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하얀 새벽달이 걸려있는 이른 아침의 출근길.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선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 잠시 눈을 감고 지난 여행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출발하기 몇 주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싸던 배낭.
긴 비행의 끝에 도착한 타국의 낯선 공기.
눈이 마주치면 사르르 웃어주던 나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온통 붉은 벽돌로 둘러싸여 단숨에 두 눈을 사로잡았던 어느 도시의 불빛.
오롯이 나의 여행이 시작되던 순간.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사랑스러웠다.
낮에는 물을 가득 채운 물통 하나와 배낭을 달랑 메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몇 보인 지 셀 수도 없이 발바닥이 후끈후끈할 만큼. 밤이 되면 국적도, 나이도 모르는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준비라도 한 듯 음식을 펼쳐놓고 서로의 여행담을 나눴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을 나눠 들을 때엔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리라 마음먹게 해 새로운 여행지로 발길이 닿게 했고, 병째 기울여 마시던 이름 모를 맥주도 퍽 맛있진 않았으나 아주 시원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분명 그 시간 속에 살고 있음에도 어쩐지 이 모든 것들이 몹시 그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길 위에서 자주 카메라를 들었고, 어느 날은 손이 저리도록 길게, 어느 날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남겼다.
비록 물질적인 소비는 많았지만 정신적인 풍족함을 얻기에 아깝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그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질 때 즈음엔 평생을 곱씹어도 단물이 빠지지 않을, 달디 단 추억을 얻었음에는 확실했다.
떠남엔 망설임이 있었어도 후회는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보고 싶은 이들 생각에 잠시 ‘돌아가고 싶다’ 하는 먹먹한 마음이 들어도 여행길 위에서 만난 또 다른 인연에 금세 그 그리움은 접히기도 했으니까.
짧다면 짧은 내 인생에 큰 파동을 일으킨 나만의 역사적인 사건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이만큼 내가 열정적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능동적이고, 부지런했으며, 용감했던 경험은 오로지 여행, 오직 여행밖에 없다.
또다시 하릴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를 때에 책갈피를 잔뜩 꽂아놓은 추억을 펼쳐보고 싶어져 써 내려가기 시작한 지난 여행의 기록이 혹여 누군가에게 여행의 동기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게 되고, 여행의 매력에 퐁당 빠져서 '아. 나도 떠나고 싶다!' 하는 여행 중독자들이 한 분이라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