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드저널 May 30. 2018

소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아빠를 위한 심리 특강 (2)



words 최혜진  illust 김지하




소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생애 전환기마다 조금씩 다른 증상으로 찾아오는 ‘남자의 사춘기’,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심리 특강 2탄.





College Coward; Self-Contempt in a Slump

무기력증과 자기 비하의 이중주, 대학 사망년




기동력 ★☆☆☆☆
자기방어 ★★☆☆☆
화 폭발력 ★☆☆☆☆
운영 난이도 ★★★☆☆
필살기: 다른 사람의 스펙과 비교하며 자기 자신 비하하기



신체적 나이나 사회적 나이는 이미 심리적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대학교 3학년인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깊은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다.

이 나이 또래 한국 청년들이 갖는 공통적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자기 삶에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직접 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짜여 있는 시간표대로 살면서 대학교에 가면 자율적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버틴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전쟁이 기다리고 있고, 취업이라는 중대 과업을 이루기 위해 이미 해야 할 일들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져 방전이 되어버린 심리 상태다.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강한 내적 동기가 없거나, 있어도 그것을 믿고 뛰어들 용기가 없어서 생긴 방황이다.



특징

“나는 스펙도 없고, 한 것도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눈치 보고 고민한다.

취업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꿈이 뭔지 잘 모른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삶을 부러워한다.

진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정 장애가 있다.

자기 스케줄을 자꾸 확인한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Working Puberty; Going to Work Is Depressing

출근만 하면 몹시 우울한 직장인 사춘기




기동력 ★★☆☆☆
자기방어 ★★☆☆☆
화 폭발력 ★★☆☆☆
운영 난이도 ★★★☆☆
필살기: 갑갑증과 억울함 토로, 만성적 의욕 상실로 주변에 우울함 퍼뜨리기



이전까지 믿어오던 ‘잘 사는 삶’에 대한 기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다. 취업을 해서 돈벌이를 하면 해소될 거라 믿었으나 마음을 짓누르는 갑갑함이 사라지지 않고 응어리가 걸린 느낌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붕 뜬 생활을 견딜 자신은 없어서 버티는 중이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상태이기에 월급날만 바라보고 한 달씩 버티듯 산다. 변화의 계기를 꿈꾸며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쉽게 말해 직장인 사춘기 증상은 내적 동기와 자기 검증·자기 선택 없이 지난 시간들을 살아온 결과다. 그 사실을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하더라도 퇴사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하길 권한다. 일단 자기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작은 선택을 해보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해봐야 한다. 이직 또는 전직 등 일단 선택 범위를 상정해놓고, 회사에 다니면서 그 변화를 위해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

야근이 많고 바쁘더라도 더 중요한 건 ‘내 삶의 선택을 내가 해보는 작은 경험’을 하는 일이다. 무기력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리는 첫 시작이 어려울 뿐, 한번 해보고 나면 오히려 쉽게 방향이 잡힐 수 있다.



특징

뚜렷한 이유 없이 직장 생활에 회의감을 느낀다.

자신이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하는 일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없다고 여긴다.

아침에 눈뜨면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부터 든다.

만사가 귀찮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 길이 내 길인가’ 하는 고민에 업무 중에도 구직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한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며 불필요한 죄의식이 자주 든다.




사회 진출기 외계인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저는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막연해요”라고 말하며 소심해지는 사회 진출기 청년이 많다. 그런데 이 시기에 느끼는 막연함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진로와 적성에 대한 생각은 처음에는 당연히 흩뿌려진 점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해보는 경험을 통해 점들이 점점 짙어지고 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길’ 또는 ‘내 꿈’ 등의 확신이 생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기력증이나 의욕 상실에 빠진 청년에게 필요한 조언은 어떤 도전이 스펙에 도움이 되는지, 입사에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게 아니다. 자꾸 외부에서 선택의 근거를 찾으려는 그들에게 “네 경험에서 오는 신호가 가장 중요해. 진짜 자기 선택은 누가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아냐. 네가 몰입했는지, 즐거웠는지가 가장 중요해”라는 조언을 건네보자.

이들이 무기력을 느끼는 결정적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어쩔 수 없이 수행하는 중이다’는 시각으로 자기 삶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똑같이 힘든 회사 생활을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 선택지 중 자신이 결정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지치거나 희생한다는 억울함을 느끼진 않는다. 마음을 끄는 몇몇 삶의 방식, 진로의 가능성을 모두 꺼내놓고 장단점을 분석한 뒤 스스로 선택해보는 경험이 이들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Cold Feet; a Man with Commitment Issues

100%로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 콜드 피트




기동력 ★★★★☆
자기방어 ★★★☆☆
화 폭발력 ★☆☆☆☆
운영 난이도 ★★★★☆
필살기: 뜬금없이 잠수 타기



콜드 피트cold feet는 결혼 전 압박감을 느낀 남자가 발이 얼어붙은 것처럼 관계를 전진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영어 표현이다. 내면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도망쳐” 소리에 반응해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잠적하거나, 연애를 오래 했으면서 프러포즈를 미루는 행동을 이르는 말.


관계 헌신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미혼 남성과 지나치게 관계에 의존하는 미혼 여성이 만나 ‘잠적하는 남자, 추적하는 여자’의 구도를 형성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혼을 스스로의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불공정 거래로 느낄 때, 심리적으로 건강한 남자라면 이별을 명확히 선언하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심리적 부담감에 잠수를 탔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여자에 대한 미안함, 따스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



특징

썸만 타고 “사귀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남녀 관계가 발전할 때 필요한 결정적 선택을 미룬다.

