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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 없는 말 나르기.

by 은주리

퇴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눈썹 문신이다. 아직 남은 검사도 한가득이고 치료 방향도 나오지 않았지만 암치료라고 하면 ‘항암’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의사 선생님이 검색하지 말라고 했지만 사람의 호기심이 그리 쉬울 리가.

‘유방이야기’라는 카페는 이미 세 번 가입 거절을 당했고 블로그만 몇 개를 보았다. ‘14일의 기적’이라며 항암 14일 이후부터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썹, 속눈썹까지 온 털이 다 빠진다 했다. 이 글을 보고 어찌 눈썹 문신을 참을 수 있겠는가. 그간 운동 때문에 (문신 후 땀 흘리기는 금지이다.) 미루었던 눈썹 문신을 드디어 할 수 있었다.

핑계 삼아 임산부가 된 혜원이, 슬기도 시술 끝나고 같이 저녁 먹자며 나연이네 샵으로 불러냈다. 일하는 곳이야 퇴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방암 진단 사실을 알렸지만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 밥 먹다 체하는 거 아닌가?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힘들게 하는 거 아닐까? 작은 혹인데 너무 호들갑인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말해야겠다 싶었다.

시술을 마치고 다 같이 닭갈비를 먹으러 갔다. 두 임산부는 아직 입덧과 호르몬 변화에 적응 중이라 힘들어 보였다.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유방암 이래. 아주 작아!”


잠시의 무거운 공기와 이어지는 걱정과 애써 이어 보는 이야기들.


“건강 검진으로 발견한 거예요? 진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밥 먹으며 전할 수 있을 정도여서. 모두의 위로와 격려를 삐딱하게나 화나는 마음이 아닌 감사의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여서.


나의 베프 보미에게도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필라테스 강사인 그녀가 이 소식을 듣고 일상에 덜 신경 쓸 타이밍을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없었다. 좋은 타이밍 따위. 그냥 질렀다고 하는 게 맞았다. 본인도 힘든 와중에 내 걱정까지 얹어졌다. 우리 존재 힘내자고 건강하자고 서로를 향한 응원을 보냈다.


제주살이의 큰 버팀목이었던 생일파티 모임에도 소식을 알렸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덕만언니.

치료 잘하고 다시 영혼의 팀 오브 투 하자는 수진언니.

나보다 더 놀라고 더 걱정해 준 현정언니.

병원 혼자 가기 힘들면 연락하라던 서주씨.

7월 생인 나의 생일파티를 시작으로 하반기 매달 한 명씩 생일이 이어졌단 모임을 올해 더디게 만난 것이 후회되었다.


인스타에도 릴스를 올렸다.


#암밍아웃 #유방암 #내가_암이라니


너무 오버하는 게시물인가 싶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응원을 받았다. 댓글과 DM에 하나하나 답을 하면서 더 씩씩해질 수 있었다. 마음은 말을 따라간다고 ‘힘낼게요.’, ‘언넝 회복하고 올게요.‘라고 쓰면서 더 힘이 났고 다 나은 것만 같았다.


마지막은 9월 첫 강습부터 함께 하고 있는 수영 동기 언니 오빠들이었다. 12월 재등록을 왜 안 하냐고 캐묻는 물음에 준비도 없이 “유방암이래요.” 하고 말았다.

물을 무서워해서 꿈도 꾸지 않던 수영인데 큰 용기를 내어 등록을 했고 진심으로 꼴찌인 나를 응원해 주는 우리 반 덕분에 3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할 때에도 크게 안아주며 모두의 기운을 나누어주었다. 치료 다 마치고 돌아오면 자리 만들어줄 테니 걱정 말라던 선생님. 눈물이 불쑥 올라와 애써 삼키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 주위에는 성실하고 바른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보고 배우며 살고 있다 생각한 적이 많다. 암밍아웃 (아직도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너무 적당해서 쓸 수밖에 없다.)을 하면서 또 한 번 느꼈다. 내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의 곁에 머물 수 있는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모두의 걱정과 위로와 응원에 부응해서 누구보다 빠르게 건강하게 치료를 마치리라 다짐한다.


그것이 가장 큰 보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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