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호구마트!

깨진 타일학 개론

by DesignBackstage


완전 호구야, 호구마트!
뭐라고? 호그와트?

답답한 마음에 신랑한테 전화를 걸었다. 주변 소음 때문인지 잘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마트에서 이렇게 도난사건이 많을 줄 생각도 못했다. 만에 하나 도난물품이 생긴다면 눈에 안 보이는 작은 물건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난 물품들은 대부분 가격이 좀 나가는 한우나 와인 등이었다.

고객들이 거의 없는 잡화코너에서 카트에 있는 물건들을 가방에 넣거나, 앞치마 앞주머니에 군것질거리를 담아가는 등 대담한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드러난 사건이 이 정도라면 그간 얼마나 많은 도난사건이 있었던 걸까?


"김치 한 박스에 얼마인가요? 4박스 주문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분명히 재고시스템에서 일곱 개의 김치박스가 있어서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박스에 담긴 김치는 가방에 들어갈 수 없는 사이즈였다. 김치 재고가 입고 된 후로 CCTV를 돌려봤다. 한 고객이 김치를 카트에 싣고 장을 보다 배송기사가 드나드는 창고 옆문으로 태연하게 나갔다. 배송기사가 짐을 싣고 문단속 후 나갔어야 하는데 문이 열린 상태로 나갔고, 문이 열린 틈을 타 옆문으로 나간 것이다. 순간 보통일이 아니다 싶어 눈에 띄는 물품들 몇 가지를 전산상의 재고와 비교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도난된 품목이라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고객들은 S마트를 호구마트로 생각했다. 하지만 도난방지를 위해 직원들이 CCTV앞에 앉아 감시하거나, 고객들을 따라다니며 쳐다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물건을 훔치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바꿔야 했다. CCTV속 그들이 훔쳐가는 영상을 보다 보니, 반복적으로 보이는 게 있었다. 바로 깨진 바닥 타일들이었다.


1982년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Q.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L. 켈링(George L. Kelling)이 제안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생각을 스쳤다. 건물의 유리창이 깨졌는데 이를 그대로 두면, “여기는 관리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신호가 되어 사람들이 더 많은 쓰레기를 버리거나, 낙서를 하고, 결국 강도나 마약 범죄 같은 중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즉, 작은 무질서를 방치하면 사회적 규범이 무너지고 범죄가 확산된다는 것이었다.


도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이곳은 관리가 잘 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먼저 깨진 바닥의 타일을 바꾸는 게 급선무였다. 바닥은 각기 다른 소재로 시공되어 있어 통일감이 없었고 어수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실력 발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십여 년간 인테리어 기획 전문가 아니었던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깔린 바닥재를 하나로 깔끔하게 시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야채, 청과 쪽은 신선함과 청량함이 돋보일 수 있게 블루톤의 그레이 컬러로, 매장 전체컬러는 공간이 환해 보일 수 있는 베이지 컬러로 모든 구상을 끝냈다. 다니던 회사에 연락해 공장 출고가로 타일을 납품받기로 했다. 시공팀도 소개받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마트를 운영하며 한 번에 쉽게 되는 일은 없었다.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트렌드 분석은 제철 채소처럼, 3화 참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관리가 잘된 안전한 마트를 만들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난 내가 잘해 낼 수 있다는 이유로 스타일리시한 마트 바닥 전체를 리뉴얼하려 했던 것이다. 자꾸 뭔가를 덧씌우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처음 의도에 맞게 결국 깨진 타일을 교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간 속 작은 장치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카페 안에 눈 모양 포스터를 붙여두었을 때 손님들이 자리를 떠날 때 테이블 위 쓰레기를 정리해 치우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실험결과처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이 손님들을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게 했다. 마트에 눈모양 포스터를 붙이는 대신 CCTV 화면을 고객 모두가 볼 수 있게 입구 옆쪽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고객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세상살이에 영악하지 못해 ‘호구’라 불리는 이들은, 상대도 자신에게 잘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를 너무 믿었다는 점일 것이다. S마트는 고객에게 좋은 식재료를 제공하고, 고객은 물건을 구매하며 마트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기를 꿈꾼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구가 되어 신뢰로 꽉 찬 관계가 되길 말이다. 호그와트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일까? 고객과 마트 모두가 믿음을 갖게 하는 곳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나는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믿음이 만들어낸 힘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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