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 그 너머
깨진 타일을 수선하고, 안내데스크 위에 CCTV영상이 송출되는 모니터를 설치했다. 기대 목표는 단 하나였다. 도난사고 방지! 목표가 분명했기에 해결책도 명확하리라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CCTV가 켜진 이후 도난 사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그건 바로 직원들의 태도였다.
CCTV의 눈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된 탓일까? 묘한 압박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고객 앞에서 좀 더 친절해졌고 고객 요청에 빠르게 반응했다. 깨진 타일 교체와 CCTV 설치는 단순히 도난을 막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무려 서비스 품질까지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사실 불친절하다는 고객 불만이 많았던 S마트는 여러 번의 서비스 교육을 진행했었지만 고객 불만접수가 계속 이어지며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 변화는 더욱 뜻밖이었다.
고령층의 고객들이 장을 볼 때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이 있다. 허리를 굽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 차로 옮기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짐을 실어 달라고 직원들에게 요청한다. 내가 출근한 지 며칠 안된 그날도 한 고객이 직원에게 부탁을 했다. 그 직원은 두리번거리며 다른 직원을 찾다가 각자 다른 일로 바쁜 걸 확인하고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실어주러 갔다. 그 직원이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본인도 업무로 바빴었기에 대체할 직원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바쁜 업무 때문인 건지 혹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고객응대가 차갑고 건조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목격한 그 직원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쌀 20kg와 생수를 계산하는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
"옮겨 드릴까요?"라는 질문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한두 직원들의 이런 친절한 행동은 꽃향기처럼 마트 전체에 향기롭게 퍼져 나갔다. S마트 안내데스크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은 항상 안절부절이다. 온갖 불만접수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고객이 다짜고짜 제품을 교환하겠다고 성난 얼굴로 왔다. 집에 와서 보니 사이즈가 달랐다고 다른 사이즈로 교환해 가겠다는 요청이었다. 본인이 잘못한 일인데 왜 성을 내는지 나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안내대의 직원은 이런 직원들을 많이 보아왔다는 듯이 고객의 불만에 같이 맞장구를 치며 응대했다.
"그러게요, 이 제품이 사이즈 표기를 너무 작게 해 놨네!"
"그렇다니까! 내가 집에서 펼쳐보고 깜짝 놀랐어! 교환해 갈게요!"
반말인지 존대인지 모를 오묘한 화법이 마치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직원들이 친절해지니 S마트의 공기는 생기로 가득했다. 화가 난 상태로 온 사람을 고객들을 상대하는 건 일반적인 고객을 상대할 때보다 배로 힘들다.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얼굴이 굳어져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복지관에서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열무를 사갔는데,
세상에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바꿔줘!
내가 만든 열무김치로 국수 담가먹는 걸 다들 좋아하는데 이걸로는 못 담가!
사실 고객들을 만나며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 개 있었다. S마트는 5만원 이상 주문 시 근처지역에 배달이 된다. 전화와 문자로 주문을 받기 때문에 주문방식이 어렵지도 않다. 무거운 물건을 구입할 때는 주문배달을 하면 그만이었다. '무거운 짐을 들기 힘든데 왜 배달을 안 시키지?', '불만사항을 이야기하기 전에 배경설명이 왜 이렇게 길지?' 궁금했다. 가만히 불만 사항을 듣다 보면 S마트에 대한 불만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에게 서운하게 했던 일, 식당 손님이 터무니없는 것을 요청한 일, 누군가 자신 집 앞에 쓰레기를 투기한 일 등 그들의 일상에 속상했던 일을 더해서 1+1으로 불만을 접수했다. 열무구매고객처럼 은근히 자기 실력을 뽐내는 고객들도 많았다. 아들이 사준 음료가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는 고객,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는데 당신 식단에 꼭 필요한 치아시드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는 고객처럼 정말 다양한 이야기 들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가 궁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로켓배송은 시간을 아껴주는 효율적인 소비라면, S마트 장보기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채워지는 관계적인 경험이었다.
노인들의 행복은 단순히 소유에서 오지 않는다. 최근 연구(EJ Kim et al., Sustainability, 2024)는 경험에 기반한 소비가 노인의 행복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여가와 문화, 체험을 수반하는 소비는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만족감을 깊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S마트에서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일상을 공유하고자 했다. 고객들은 단순히 장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트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잠시 머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마트를 찾는 것이었다.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니라 놀이공간이었다. 젊은이들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서로 공감하는 사이, 그들은 오프라인세상에서 일상을 공유한다. 우리 모두는 관계 맺고자 한다. 다만 서로에게 익숙한 플랫폼이 다를 뿐.
그들이 배달 대신 직접 장을 보러 가는 이유는 결국 물건 때문만은 아니다. 물건을 고르는 순간에, 사람들과의 스치는 인연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소비가 경험이 될 때, 마트는 단순한 생활의 공간을 넘어 하루를 충만하게 해주는 공간이 된다.
이런 움직임을 알고 네덜란드 슈퍼마켓 Jumbo에서는 고령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채팅 계산대(Chat Checkout)를 도입했다. 계산대는 보통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지나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상품을 계산하는 동안 직원과 고객이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이를 적극 지원하며,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회적 해법으로 삼고 있다. checkout은 호텔에서는 퇴실의 의미로 쓰이지만 마트에서는 계산대의 뜻으로 쓰인다. 마트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채우는 공간이라면 이곳도 checkout이 퇴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게 맞을 듯하다. 수많은 고객들이 오가며 웃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고객들에게 일상의 활력이 조금이라도 생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노인들의 고립감을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소한 사명감도 생겼다.
S마트는 느린 계산대를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다. 친절한 태도로 고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직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화의 시작은 상품소개로 시작하지만 같이 저녁 찬거리를 걱정해 주고, 요리 레시피도 공유한다. 제품에 관심을 가지며 묻는 이들에게 적극 다가간다. 즐거운 장보기를 끝내고 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다.
마트고객님, 체크아웃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