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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May 02. 2018

21세기 아빠에게 필요한 젠더 감수성



words 우석훈  illust 정성




21세기는 내가 20대를 보낸 20세기와 달리, 

조금 더 평등해야 한다는 희망을 해본다. 

그렇게 보면 한국은 여전히 20세기이고, 그것도 슬픈 20세기다.




나는 올해로 50세다. 도대체 인생을 뭘 하며 낭비하고 살았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 진작에 ‘C급 경제학자’라고 스스로를 분류했다. A급과 B급의 경쟁에서 밀려난 C급, 나는 오히려 그게 편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난 대체로 뭔가를 잘 못하거나, 너무 늦게 하거나 그랬다. 결혼은 조금 늦었고, 아이 역시 결혼한 지 9년 만에 태어났다. 그리고 곧 둘째가 생겼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지 못해 바로 집중치료실에 들어갔다. 호흡기가 좋지 않은 둘째는 돌이 좀 지난 봄부터 폐렴으로 연거푸 입원했다. 이렇게 아이가 아프니까 아내는 결국 퇴사했다. 

2년 전 봄, 나 역시 중대한 선택을 했다. 수시로 아프고, 수시로 입원하는 둘째를 좀 더 적극적으로 돌보기 위해 하던 일 거의 대부분을 정리했다. 그리고 아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내 몸을 더 많이 움직였다. 일곱 살과 다섯 살 두 남자아이의 아빠,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올해부터 아내가 상근을 시작했고, 우리 가족은 다니기에 조금 더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옮기기 위한 작업을 했다. 한국에서 두 형제가 어린이집을 옮기는 일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작전처럼 치밀하게 생각해 계획을 세우고 인내해야 하는 일이다. 큰애가 먼저 옮기고 우선순위가 조금 올라간 둘째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 이게 아직은 우리의 보육행정이다. 오전과 오후로 어린이집 두 군데를 도는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 어린이집 원장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 달이면 비교적 운이 좋은 경우라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큰애가 새 어린이집에 간 첫날, 아이가 계속 우니까 11시에 데려가라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10시에 데리고 간 아이를 11시에 데리고 온 것이다. 2주간 그렇게 뺑뺑이를 돌았더니 입안까지 헐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저출산 위기를 그토록 강조하던 국가는 도대체 무얼 하는 것일까? ‘일시적 초과 인원 허용’, 행정적으로 이런 짧은 문장 하나만 규정에 넣어주면 그만인 일이다. 다른 엄마들은 그동안 이런 일들을 불평도 없이 어떻게 모두 감내해온 걸까?



내가 특별하게 요즘 말하는 젠더 감수성을 지니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지금이 아내의 커리어 위기이고, 우리 가정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부당한 점들은 계속해서 고쳐나가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는 최소한의 상식은 갖추고 있다. 그리고 21세기는 내가 20대를 보낸 20세기와 달리, 조금 더 평등해야 한다는 희망을 해본다. 그렇게 보면  한국은 여전히 20세기이고, 그것도 슬픈 20세기다.



젠더 감수성은 생각보다 어려운 용어다. 젠더도 우리말로는 잘 번역이 되지 않아 요즘은 영어로 직접 쓴다. 여기서 감수성은 sensitivity가 아니라 sensitization, 예민하게 감각하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에 살아온 방식대로 일상을 바라보는 걸로는 충분치 않기에 일부러 감각을 증폭시켜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 그런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우리 부모는 맞벌이로 초등학교 교사이셨다. 당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두 분이 똑같이 선생님으로 일하시는데, 어머니는 퇴근하시면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하셨다. 아버지는 동네 기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셨다. 담배 자욱한 기원에 가서 집에 오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저녁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당시 나에겐 하루 중 큰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머니는 도시락을 5개 싸셨다. 나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이 40% 정도면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같은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나라들이 나온다. 30% 선에서 프랑스, 독일 심지어 미국 같은 나라가 나온다. 10%대로 가면 가부장제로 유명한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 그리고 인도가 나온다. 일본은 17%, 한국은 그보다 낮은 16% 정도다. 장시간 노동을 이유로 들지만 일본보다도 낮은 건 좀 과하다 싶다. 일본은 남성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다. 나의 경우도 한번 따져봤는데, 아무리 잘 잡아줘야 40%를 넘지는 않는 것 같다. 최고 수준의 선진국도 남녀가 가사 노동에서 1:1인 나라는 없다. 그냥 수치상으로만 보면 한국 남성이 가사에 지금보다 2.5배 정도 참여하면 우리도 일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존재할까? 특별하게 두 아들에게 ‘강한 남성’, 이렇게 얘기한 적은 없다. 하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인형은 처음부터 우리 집에서 인기가 없었다. 나는 소꿉놀이도 조금은 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그 대신 애들은 로봇 놀이, 주유소놀이, 탐사 놀이 같은 걸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가사의 40%는 참여할 수 있는 선진국 시민처럼 자랄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나는 제빵기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빵을 굽는다. 건포도나 아몬드를 넣는 것 같은 소소한 일은 아이들에게 시킨다. 그리고 주말에 두 번, 주중에 한 번 정도는 특식을 만든다. 큰애가 일곱 살이 된 후부터 이런 음식을 만들 때는 꼭 참여시킨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가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젠더 혹은 가부장제에 대해 유별나게 생각한 건 아니고, 누군가의 수고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점이 나는 불편했다. 먹고 싶은 것은 그냥 내가 해 먹는 게 제일 속 편하다. 거창한 일은 절대 아니다. 유학 시절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어차피 혼자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누군가에게 이것저것 해내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하다. 

친구들과 비교해봐도 나는 밥하고 살림하는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eco)을 관리(nomos)하는 것, 즉 ‘살림’이 경제학의 라틴어 어원이다. 친구들은 경제학을 경제세민의 제왕학 같은 것으로 이해했지만, 나는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든 학문 같은 것으로 여긴다.



요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평등이다. 내 위에 아무도 없고, 내 밑에 아무도 없다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평등한 시민으로서 자유로운 삶,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 맞다. 유별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한국은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올 미래에는 남녀의 역할이 더욱 많이 변한 상태일 것이다. 변화는 비대칭적이며 불가항력적이다. 뒤로 돌릴 수 없으며 멈춰 세울 수도 없다. 이에 대해 좋고 싫음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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