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만, 괜찮지 않다.
분명 오픈시간이 지났는데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S마트 정문이 바로 보이는 곳에서 주차하고 매장으로 가는데, 계산대에 있어야 할 직원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단체로 직원들이 결근할 이유가 있었는지 빠르게 어제 일을 복기했다.
신선코너 청결 점검을 자주 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결근으로 이어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어 서둘러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직원들이 보였다. 모두 허리를 숙인 채 바닥을 쓸고 있었다. 손님이 없자 계산대 직원들까지 합세해 매장 바닥을 쓸고 있었던 것이다. 추석이 지나자 한동안 매장에 고객들의 발길이 뜸했다.
우리는 종종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성장기인 자녀가 일찍 잠들었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론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잠을 줄였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여행을 할 땐 많은 경험을 하고 싶지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여행까지 와서 바쁘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 마트가 깨끗한 상태로 유지됐으면 좋겠지만, 청소할 시간 없이 고객들이 많이 방문했으면 좋겠다.
여러 번의 빗자루질이 끝나고, 오랜만에 한가로운 하루를 보냈다. 고객이 없으니 자연스레 계산대 직원들과 스몰토크가 이어졌다. 다음 주 입대하는 아들 때문에 연차를 냈던 이 과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차를 취소해야겠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애 키우는 거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저한테 말도 안 하고 입대를 미뤘더라고요.”
그 말에 모두 웃음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이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며 각자의 자녀 이야기를 경쟁하듯 이야기했다. 나도 며칠 전, 등교 길에 가방을 안 메고 간 초등학생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모두 여고생들처럼 소리 내 웃었다. 그때만큼은 직장 동료가 아니라, ‘엄마’라는 동지애로 단단히 이어져 있었다.
잠시 웃고 쉬는 사이 6-7명의 대학생 무리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들어왔다. 한 팀은 음료와 공산품을 쇼핑하고, 다른 한 팀은 야채와 정육 쪽을 장 보는 듯했다. 의아하게도 상품을 꼼꼼히 살피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지만 카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며 한참을 노트정리를 하더니, 그 정리한 노트를 마치 과제 검사라도 받듯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 품목들 견적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S마트 근처에 있는 S대학교 한의학과 축제준비 위원이라고 했다. 또박또박 바른 글씨로 써져 있는 글씨가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생기 있었다. 빼곡히 써져 있는 품목에는 절반이상이 주류였다.
"한의원에 가면 술담배 하지 말라고 하던데, 학생분들은…"
말끝을 흐리자 그가 멋쩍은 듯 웃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금주를 권하는 사람들이 축제 때는 술을 찾는다는 게 묘하게 인간적이었다. 평소 고객들에게 업무 관련된 말을 종종 하긴 했었지만, 이런 농담을 하는 내가 낯설었다. 아마도 좀 전에 웃고 떠들었던 분위기가 이어진 듯했다. 묘하게 바뀐 분위기 탓인지 그 뒤로도 드물게 오는 고객들에게 능청스럽게 안부를 묻고 자주 좀 오시라는 말도 전했다.
고객과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하루. 평소에 일하며 갖지 못했던 여유와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이런 하루도 괜찮지만, 전산마감을 해보니 괜찮지가 않았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두움이 있다는 걸 새삼 느껴본다. 과연 오늘은 빛나는 하루였을까!, 어두운 하루였을까! 내일은 직원들이 청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매장을 깨끗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은 매장에 빗자루가 안보였으면 좋겠다.
괜찮지만, 괜찮지가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