이별을 문자로 통보한다.

오랜 연애 끝에도 프러포즈를 하지 않는다.

결혼을 앞두고 돌연 잠적한다.

관계 헌신에 대한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자신을 투신하지 못한다.

헌신과 회피를 오락가락한다.






Super Dad Syndrome at Age 40

마흔통 a.k.a 슈퍼아빠증후군




기동력 ★★★★☆
자기방어 ★★★★☆
화 폭발력 ★★★★☆
운영 난이도 ★★☆☆☆
필살기: 영웅이 되고 싶은 가장, 스스로를 소진증후군으로 몰아가기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관계 형성 시기’에 이들을 짓누르는 수행 불안이 있다. 관계에 나를 던지려면 일단 내가 돈벌이를 제대로 해야 하고, 사람 구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능력 없으면 소개팅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남자에게 관계는 압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신이 소진되는 줄도 모르고 모든 걸 다 잘 해내려고 하는 슈퍼아빠증후군도 그 심리 기저엔 수행 불안과 슈드비 should be사고가 있다. 어릴 때부터 “네가 우리 집 기둥이다”, “네가 기대주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들어온 사람은 그 메시지에 중독된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제시하고, “역시 나 아니면 안 되지?”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안도하며, 타인에게 자꾸만 자신의 쓸모와 존재감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가장이라면 당연히’, ‘남자라면 당연히’로 시작하는 피상적인 사회의 요구와 고정관념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남자는 자기희생적 사랑에 가치 부여를 하면서 인정 욕구를 충족시킨다.



특징

작은 좌절에도 가까운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자기 안에 갇힌다.

자신이 이룬 성공에 대해 스스로 의혹을 가진다.

남자에게는 돈 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비난한다.

‘내가 아니면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원자 콤플렉스, 해결사 콤플렉스가 있다.

아내가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더 잘나가면 질투한다.

자신이 자녀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자녀 앞에서 강조하길 좋아한다.





가정을 이뤄가는 청장년기 외계인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부양의 의무를 짊어지는 것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는 한편, 자신을 둘러싼 기대와 속박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는 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건 ‘인정의 말’이다. 평소에 인정과 고마움의 표시를 적극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다. 이 시기 남성은 자신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사는지 말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사회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부부끼리 평소에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하고, 갈등이나 다툼이 벌어질 때만 대화를 한다. 스트레스 상황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심리의 기저까지 내려가볼 만한 에너지가 없어서 사회적으로 둥둥 떠다니는 고정관념을 가져다 공격 재료로 쓴다. “가장이 돼서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남자가 돼서 이것도 못 해?” 같은 슈드비 사고로 이들을 찌르는 건 금물. 건강한 어른은 타인의 기대를 적절히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적절히 좌절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자.





Furious Midlife Crisis

분노하는 사추기




기동력 ★★★☆☆
자기방어 ★★★★★
화 폭발력 ★★★★★
운영 난이도 ★★★★★
필살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들으면 기분만 나빠지는 농담과 꼰대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급적 마주치지 않고 싶어 하는 대상이 바로 이 사추기 어른이다. 분노를 통해 상대의 말문을 막고 상대를 위축시킴으로써 자기 힘을 행사하려는, 갱년기에 이른 중년 가부장의 모습. 다른 감정과 비교해 분노와 화는 남자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강해 보일 수 있게 만들므로 이들은 쉽게 분노 카드를 꺼내 쓴다. 자기가 여전히 힘의 위계에서 위에 있다는 걸 포기 못 하는 자존심 때문에 엉뚱한 선택을 하는 것. 실은 중년기 아버지 마음은 유아의 심리 상태와 비슷한다. 보살핌을 원하고, 자기 욕구가 관철되길 원하며, 무엇보다 사랑받길 원한다. 누군가 말을 걸어주길 바라지만, 표현할 줄 몰라서 자꾸만 분노로 표출하는 것.



특징

어린 사람이 무조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언제든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쉽게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정작 내면은 허무, 좌절 등으로 삶 자체에 흥미가 없다.

가정 안에서 작은 일로 삐친다.

맥락 없이 간섭하고 쓸데없는 조언을 남발한다.

영양가 없는 단체나 모임에 가입해 완장 차길 좋아한다.





사추기 외계인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측은지심이 필요하다. 겉모습만 보면 큰 목소리와 힘으로 타인을 내리누르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이빨 빠진 호랑이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욱 발버둥 치는 것이다. “왜 저래?”라며 고개를 돌려버릴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짠한’ 지점이 보인다. 그 짠한 마음이 이해의 시작이다. 그들이 누군가 말 걸어주길,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아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아빠, 남의 삶을 기웃대지 않는 아빠, 멋스러움을 아는 '모던 파더'들의 말과 얼굴을 모으는 미디어 <볼드저널>입니다.

오프라인 저널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대형 서점 매장, 주요 온라인 서점, 땡스북스 등 일부 독립 서점


온라인 / 모바일 저널

www.boldjournal.com


SNS

facebook : www.facebook.com/theboldjournal

instagram : www.instagram.com/bold_journal

brunch : brunch.co.kr/@boldjournalcom

이전 10화 소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아빠를 위한 심리 특강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