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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녕그것은 Jan 26. 2022

집은 집으로 잊는다 (2)

그래서 그녀의 청주병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녀의 26번째 생일이었던 것 같다.

모던하면서도 깔끔한 네이비에

적당히 감성이 더해진 디자인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한 서울 생활과

이제는 온전히 너의 공간이 생긴 것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고심해 고른 선물을 건넸고

그녀는 예상대로 맘에 들어했다.



그녀는  달간의 휴식 끝에

프로덕션 카피로 다시 취업했다.

면접을 보는 날 우리 회사 앞으로 찾아온 그녀는

멀리서부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광고를,

강남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그 당시 피폐해진 감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쏟아내는 것 말고 채워 넣을 것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초등학생  배웠던

첼로 레슨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본가에서 용달로 악기를 받아

저녁시간에 몰래 나가 독서실 가듯,

회사 근처 악기 연습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첼로 레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연습실이 공사에 들어갔고

공사 기간 동안 잠시 첼로를 보관할 곳이 필요했다.

회사에   악기를 두기에는

너무 관심에 메말라 있는 사람 같았고

 며칠을 위해 집으로 다시 가져가기에는

몸이 피곤했다.


때마침 떠오른 곳이 그녀의 고시원이었다.

연습실과도 가깝고 며칠 안되니

잠시 맡아달라고 하자라는 기특한 생각과 함께


상관은 없지만 괜히 고가의 악기가

상할까 걱정이라는 그녀의 대답에

구석에 세워 두기만 하면

내가 알아서 가져가겠다

무작정 악기를 건넸다.


며칠 뒤 점심시간,

그녀가 출근하고 없는 방에서

악기를 가지러 가기 위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

내가 너무했다.

눈치 없이 잠옷을 선물한 내가

원래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를 다니는  취미인  알았는데

사실은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는 걸

두 평 남짓한 방을 기어코 내 눈으로 보고서야

그제서야 알게 됐다.


 첼로는  디딜  없는 방의 침대 위에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었고

나는 서둘러 악기를 둘러맨 

죄지은 사람처럼 급하게 고시원을 빠져나왔다.









2020년,

전례 없던 일이 발생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가 세상을 덮친 것이다.


동시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그녀도 서울을 떠났다.


청주가 아닌


우리 옆집으로

그녀와 꼭 어울리는 네이비 잠옷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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