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뜬금없지만, 연애란 곁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연애는 오래갈 수 있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여행도 같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떠날까 말까, 떠남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곁에서 한 명이라도 떠남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응원이 인생에 있어서 첫 여행이든, 먼 나라의 오지이든 떠남의 선택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아. 여행 갈까? 말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는 일단 무조건 전자를 지지합니다. "떠나!"라고. 물론 KTX의 첫차 표를 끊을지, 먼 나라의 국적기 표를 끊을지 어디로든 떠남의 선택은 그 친구의 결정에 따라 달렸지만요!
화창했던 어느 날. 친하다고 하기에는 아직은 어색하고, 안 친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웃겨서 짜증이 날 정도로 쿵짝이 잘 맞는 묘한 사이의 지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더랍니다. '너는 여행이 정말 좋은가 봐. 여행 얘기만 하면 눈이 반짝반짝하네. 여행이 왜 좋아?'
이 말을 듣고선 제가 스크린 너머로 오랫동안 응원하던 가수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가 삶에 있어서 노래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던 장면이었는데요, 막 엄청 신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덤덤하게 말하던 그의 눈에는 조용히 반짝이는 별이 떠있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와, 나도 저렇게 반짝이며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길까?'라며 그를 참 닮고 싶었는데, 이 친구가 보기에 별이 떠있던 그의 눈과 조금은 닮아 있었을까요? 아무튼, 그래서 여행이 왜 좋냐면요!
비행기표에 찍힌 출국 날짜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바로 내일 떠날 것 처럼 배낭을 꾸리는 사람인지, 막상 떠나는 전날 밤 주체할 수 없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는지, 이른 아침에 눈 뜨는 것이 평생의 숙제같이 느껴지던 내가 조식을 먹기 위해 기꺼이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내 발길을 붙드는 풍경이 화려한 도시인지 아니면 벌거벗은 대자연인지, 자리가 꽉 찬 레스토랑에서 난감한 표정의 낯선 이에게 기꺼이 내 옆자리를 내줄 수 있는지, 밤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골이 삼중주로 가득 찬 한 칸짜리 도미토리에서도 꿀잠을 잘 수 있는지,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나의 몰골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지구 반대편의 길고양이와 길강아지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딱히 누군가에게 뽐낼 만큼 멋진 모습들은 아니지만, 떠나지 않았다면 모른 채 살아갔을 내 모습이 꽤 웃기고 괜찮은 녀석 같더라고요. 어렵게만 느껴지던 내가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죠. 너 이런 사람이었구나? 좀 마음에 드는데? 하고요. 그래서 여행이란 ‘내가 모르던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시간이 지나고 지날수록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단단해지고만 있어 큰일이네요. 어쩌겠어요. 아직 내 안엔 모르는 내가 많다는 핑계로, 혹은 정말로 스스로를 모르겠다고 느껴질 때 즈음 '나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야겠어!'라며 또 짐가방을 꾸리고 있겠지요.
제 이야기가 그대 곁에 잘 머물다 갔을까요? 그대의 여행 버튼이 살짝 눌러졌을까요? '아 여행 가고 싶다!'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 톨이라도 들었다면, 그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떠날까 말까 망설이면서도 사실은 출발선 가장 가까이에 서있을 당신이 크게 한발 내딛기를. 모쪼록 상상만 하던 그곳에 닿아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지개를 만나기를. 그래서 당신만의 여행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자, 이제 당신의 차례예요! Shall we go on a t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