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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Apr 13. 2023

가난한 여행자의 무식한 마추픽추 모험기(上)

Machu Picchu, Peru

가난한 여행자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자산일지어다.

무식해야 용감하다고 했던가. 약 70일간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떻게든 되겠지~ 여차하면 어디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지, 뭐! 싶은 가벼운 마음만큼 가벼운 지갑으로 떠나왔던지라 계획해두었던 페루 여정의 예산보다 비싼 페루 레일을 타는 선택지는 내게 없었다.


그렇다면 마추픽추를 가지 못하느냐? 아니! 비록 설거지는 아니래도 몸으로 때우기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렇게 오른 마추픽추로 가는 길의 첫 번째 관문. 쿠스코에서 이드라로 향하는 질주가 시작되었다. 무려 7시간의, 듣기만 해도 엉덩이가 저릿한 시간…! 모두가 봉고차에 오르기 전 비장한 마음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아, 미리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잊지 않고.


그렇게 10여 명이 족히 되는 인원을 태운 봉고차는 편안하게 달리는 듯했으나 가볍게 덜컹거리던 것이 이내 온몸이 덜덜덜 떨릴 만큼 정돈되지 않은 비포장도로에 올랐고, 그마저도 꼬불꼬불한 곡선을 그리며 차 한 대나 겨우 지나는 폭을 외줄 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가 자칫 핸들을 삐끗하기라도 하면 오늘 처음 만난 이들과 다 같이 손을 잡고 저승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부산에서 왔다던 옆자리 언니에게 '우리 이러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니 '죽기밖에 더하겠나. 그래도 동무는 많아서 외롭진 않겠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언니의 얼굴도 꽤나 창백했다. 오 마이 갓.

더욱 아찔해진 마음에 두 눈 질끈 감고 세상 모든 신에게 기도를 날렸다. 제발 무사히 도착하게 해주세요. 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단 말이에요…!

한참을 달리던 중간에 자동차 정비소까지 들러 불안한 마음을 증폭 시킨 후에야, 겨우겨우 살아서 도착한 두 번째 관문. 7시간 동안 구겨져 있던 몸을 일으켜 땅에 발을 딛자마자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으으으.


크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11km의 페루 레일 지평선. 이제 이 기찻길을 내 두 발로 직접 걸어가야 하는 시간. 이미 시계는 오후 3시 즈음을 가리키고 있으니 상상만 해도 오싹한 어두컴컴 기찻길을 걷고 싶지 않다면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쉴 틈 없이 걸어야 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생각을 비운 채 부지런히 발을 굴리고 있으니 저 너머 어딘가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처음에는 환청을 들은 듯했다. 다시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이건… 분명한 기적소리. 페루 레일의 기적소리였다! 그만큼 현실감 없는 기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레일의 건너편에서 걷던 사람도, 앞서 걷던 사람도, 뒤에서 걷던 사람도 약속이라도 한 듯 뒤돌아 한참이나 걸어왔을 레일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그중 누군가가 "Train!"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다면 저-기 멀리서 증기를 뿜으며 달려오는 기차의 첫 장면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모두 레일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고, 누군가는 두 눈에 담기 위해 가만히 바라보았으며, 또 누군가는 여태 가방에 저 카메라를 넣고 다녔다고? 싶을 만큼 커다란 대포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일순간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방향을 따라 부드럽지만 강한 바람이 일었다. 주변에 있던 나무들은 녹음의 초록 파도를 만들어 냈고, 조용히 울던 이름 모를 새는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날갯짓을 할 뿐이었다.

쨍한 파랑의 기차가 만들어 낸 낭만의 순간. 짧은 순간을 스쳐 지나간 기차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겨서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가난한 여행자의 삶도 살아 볼 일이다.

음. 낭만은 낭만이고, 그래서 이 레일의 끝은 어딘데…?

조금씩 몰려오는 피로감과 땀에 절은 몸뚱이를 따뜻한 물로 씻어내고, 어디든 좋으니 몸을 뉘이고 싶었다.


분명 여느 때보다 가볍게 챙겨왔을 배낭의 가방끈이 내 어깨를 파고들어 마치 돌덩이를 등에 진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질 때 즈음 이윽고 보이기 시작한 기찻길의 종착역. 마추픽추의 도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entes)에 도착했다! Olé(만세)!

분명 우리는 아침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는데 이미 해는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따뜻한 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 온몸이 흐늘흐늘 녹초가 되어 도착한 이곳의 첫인상은 '기묘하다'.

유황 온천수가 흐르는 곳이어서 그런지 푹푹 찌는 계란 냄새와 축축 처지는 습도. 쓰레기통마저 요상한 개구리 모양으로 세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도시라. 확실히 기묘하긴 하다.


더 기묘했던 것은 '따뜻한 물'이라면서 우리가 묵던 호스텔에선 왜 따신 물이 나오지 않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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