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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킴 Feb 16. 2024

굳은살


"아빠, 나 왔어"


하굣길, 아빠의 일터에 들르게 되면, 그의 작은 등에 대고 인사를 한다.


"그래"


    멋쩍은 듯 눈을 짧게 한번 마주치더니 둘둘 말린 천 뭉치에 가위집을 내고 원단을 북북 찢는다. 가방을 내려놓고 아빠의 간식을 집어 먹으며 조용히 바쁜 그의 손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그의 등 넘어 벽에는 내 몸통만 한 여러 모양의 자 들이 걸려있다. 각이 진 자도 있고, 아메바처럼 생긴 자도 있다. 다양한 자를 이리저리 휙휙- 돌리더니 하얗고 납작한 분필로 천에 낙서를 한다. 선을 무심하게 찌익 - 긋고 숫자를 휘갈겨 써놓기도 한다. 낙서가 끝났는지 엄청 큰 쇳가위로 낙서한 천을 자르기 시작했다. 접었다가 돌려서 자르고, 양쪽이 똑같은지 확인하고는 다시 올려 재보기도 한다.


    수평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쇳가위 손잡이에는 땟국물 섞인 듯, 얇은 천이 둘둘 감겨 있다.  자세히 보니 한 가지 색이 아닌 하얀색, 보라색으로 두 가지 색이다. 하얀 천은 오래돼 여기저기 닳아 찢어져 있다. 보라색 천은 저번 주 공장 바닥에 어질러져 있던 천이 확실하다. 차가운 쇳덩이 손잡이가 배기고 아픈지 천을 감아놓는 위치가 매번 다르고 색깔도 계절처럼 다채롭다. 


    가위는 아빠 손에 붙어 있는 것 마냥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가위질에 여러 조각이 나버린 천들은 어떤 것이 쓸 것 인지 어떤 것이 옷감인지 알 수 없다. 손 빠른 가위질에 지쳤는지 밖에서 담배를 연달아 핀다. 담배연기가 아빠의 눈을 따갑게 하는지 그의 굵은 미간주름이 더 깊게 파인다. 담뱃불을 벽에 지지더니 침을 바닥에 쿠아악- 뱉고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 담배가 떠난 아빠의 손이 궁금해져 손 크기 좀 재보자고 졸랐다. 엄지, 검지, 중지, 손가락 마디 그리고 넓은 손바닥. 색깔이 다른 굳은살들이 오른손의 모양을 변형시킬 만큼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손가락으로 쿡쿡 눌러보니 하얘졌다가 다시금 살색이 된다. 아프지 않냐 물어보니 굳은살을 닮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안 아파" 


짧은 대답을 하고 뒤돌아 등을 보이더니 다시 쇳가위를 잡는다. 작은 공간에는 라디오 [싱글벙글 쇼] 두 디제이의 낄낄 웃는 소리와 철커덕 거리는 아빠의 가위 소리만 선명히 들린다.  나는 아빠의 간식을 우걱우걱 빠르게 입에 집어넣고 궁금증이 풀렸는지 아니면 뭐가 급해졌는지 입을 한 손으로 대충 닦고 가방을 낚아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가면서 그의 등 뒤에 한번 더 인사를 한다.


"나 갈게"

"응"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아빠의 대답을 들으니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도망가 버렸다. 실은 그날 학교에서 그림 잘 그렸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날이었는데 집에 다 와서 생각이 나버렸다. ‘있다가 엄마 아빠 오면 이야기해야지 ‘ 하고 배를 깔고 누워 집에 있는 라디오를 만지작거린다. 아빠가 듣던 ‘싱글벙글 쇼‘를 찾아 다이얼을 돌려본다. 


    철커덕 거리는 열쇠 소리가 희미하게 철문 넘어 들린다. 어두운 방에 실눈을 뜨고 벽에 걸린 작은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다. 물이 흐르는 소리도 나고 웅얼거리는 엄마 아빠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목이 말랐는지 배가 고팠는지 그릇 소리도 달그락 거린다.  창문을 여는 소리와 담배에 불을 방금 붙인 신선한 풀 냄새가 난다. 방문손잡이를 아주 천천히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비몽사몽인 나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는 촉감이 느껴진다.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아빠의 손이 내 살에 닿으니 여간 불편하다. 담배를 같은 손으로 폈는지 퀴퀴한 냄새도 난다. 굳은살의 오른손은 이마와 관자돌 이를 거칠게 두어 번 왕복하더니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신다. 나는 다시금 잠에 깊게 빠져든다. 


    며칠이 지난밤이었나. 아니면 계절이 바뀐 새벽이었나. 철문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고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끝가지 올려버렸다. 하지만 괴물 같은 목소리는 이불을 뚫고 들어와 내 몸을 흔들기엔 충분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머리 위까지 올린 이불을 내려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보았다. 눈이 마주쳐 버린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나의 볼을 사정없이 때릴 때도, 회초리로 종아리가 터질 때까지 만든 상처에 정성스럽게 약을 발라줄 때도, 거칠거칠한 아빠의 오른손의 굳은살이 여린 내 살갗에 어김없이 스친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잦은 마찰로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생긴 두껍고 단단한 살. 굳은살. 그것이 나에게는 다른 모양으로 생겨버렸다. 굳은살을 닮은 나의 상처들을 사과받고 싶어 단단하고 연약한 용기를 내었다. 아빠가 미안했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야, 네가 아프냐, 내가 아프냐?” 

“그렇지.. 아빠가 더 아프지”


이 대화 속 두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는 걷다가 멈춰 서고, 걷다가 멈춰 서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소통의 모양은 침묵을 크게 품고 있다.


미움 그리고 후회가 섞인 대화는 어떠한 맺음 없이 끝나버렸다.

그렇게 아빠와 나의 관계도 어떠한 맺음 없이 끝나버렸다.



사진 _분당메모리얼파크. 아빠가 잠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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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이미지 : John Batho_Pint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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