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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May 16. 2018

육아 대디로 살다 보면 겪는 일


words 김태정  illust 정성




남자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건 이직을 준비하는 행동이다? 
성차별만큼이나 만연한 우리 사회의 성 역할론. 
성평등의 사각지대에 놓인 육아 대디를 ‘웃프게’ 만드는 별별 말과 상황들. 






Case 01.
이직 준비한다는 오해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에 복귀하니 주변에서 “대학원은 잘 다녔냐?”고 묻는 거예요. 무슨 상황인가 했는데 곧 깨달았죠.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실은 애는 부모님이 봐주시고, 이직 준비를 하거나 부족한 공부를 하거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거라는 생각인 거죠.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분은 더욱 순수하게 애만 키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Case 02.
제가 뺏은 건 아닌데요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시선을 받을 때가 있어요. 하물며 기혼 여성 동료들이 “네가 뭐라고 육아휴직을 써”, “ 여자도 눈치 보이는데 남자가 쓰는 거야?” 식의 날카로운 반응을 보일 때는 당황스럽고 이해가 잘 안 갔어요. 육아휴직 제도는 엄마가 1년 아빠가 1년 각자 쓸 수 있는 건데, 제가 남의 기회를 박탈한 게 아니잖아요. 다 같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좋은 거 아닌가요?


팀 내 육아휴직자가 생기면 나머지 팀원의 업무량이 1/n씩 늘어난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공감하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과 달리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성 법정 육아휴직 일수가 가장 긴 나라(53주)다. 

좋은 제도를 문화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달라지고자 하는 움직임은 있다.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 남성 근로자에게 1개월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랬듯 회사 관리자급부터 육아휴직을 쓰는 행동 같은 것 말이다. 




Case 03.
이유식은 엄마가 

아내가 일을 하니까 육아와 가사의 대부분은 제가 담당하는데, 이유식은 손을 못 대게 해요. 저희 부부가 먹는 밥상도 제가 차리는데 이유식은 재료준비부터 만드는 것까지 아내가 다 하죠. 아이 입에 들어가는 건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내 역시 아빠는 못 미더운 걸까요? 


엄마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육아와 가사가 잘 굴러가지 않으면 대개 “엄마는 뭐 하는데”라고 

여자 쪽을 비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집안일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다. 

아이 문제는 더욱 그렇다.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다. 따져보면 엄마라고 딱히 나을 것도 없다.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린 상황에서 

너나 나나 집안일에 서투르긴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Case 04.
네버엔딩 육아 상식 테스트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 중 육아 경험이 있는 분들이 가끔 이것저것 질문을 해요. 자신들이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육아 상식 A~Z를 “이건 모르지?” 하는 느낌으로 물어오는데 일종의 테스트를 당하는 상황인 거죠. 결국 육아와 관련한 제 지식을 다 꺼내놓으면 “음... 다 아네”로 끝나는데 기분이 이상해요.



Case 05.
아이고 아이고~
 
아이와 단둘이 밖에 나가면 나이 좀 있으신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꼭 한마디씩 하세요. “아유...애아빠가 이를 어째”, “엄마는 어딜가고 혼자 그래”하고요. 한번은 할머니 한 분이 “젊은 나이에 일은 안 하셔?” 하고 물으시길래 “네, 잠시 쉬고 있습니다” 했더니 “아이고...” 하며 측은하게 보시더라고요. 말을 걸어주시는 건 좋은데 꼭 ‘아이고’가 들어가는 건 왜일까요?


육아휴직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인 남성은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굉장히 이상한 두 가지 시선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어떻게 이렇게 잘하냐”는 과도한 칭찬과 함께 따라오는 말은 

“사내자식이”라는 것이다. 칭찬과 뒷말이 오가는 양극단의 현실은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Case 06.
단톡방에선 무슨 이야길 하죠?

엄마들끼리만 말을 걸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 있어요. “몇 개월이에요?” 물으면 처음 본 사람과도 대화가 술술 풀리죠. 평일에 문화센터에 가면 아이 엄마들만 있고 아빠는 저만 있는 경우가 많아요. 다들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하는데, 아쉬운 사람은 저니까 제가 먼저 가서 말을 걸어요. 안면도 트고 대화도 나누지만 거기까지인 건 어쩔 수가 없어요. 단톡방엔 안 끼워주거든요.




Case 07.
아빠 이름은 어디에 써야 하죠?

얼마 전 아기 예방접종하러 보건소에 갔는데 예방접종 접수증에 아빠 이름 쓰는 공간이 없는 거예요. ‘보호자’ 이렇게 쓰인 게 아니라 ‘엄마 이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공문서에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아빠 이름은 어디다 쓰냐고 물어보니까 데스크에서 엄마 이름 칸에 그냥 쓰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같이 안 왔냐고 하면서요. 엄마 없이 아빠만 오면 이름도 쓰지 못하는 건가요? 




Case 08.
아빠는 들어오지 마세요!
가장 기분이 상할 때는 수유실에서 거절당할 때예요. 아빠는 맘 편히 기저귀 갈 곳이 없어요. 가림막 없는 수유실에 아빠가 들어가는 걸 불편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추운 날씨에 화장실 한쪽 구석에서 한 손으로 애를 안고 기저귀를 갈아주자면 억울하고 짜증이 나요. 엄마랑 나온 아이는 따뜻한 물로 편하게 씻기는데 우리 애는 남자 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씻겨야 하죠.


힐러리 클린턴도 깨지 못한 유리 천장은 여성 근로자의 사회 진출에 대한 분명한 한계점이다. 

또 양성평등을 위해 우리 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어나면서 아빠에게 존재하는 ‘유리 벽’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주 양육자임에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불평등의 상황은 수많은 맞벌이 가정이 

특정한 시기에 맞닥뜨리는 선택의 순간 ‘엄마는 집으로 아빠는 일터로’ 가는 이유 중 하나일지 모른다. 

여성의 일터 진입과 남성의 일터 탈출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아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아빠, 남의 삶을 기웃대지 않는 아빠, 멋스러움을 아는 '모던 파더'들의 말과 얼굴을 모으는 미디어 <볼드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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