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ar de Uyuni, Bolivia
노을 질 무렵의 우유니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던, 마치 수채화를 풀어 놓은 그림 속으로 들어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한 현실감 떨어지는 풍경의 연속이었다.
황혼에 젖어든 사막 한가운데에 떨궈진 여행자들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와닿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왼쪽, 오른쪽을 보다가 한 바퀴를 돌아 빙 둘러보아도 지금 이 장면이 말이 되는 거야? 하고 의심부터 하게 만드는 환영 같은 것이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무렵의 우유니는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채로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적당히 선선했다. 가만히 있노라면 스며들기 좋은 풍경이다. 나 평생을 머물 곳을 찾는다면 이곳이 좋겠어. 그런 막연한 마음을 먹게끔 한다. 우유니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일일 가이드가 살뜰히 챙겨온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석양에 녹아들 때 즈음, 주변을 떠다니는 여러 가지 소리들 속에서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눈길이 향하는 곳에 뭉쳐있던 한 무리에는 페루의 마지막 밤, 술잔을 기울이며 안녕을 나누었던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어! 언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침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익은 이를 만난다는 건 일상에서 마주치는 우연보다 더 크게 와닿기에. 언니는 잠시간 실눈을 뜨고 내게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이내 알아본 듯 이전에 보여줬던 상냥한 웃음으로 답했다.
"언니, 살 좀 탄 것 같아요. 어디 좋은 곳 다녀왔어요?"
"어우, 얘. 말도 마. 이거 다 우유니에서 탄 거다. 너도 선크림 꼼꼼하게 잘 발라. 너는 살 좀 빠진 것 같애. 음식 입에 잘 안 맞아?"
"어우, 언니. 말도 마세요. 저 도시 이동할 때마다 물갈이해서 죽겠어요. 이제 약도 없는데."
우리의 이야기는 틈이 생길 줄 몰랐다. 대부분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보다 어 맞지, 맞아요! 하며 공감하는 마음들뿐이어서, 각자 떨어져 있었어도 사실은 같은 여행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꺄르륵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우리는 남미보다 절반 이상 좁은 땅덩이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한 번을 스치지 못한 서로였다. 남미라는 미지의 땅으로 모여 발걸음을 맞추고,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끝에는 앞날의 안녕을 빌어주며 헤어졌다.
인생을 하나의 선으로 본다면 그 위로 작디작은 점을 찍고 간 그들을 다시 마주쳤을 때, 또다시 우리가 됐다. 낯선 이를 보던 딱딱한 얼굴이 솟아오르는 반가운 마음으로 흐물텅 녹아 이윽고 웃는 얼굴로 '어! 우리 또 보네요!'하며 손을 내밀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사진 찍어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음에도 다들 기다렸다는 듯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한다.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걸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우유니의 지평선 저 너머, 뜨겁게 지는 석양을 등지고 한곳을 바라보며 순간을 남겼다. 비록 실루엣으로만 남은 사진 몇 장이지만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고 있는 얼굴일 거라는 것을.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떠올릴 수 있는 근사한 추억거리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짧은 마주침은 순식간이며 두 번째 안녕을 고할 시간이다. 서로 또 보자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각자의 발길은 또 다른 곳으로 향하겠지만 혹시 아는가. 어딘가에서 반가운 얼굴로 스칠지. 그때에 또 웃으며 같은 마음의 여행기를 나눌지. 바라건대 스치는 모든 이가 당신에게 상냥하길, 머무는 시간 내내 빈틈없이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