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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친해지면 되지!"

by 성소영


지난해 봄, 자궁선근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 내막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해서 자궁이 점점 커지는 병이다. 건강한 자궁의 내막은 평균 2.5cm라는데 나는 4cm였다가 지금은 6cm가 됐다. 레몬이 들어갈 자리에 오렌지를 욱여넣은 셈이니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거대해진 자궁에 방광과 직장이 눌려서 매일 묵직한 통증이 있고, 혈액순환 장애로 부종도 생겼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첫 진료를 받았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 의사가 난소암의 가능성을 말하며 진료소견서를 써줬기 때문이다. 나는 큰 병이 아닐 거라고 확신한 채 담담히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들은 원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마련이고, 배가 좀 아픈 것 외에는 암을 의심할 징후가 없었으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침착하게 수납처로 가서 말했다. “진료소견서랑 처방전 주세요.” 간호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까 드렸잖아요. 지금 세 번째 오셨어요.” 인정하지 않았을 뿐, 실은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나흘 뒤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선근증으로 커진 자궁을 몸이 염증으로 인식해서 난소암을 판단하는 종양표지자 수치가 높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암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한 마디에 지금껏 아픈 배가 싹 나은 듯했다. 완경 때까지 매일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고, 더 이상의 임신은 어렵고, 6개월에 한 번씩 추적검사를 하다가 자궁이 다른 장기에 유착되면 적출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 괜찮았다.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아픔이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이 되었던 그날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며 한 문장을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한다.(신형철 <인생의 역사>)’ 나에게는 ‘내 아이의 엄마’를 지킬 의무가 있으므로, 작은 새를 손으로 쥐듯이 조심조심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 그러지 못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걸핏하면 업무가 밀려 밤을 지새웠고, 육퇴 후에는 습관처럼 맥주캔을 땄다. 아이 밥만 차려주고 나는 라면을 끓이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날도 많았다. 운동은 생각만 했다. 그러는 사이 몸무게는 10kg이 불어나 있었다. 앞으로 건강이 더 나빠지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수시로 병원에 다니는 엄마를 지켜보던 아이는 어느새 건강프로그램 마니아가 됐다. 하루 중 잠시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여섯 살 꼬마가 생의 말년을 준비하는 어르신처럼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귀하신 몸>, <명의> 같은 영상을 트는 것이다. 유치원생이 보기에는 과한 장면이 많아 여러 번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부엌에서 밥을 할 때, 때로는 외출했을 때 아빠에게 부탁해서 기어코 영상을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의 비밀> 자궁 편을 본 날에는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 술 마시는 거랑 플라스틱 쓰는 건 절대 안 돼!” 그 이후로는 아이가 건강프로그램을 봐도 그냥 두기로 했다. 두려움은 미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러는구나 싶었다.


그날도 아이의 요청으로 세 식구가 거실에 모여 건강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주제는 치매. 한 중년 여성이 수첩에 화장하는 순서를 적는 장면이 나왔다. 치매 환자인 그녀는 일상의 지식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다가 마침내 가족의 얼굴도 못 알아보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매일 하던 건데 기억을 못 한다니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화면 속 여성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장면을 보는데 연신 조잘대던 아이가 너무 조용했다. 돌아보니 눈가가 촉촉하다. “우는 거야?” 내가 묻자 그렁그렁 매달렸던 눈물이 주르륵 떨어진다. “엄마도 치매에 걸려서 나를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으앙!” 아이고, F 성향의 부부 사이에서 짙은 F형 딸이 태어났구나. 나도 덩달아 눈물을 매달고 무슨 답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절대로 치매에 안 걸릴게. 세상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 치매에 걸려도 너는 꼭 알아볼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엄마가 늙었을 때는 치매를 고칠 수 있을 거야. 이 정도의 낙관은 괜찮지 않을까? 속으로 요리조리 말을 고르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 다시 친해지면 되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눈물 콧물을 쏙 집어넣고 헤헤 웃는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늘 새롭게 놀랍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이는 자기를 위로할 방법을 찰떡같이 알아냈다. 예방주사를 맞고 울음을 터뜨렸다가도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며 안정을 찾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연신 병원놀이를 하며 바이러스를 무찔렀다. 조금 더 자라니 그때보다 묘안이 뚜렷해졌다. 엄마가 아프면 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관계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이므로 다시 쌓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린다.


아이의 사랑과 염려를 받으며 나는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매일 30분 이상 운동, 금주, 8시간 취침, 스트레스 최소화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일상을 다듬었다. 이왕이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오래 아이 곁에 머물고 싶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부모라는 짐을 그 애에게 한 톨도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부디 정갈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삼십 대 후반의 바람치고는 너무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사서 걱정은 나의 특기. 연약한 아기새를 돌보듯 매일 나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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