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을수록 점점 자라는 미움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사무치도록 미워했습니다.
항상 화가 나 있던 사람.
우울했던 사람.
냉정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사랑을 받지도 못하는 사람.
칭찬을 하지 못하는 사람.
위로도 하지 못하는 사람.
비난과 힐난이 대부분인 사람.
원망으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던 사람.
성숙하지 못하던 사람.
고집과 아집만 부리던 사람.
한 때 연을 끊었던 사람.
같이 있으면 남보다 어색한 사람.
그리고 평생 내 편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여기게 만든 바로 장본인인 사람.
그런 사람, 나의 엄마가 얼마 전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가 셀 수조차 없이 많은데, 아직도 그 아픔이 날것처럼 생생한데.
엄마가 치매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통 머릿속이 하애졌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미워했던 이유들이 거짓말처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건데, 이상하게 기억이 안 납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온갖 쓰레기들을 집이 터져나가도록 모으던, 내가 그토록 비난해 마지않던, TV 속 저장강박증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무용하고, 더럽고, 고약하고, 추악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삶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미움’이라는 쓰레기를 온 마음이 찢어지도록 채워넣은 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분명 존재하던 엄마를 미워하던 이유들은, 어쩌면 내가 키워낸 허상들이었을까요.
돌고 돌아 방황을 하면서 마음에 미움을 없애는 것만이 가장 평온하다는 진리를 깨달았지만, 나의 미움들은 유독 너무나 깊고 선명해 절대 없앨 수 없다 믿었습니다.
미움을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쑥쑥 자랐던 것일까요.
엄마와의 사이는 그저 슬픔과 괴로움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손주들의 사랑 표현에도 늘 냉담했던 엄마가 손하트까지 하며 아이처럼 웃습니다. 아프지 말라는 나의 잔소리에 너나 잘하라는 공격 대신에 아이처럼 펑펑 울고 있습니다.
엄마를 여전히 미워합니다. 그렇지만 미워했던 이유가 이상하리만치, 생각이 안 납니다.
평생 안고 살았던 저의 미움들이 무엇이었는지,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이런 말을 들었어.
처음 듣는 말이었어.
왜 그런지 말도 안 해주고 혼자 가버렸어...
나도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이상해.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로워해...
미움은 계속 자랐어.
점점 커지고 힘도 세졌어.
드디어 내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찼어...
나는...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
<미움, 조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