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세요. 대표님!

소통의 부재

by DesignBackstage

고양이.. 왜 고양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는 걸까? 마트 주변에 고양이 한 마리를 본 적이 없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마트로 급하게 돌아왔다. 그만둔다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직원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S마트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는 직원들이 많아 기숙사 방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입소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주거 지원금을 매달 지원했다. 그러던 중 기숙사의 공실이 생겨 지원금을 받던 직원에게 기숙사 입소를 권유했다.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숙사 관리비와 지원금이 이중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아버님의 조치였다. 하지만 직원은 근로계약서에 '기숙사 공실이 생길 시에 입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항목이 없다는 이유로 입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님이 직원에게 강경하게 이야기를 하자 직원은 고양이를 키워 단체 생활은 어렵다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님은 고양이를 그냥 다른 시설에 맡기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고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사생활 간섭에 불쾌해하며 퇴사했다. 문제는 고양이 때문이 아니었다. 각자의 처한 상황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S마트가 어려운 상황이니 이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며 양해를 구해야 했고, 직원은 기숙생활을 같이 하기 싫은 불편한 직원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날 선 말들이 오갔던 것이다. '그 둘의 서로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야기했다면 절충안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버님은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셨다. 퇴직 후에는 난을 키우며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사업을 권유받아 본 적도, 본인이 직접 운영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버님 땅에 마트를 임대하기로 했던 임차인은 시설이 거의 완공한 상태에서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잠적해 버렸다. 오랜 고민 끝에 덩그러니 남겨진 공실을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로 했다. 수많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마트가 무너지지 않고 잘 견뎌냈던 건 아버님의 결단력 있는 판단들 덕분이었다. 오랜 공무원생활로 유연함은 떨어졌지만, 상품 품질에 대해 타협을 절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신선한 식자재가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는 입소문을 타며 급성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버님은 자신의 판단만을 믿었고, 직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회의실엔 일방적인 지시만 있었다. 그날도 비슷한 회의가 시작 됐다.


"오늘 세일 전단지는 밤새서라도 마무리해" 점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회장님, 오늘 각 파트별 담당들이 부재중이어서 모든 세일품목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쇄가 내일 넘어가도 배포하는 데는 문제없으니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요?"


라며 나는 유일하게 아버님의 말에 의견을 달았다. 이대로 회의가 끝나면 진짜 직원들이 밤 셀 판이었다.

"그래? 일정에 문제없게 하자고!"라는 말로 회의가 마무리 됐다. 나는 재빠르게 아버님을 따라 나가며 마트 구석에서 말씀드렸다. "아버님 절대 직원들에게 밤새라, 근무시간 외에 더 일하라라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노동법에 위반돼요! 권유형으로 바꿔서 말씀해 주세요! "일정에 문제없도록 하자! 혹시 내가 빨리 컨펌해야 하는 게 있을까? 요정도로요."


불 같이 화를 내시던 아버님이 혹시라도기분 나빠하실까 봐 걱정됐지만, 직원들의 사기저하도 두려웠다. 아버님은 "그래, 알았다."라는 짧은 말로 답하셨다. 아마도 그동안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어서 잘못된 말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신 듯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있는 점장에게 말을 전했다.


"매출이 자꾸 떨어져 조급한 마음에 회장님이 좀 날 선 말들을 하시는데 결코 직원분들에 대한 불만은 아니에요. 아시죠?"


아버님은 떨어지는 매출에 가려져 직원들의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직원들의 작은 행동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장점 위주로 아버님께 전달했다.


"ㅇㅇ팀장이 새로 거래한 제품이 아주 좋던데요?"


"oo대리가 고객들한테 밝게 인사하니까 마트 분위기가 확 살더라고요!"


아버님은 직원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나를 감시자로 여기던 직원들이 조금씩 내게 건네는 말이 많아졌다. 업무 관련 질문뿐 아니라, 힘든 업무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들어주는 일이었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조금씩 개선되는 게 보였는지, 아니면 직원들과 아버님의 가교역할을 하려는 내 진심을 읽었는지, 내 직함을 직원 부르지 않던 직원들이 직함을 붙이기 시작했다.


"들어가세요. 대표님!"


퇴근길 인사가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나를 감시자로 여기던 직원들이 이제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정해 준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자주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아버님께도 사소한 장점들을 빠짐없이 전했다. 조금씩, 정말 조금씩 마트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하나씩 채워가는 일이 S마트를 더운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다양한 문제들도 이렇게 작은 것들부터 채워나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며칠 뒤 아버님과 어머님이 나누시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직원들이 이대표를 부를 때 직함을 안 붙이더라고,
내가 깍듯하게 대하라고 호통을 몇 번 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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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 직원 간의 소통의 부재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한 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온몸이 붉어졌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하나로만 볼 수 없고, 여러 요인들이 모아져 생긴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어쩌면, 아버님의 호통이 가장 강력한 솔루션이 였는지도 모르겠다.


아.. 어렵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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