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난하다는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1) 기회의 땅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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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민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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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난이 무서운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위크엔더스의 스텝이다가, 우리집에서 자고 가고, 강릉에서 요가원을 차린 민경쌤하고 심적 거리 가까움을 주위에 이야기하면 다들 놀란다. 아니 그럼 남남인데, 그렇게 이야기도 잘하고, 강릉까지 찾아가서 만나요? 네, 만나죠.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고 유지되고, 내가 지키고 싶은 인연이 있다면 다가가야 하는 법이니까요.그렇게 대답은 하지만 나도 민경쌤이랑 친해진게 신기하기도 하다.
언뜻 스치는 인연으로 지나갈 수 있는 우리를 더욱 공고하게 맺어준 키워드는 "가난" 이었다. 정확하게는 가난에 대한 거부감.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가난이 죽기보다 싫었다. 정말 싫었다. 먹고사는 것, 내 마음의 여유, 하고싶은것을 맘껏 체험해보지 못하는 그 한계는 결국 가난이었다.
정말 신기한건 사람이 악쓰고 사느라, 가난이 턱끝까지 차오를때는 삶이 징글징글해지지 가난을 미워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정도면 먹고살만 하지, 뭘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 가난에 대한 반항심과 내 능력 하나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지 위해 달려야 한다는 경각심은 10대 후반, 내 20대 전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원동력과 채찍이 되었다.
내가 가장 토할 것 같은 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는 가난한 이들의 무지였다. 가난은 어디서나 소리와 냄새를 풍기지 않고 퍼져 있다. 타임푸어, 부부관계와 가족관계 사이의 정서적 빈곤, 문화적 자본의 얄팍함, 교육 수준과 생활수준, 소득수준의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 열악한 분배구조, 그리고 그런것들을 모두 관조하게끔 생각의 힘을 기르지 않는 교육과 사회 인프라. 언젠가 Vox의 사회병리학자가 사회적 취약성과 질병의 관점으로 전세계와 역사를 진단한 아티클을 보고 나도 가난이라는 키워드로 사회를 분석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토할것 같은 반항정신의 부재. 삶을 내가 더 나아지게 하려면 지금의 습관을 뿌리 뽑아야한다라는 각성의 부재.
가난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 주위에서 그렇게 사니까, 그렇겠지. 일할수록 가난해진다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불안과 허무를 연애와 소비로 푸는 사회.
다 이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말을 싫어한다. 다 그렇게 안산다. 분명히 어딘가에는 개선점이 있다. 그 개선점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으로서는 찾기 힘든거다. 그렇게 안사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flock을 지어 사니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책을 읽었을때, 원조계획과 교육 바우처는 왜 실패하는가, 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빵과 식량의 기대값이 미래에 대한 투자의 기대값보다 크기 때문에라는 분석이 있다. 그렇게 되는 거다. 위기라는 힘,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는 능력이 거세된다. 나의 한계를 잊게 만들고, 정확하게는 한계라는게 세상이겠거니 하게 만든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는(이미지금힘들기때문에) 인식은 상처와 치유의 힘, 결국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힘을 잊게 만든다.
재테크를 하고, 돈관리를 하고, 내 삶의 기반을 튼튼하게, 지금처럼 아름다운 삶을 쭉 이어나가게 하는 경제적 근원을 관리하는 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나와 민경쌤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결혼이란 한국이 못살때 한 사람이 가진 자본으로 가정을 이루기 힘드니 합치는 의미에서의 결혼관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급여소득자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가난해지는지, 우리의 한계를 이겨내고 결국 경제적 자유와 심적인 자유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뭔지. 그저 꿈, 하고싶은 것에 1-2년 돈만쓰는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가난에 대한 반기를 조용히 들었다. 반란은 하나일때보다 둘일때 더 강해지기에, 다시 만난 우리는 경제적으로 더욱 똑똑해지고 단단해져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