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Apr 04. 2023

3월, 미국: 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4) 클로이

우연한 기회로 클로이를 만났습니다. 이민 가정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지금은 글로벌 테크회사의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글로벌 회사의 미국 본사의 승진이 빠르다해도 모두가 다 승진은 하는 건 아닌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먼 출장길에서 성실하고 우수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분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회사 중 하나를 다니면서 무려 야근도 해야하는데 저녁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했었습니다. 밀크폼 버블티? 그런걸 마셨는데 이분은 저와의 커피챗이 끝나고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 역시 미친 기술업계...


공교롭게도 제가 출장을 가지던 기간에는 출장기간 시작에 모두가 아는 빅테크 M 사에서 몇백명 단위의 정리해고가 돌더니 출장기간 마지막 주말에는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을 했습니다.

https://www.seattletimes.com/business/microsoft-cuts-another-689-seattle-area-jobs-amid-cost-reductions/ 

무슨 반도체 사이클산업처럼 테크업계에서 레이오프란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친구이긴 하지만 시애틀 커뮤니티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미국 영주권자면 직장만 잃는건데 외국인 노동자는 워킹비자와 비자 스폰서십이 걸려있어서 골치가 아파집니다. 이번 출장이 눈이 뜨이는 좋은 기회이긴 했지만 마냥 좋은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어 다행이었던거 같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온 분들도 두루 만나고 하면서 해외 진출과 정착에 대한 고민이 출장기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깊어졌는데요.


이런 와중에 만난 클로이는 미국에서 처음 만났지만 왠지 고민하는 것들을 편안하게 털어놓게 하는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고민을 술술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미국계회사에서 더 위로 올라가서 managerial position에도 있어보고 싶고, 로컬 외고 출신으로 어떤 길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획과 마케팅을 거쳐서 지금 세일즈까지 왔다는 이야기, 요새는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지금출장은 어떤 목적으로 왔고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해외진출을 준비하면서 어떤어떤 고민을 했는지 같은 말을 두서 없이 풀어내었는데 클로이는 차분하게 제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H1B 비자와 F1 비자 같은 채용 도 물어보고, 요샌 매니저로서 어떤 비자로 어떤 일자리에 레주메를 많이 받는지,  H1B 비자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현지 사람들의 인식같은 것들도 저에게 중요한 정보이기도 했지만 그것 뿐만 아니더라도 클로이의 working ethic과 일에 대한 가치관을 들어볼수 있었는데요.


싱가폴 못지 않게 미국역시 위로 올라갈 수록 백인들의 분포가 많아진다 라는 이야기, 여성과 다인종의 테크 분포, 이민 가정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눠주고 시애틀, 버지니아, 뉴욕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데 건너건너 커피챗을 요청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열린마음으로 대화를 나눠주는 사람이라면 어딜가도 잘 되시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클로이를 만난지 한달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보다 기술이 빨리 변하는 이 업계에서 사람은 항상 젊지 않고 나이를 먹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내가 일을 이렇게 할수 있을까, 그리고 일을 하는 와중에 만나는 스트레스들. 이런것이 나를 좀먹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무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클로이는 스트레스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정도는 해 나가야된다, 라는게 있으면 그저 스트레스에 집중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자고요. 사람이 본성적으로 게을러서 스트레스가 싫을 뿐이지 사실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도움이 됩니다.


스트레스를 포용해서 자신의 성과 달성에 도움되도록 하는 건강한 마음근육이 부러웠습니다. 최근의 저는 스트레스 그 자체가 그저 싫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척", 되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긍정적이 되는건 뭘까. 저런 담담함이 필요한 걸까. 스트레스지만 이런건 해 나가야 된다, 라는 그 차분한 담대함이 위로 일변도의 최근의 한국 트렌드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그릇을 늘리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역시 이렇습니다. 말 몇마디를 나눠도 이사람은 어떻게 좋은 결과를 내는지 바로 이해가 딱..! 이제까지 저는 Individual Contributor 로만 일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사람을 아울러 매니저로서 엔지니어링 팀을 운영하고, 본인도 스킬업을 하고, 조직에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이야기가 뭐야, 당연하네, 많이 듣던 이야기네 할수 있겠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사람은 실제로 있다, 라는 겁니다. 여러 삶의 방면에서 자신의 길을 야무지게 꾸려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위안이 됩니다. 일상 속의 대단함을 조용히 만들어가는 클로이를 만나서 참 안도가 됬습니다. 힘들고 그런 사람이 적다라고 해서 안되는건 아니구나. 나도 할수 있겠구나.


서핑하는 자세로 삶을 살다 보면, uptide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때론 넘어지기도 합니다. 클로이는 제 인생이라는 파도를 헤쳐나가다가 만난 잔류같은 사람이었습니다.파도가 치기 전 잔잔히 일렁이면서 내가 보드를 쇼어(Shore)로 돌릴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잔류.


용기를 얻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다 버리고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때 이런 분위기면 좋은 시작을 할 수도 있겠다. 다 좋은 건 아니고 위험도 어려움도 불편함도 있겠지만, 스치듯 만난 사람이 착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도시라면 새로운 시작이 괜찮을 수도 있겠다.


언젠가 클로이가 한국에 왔을때, 2023년의 저보다 더 발전하고 성숙한 고민을 가진 모습으로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아니면 제가 미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날 보란듯이 저만의 자리를 잡아 여기까지 왔다고, 그때는 제가 밀크폼 버블티를 대접할수 있기를요.




*이   글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커피챗, 사적인 대화, 경험에 기반합니다. 제가 속한 회사, 단체, 공식일정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구성 역시 2주간의 미국 일정 중 시간 순서가 아닌 비슷한 느낀 점을 주었던 분들의 대화를 엮어서  구성했기에  시리즈에 나오는 사람들을 순차적인 만난 것도 아닙니다.


3월, 미국 시리즈 (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1) 제롬 / 아, 왜 이래서 미국오는지 알겠다

https://brunch.co.kr/@jessietheace/543

(2) 제제 / 시장의 크기와 인플레이션

https://brunch.co.kr/@jessietheace/547


(3) 피터 / 결국 모든건 용기의 문제다

https://brunch.co.kr/@jessietheace/54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