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앓던 청주병
청주 갈래
잊을만하면 그녀의 입에서 나오던 말
청주에 뭐가 있길래
나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건 매 한 가지인데
힘들 때면 유난히 청주 간다는 말을 달고 살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진짜로
청주에 갔다.
우리가 만난 2016년
그녀는 집을 구하기 전 큰아빠 댁에
방을 하나 빌려 살고 있었고
나는 외대 앞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노원구와
동대문구
태어나 처음 보는 동네에서 시작한
독립생활이었지만
오롯이 나만을 위한 방 한 칸이
내게는 너무나 특별했다.
지방에서 놀러 온 친구,
휴가 내 잠깐 한국에 들어온 친구,
고시원에 사는 친구,
자취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친구
친구란 친구는 몽땅 초대해
‘주말에는 두시고 세시고 이 집은
빛이 하나~도 안 들어오니
우리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 먹고 잘 수 있다’며
상 하나를 둘러싸고 가난한 안주들과 함께
우리의 밤을 넘치도록 즐겼다.
반면
그녀는 나와는 달랐나 보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7평 방 한 칸이라도
내 집과 큰아빠 집은 엄연히 달랐던 것이다.
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겨울날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문을 연 가게들이
몇몇 없어 우리는 쫓기듯 경희대 앞
어느 족발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는
한눈에 봐도 야위었을 만큼 작아져있었다.
“나 아무래도, 청주 가려고”
선 넘는 상사
경계 없는 업무지시
불합리한 계약조건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이 모든 것들을 듣고도
나는 순진하게 족발만 뜯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리가 끝날 때까지
젓가락 한번 들지 못한 채,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고
그녀는 정말 청주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