다.

바지 허리주름은 쭈글거렸지만,
즐거운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주름 없이 미끈해졌다.
당분간 몸의 신호에 귀 기울여 허리주름도 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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