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던 동료가 육아휴직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유난히 놀랐던 건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메일과 메신저로만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희소식에 마음이 들뜬 나는 곧장 신생아 장난감을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 몇 분 뒤, 기쁨은 미안함으로 뒤바뀌었다. 카카오톡 메시지 창을 열자 내가 보낸 선물과 비슷한 금액대의 핸드크림이 선물로 돌아와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부풀었던 마음이 금세 쪼그라들었다. 축하를 전하고 싶은 나머지 상대에게 부담을 준 것만 같았다.
언제나 이런 것이 어렵다. 마음을 잘 주고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도 '적당히'라는 기준이 있을까? 오해도 부담도 없이 애정을 전하고, 상대가 그어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나는 늘 넘치거나 모자라다.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표현했다가 멋쩍은 반응에 서운해지기도 하고, 적당한 말을 고르다가 뻔한 위로만 전한 채 돌아와 후회하는 밤이 많다. 이렇게 자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냉소적인 나를 만난다. 이럴 바에는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겠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엄마, 고맙다는 말은 최대한 크게 해야 돼!”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툭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동한 건 그래서였다. 아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나에게 달려와 설명하는 귀여운 습관이 있다. 그날은 유치원에서 친구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돌아온 날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고맙다는 말을 왜 크게 해야 돼?"
“선생님이 그랬어. 고맙거나 미안한 것처럼 마음을 표현할 때는 크게 말해야 한대. 작게 말하면 친구가 못 들을 수도 있잖아. 고맙다는 건 꼭 알려줘야 하거든.”
사실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지식은 전부 유치원에서 배운다. 동명의 책도 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쓴 로버트 풀검은 “옳고 그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아주 어린 시절,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세심하게 가르쳐주던 그 방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날은 나도 그 방의 문을 열었다. 다섯 살 어린이로 돌아가 새롭게 다짐했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 앞에서는 의기소침해지지 말자고.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몇 년 전 아빠에게 척수염이 발병한 뒤로 한동안 우리 가족은 한동안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잘 가지 않았는데, 그건 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만큼은 고모가 운영하는 카페에 함께 가보자는 엄마의 말에, 아빠가 그러자고 응하며 따라나섰다. 입원 생활을 마치고 아빠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의 모습은 아프기 전과는 조금 달랐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아빠를 보면서 고모는 “쯧쯧, 안쓰러워서 어쩌니” 같은 말을 하며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 무게를 견디기가 어려운 듯, 아빠의 고개는 자꾸 더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고 나는 이 광경을 보고 듣기가 힘들어서 얼른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불현듯 고모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져놓았다. 책처럼 두꺼워진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게 다 오만 원짜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좀 힘들잖니. 이게 내 마음이야. 마음은 꺼내서 보여줄 수가 없잖아. 마음이 있으면 돈을 줘야지. 돈이 마음이다.”
안쓰러워서 어쩌니, 하고 말꼬리를 흐릴 때 고모는 입술을 접어서 포개며 시선을 저 멀리로 돌렸는데, 돈이 마음이라고 거듭 강조할 때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순식간에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할 줄 아는 위로가 이것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비로소 증명했다는 듯이. 그때 알았다. 시간을 쓰든 돈을 쓰든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나에게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은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 주변에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그녀의 표현 방식은 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이었다. 오랜 친구의 남편이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그날도 엄마는 꿋꿋이 부엌에 서서 밥을 지었다.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끊고 엄마는 제일 먼저 식재료를 사러 갔다. 마트에서 오리를 사고, 찹쌀과 녹두를 사고, 마늘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곧장 오리백숙을 끓여 도시락통에 담았다.
그 다음 주말에는 각종 나물을 무쳤고, 또 다시 돌아온 주말에는 늙은 호박의 속을 파서 죽을 끓였다. 음식을 꾹꾹 눌러 담은 삼 층짜리 찬합을 들고 엄마는 주말마다 버스에 올라 편도 두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갔다. 보호자가 잘 먹어야 환자도 일어날 힘을 낸다고 말하면서.
그때 우리 집은 사정이 넉넉지 않았고, 엄마의 친구는 남편이 부재해도 먹고 살 만큼의 재산이 있었다. 그 차이 앞에서 엄마는 낙담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형편에서 건넬 수 있는 금전적인 도움으로는 친구에게 손바닥만한 위로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대한의 위로를 전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목표는 잘 세우지 않지만, 삶의 큰 그림을 그린다면 중심에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꿈을 세워두고 싶다. 상대가 나의 마음을 오해할까 두려워 가만히 있고 싶어질 때면 “고맙다는 말은 최대한 크게 해야 돼”라는 한 마디를 조용히 내뱉어본다. 사랑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축하하는 마음, 보고싶은 마음, 위로하는 마음을 전하는 일 앞에서는 더이상 머뭇거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