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세분만 모셔요!

개인 밀착 안내방송

by DesignBackstage
드라마 결말이 어떻게 됐나요?
주인공 둘이 해피엔딩 맞죠?
긴장하면서 보시느라
눈이 좀 피로하지 않으세요?
바로 지금 필요한 건 루테인입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지금 서두르세요!


드라마 끝나고 채널을 돌리는데 홈쇼핑 채널에서 쇼호스트가 같이 드라마를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쇼 호스트들은 모든 채널의 시청률과 주 고객들이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까지 모두 분석하고 있는 듯했다. KB국민카드 분석에 따르면 60대 이상이 TV 홈쇼핑 매출에서 3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그다음은 50대 (33%), 40대 (21%), 30대 (9%), 20대 (2%) 순이었다. 50-60대분들의 홈쇼핑으로 제품을 구매한다고 한다.


그들이 홈쇼핑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제품라인업, 푸짐한 사은품과 배송서비스까지 다양한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홈쇼핑의 가장 큰 매력은 다름 아닌 친근함이었다.

쇼호스트들은 단순히 상품만 설명하지 않고, 일상 이야기, 가족 얘기등 경험담을 나누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 연말 모임 나가서 힘 좀 주고 싶잖아요,
그럴 때 요거 하나 탁 걸쳐보세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 같고, 어릴 적 라디오 사연을 읽어주는 듯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즐거워 그들 수다에 넋을 놓고 보다 보면 이미 결제가 끝나있었다. 그렇게 다크브라운 새치염색약 12개가 내 옷장아래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 뒤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난 종종 홈쇼핑을 본다.


내가 매일 듣는 S마트 안내멘트는 홈쇼핑의 친근함에 한 가지를 더한 특별함이 있다. 바로 개인맞춤형 서비스다. 특히 수신코너에서 들리는 안내멘트가 정겹다.

"아니 저번주엔 왜 안 왔어요! 팔을 다치셨는가! 그럼 기운 나게 장어구이 1kg는 잡숴야지!
요즘 남편이 기운 없으시죠? 왜 그런지 아셔요? 전복 먹어야 할 땐데 안 잡숴서 그래요!
식당 손님들만 챙기지 말고 요 낚지 한 마리 사장님 데쳐드시면, 사장님 기운 나고 사장님 기운 나면 식당매출도 오르고! 낚지를 먹어야 식당매출이 오른다! 이겁니다!"


손님들에게 안부도 물으며 친근하게 말하다 상대에 맞는 수산물을 척척 추천해 주는 멘트들이다. 요즘 대형 마트에서는 못 들어 본 멘트에 당황했다. 혹여나 고객이 안 받아주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50-60대 고객들은 안내멘트를 좋아했다. 긴 방수 앞치마를 입고 인이어 마이크를 낀 수산팀장의 수려한 말솜씨와 현란한 생선손질로 일단 고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멘트가 시작되면 팬미팅 현장처럼 주변에 고객들이 모였다. 이거 오늘 안 먹으면 큰일 난다는 막무가내식 협박멘트가 나오고 나서야 마이트가 꺼졌다.


친근하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는 경계가 사라진다. <설득의 심리학 2>에 따르면 호감과 요청 수락에는 강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보내는 호의는 '빚을 졌다'는 의무감에서 더 나아가 호감으로 번진다는 것이다. 내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행동이 상대에게 호감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고민 있는지는 AI생성형 알고리즘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가족의 건강을, 사업장의 매출을 걱정하고 안부를 묻는 이들을 자주 만나긴 어렵다. 자주 가는 마트에서 그런 안부를 물어봐주면 그들은 '빚을 졌다'의 의무감에 장어와 낙지, 전복을 카트에 담는다. 하지만 이런 맞춤형 안내멘트는 몇몇 단골들에게만 전달이 가능하니 쇼호스트처럼 큰 매출을 올리는 건 어려웠다. 고민이 깊어지던 중 며칠 전에 만난 동네 친구가 생각났다. 그녀는 마트 가는 걸 좋아했다. 고기는 코스트코, 야채는 농협, 생선은 이마트로 옮겨 다니며 비교하며 구매했다. 마트를 자주 다니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품고 말했다.


마트마다 진열되어 있는 제품이 다 달라서 보는 즐거움도 있는데 새로운 요리법을 찾는 게 좋아. 매대에 꽈리고추가 있으면, 그걸로 멸치를 볶아 먹을지, 삼겹살에 같이 구워 먹을지 상상하게 돼! 그러다 새로운 요리법이 생각나면 사 오는 게 재미있어!


꼭 필요한 제품만 구매하는 이들도 있지만, 식사메뉴를 뭘로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마트를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안내멘트를 할 때 제품에 다양한 요리를 제안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수산팀장에게 귀띔했다. 물론 기존 안내멘트도 너무 좋다는 말과 함께. 매대 결품들을 채운 뒤 팀장은 다시 마이크를 켰다.


딱 세분만 모셔요! 내가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오징어 세 마리 만원에 드릴게요! 사장님 없을 때 몰래 드리는 거니까,
빨리 오세요! 저 이러다 정말 혼납니다!

오징어가 왜 세 마리 묶어 파는지 아세요?
한 마리는 숙회로, 다른 한 마리는 볶음, 그리고 요즘 무가 맛있는 계절 아닙니까!
오징어 뭇국 해 드시면, 만원에 만찬이 가능합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여기가 어디다? S마트입니다!


고객들을 위해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호의를 베푼다는 것을 극대화한 방송이었다. 호의가 호의인 줄 알게 하면 그들이 호의를 베푼다는 점과 수량이 부족하면 간절해지는 심리를 적절히 섞은 멘트였다. 거기에 눈앞에 사장이 버젓이 있는데도 언급하는 대담함과 조금 전에 전달한 내용까지 소화한 멘트까지 대단했다. 먼발치에서 팀장에게 엄지손을 추켜올리며 응원을 보냈다.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는 건, 호의를 베푸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적절히 전달되었을 때 몸도 움직이게 된다, 오늘의 오징어 완판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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