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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Jun 06. 2018

한 백수 가장의 마흔통 탈출기



words 강승민  illust 정지인




자발적 백수가 된 후 가당찮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나이 마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스스로와 속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자꾸만 작아지는 나는 몇 가지 자기분석 서비스에 마음을 맡겨보기로 했다. 








또 악몽을 꾸었다 



나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이다. 

혹시 누가 “어느 정도 꿈을 안 꾸세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정도다. 


“꿈을 꾸지 않아서 삶에 꿈도 없어요.” 


그렇다. 글 초반에 아재 개그를 꺼내는 나는 나이 마흔 초반 넘어가는 아재다. 나를 몰라주는 속세에 지쳐 시니컬해진, 어쩌면 꼰대. 

최근에 꿈을 꿨다. 꿈속 배경은 내가 다니던 한 회사의 사무실이다.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왜곡된 공간 안에 나의 회사 생활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를 보며 소리쳤다. 

“당신이 말이야, 당신 때문에, 그러니까 당신이 뭐길래....” 


꿈속 그는 나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듯 “세상 일은 네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 〈사이코〉를 만든 히치콕 감독의 제작법을 빌리자면 드러나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다. 

아, 또 악몽을 꿨구나. 그렇게 잠을 설친 새벽은 잠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이 나타난다. 눈을 뜨면 늘 그렇듯 출근 준비를 하고, 무미건조한 사무실로 향하고, 회사로 가는 길목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악몽 속 그와 어정쩡한 출근 인사를 나누고... 그래야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됐기 때문이다. 

악몽은 백수 생활 2주 차에 시작되었다. 어느 유명한 심리학자의 설명을 빌리자면, 지금 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분노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의 분노가 지나면 침체(우울)가 찾아오고, 그다음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내려놓기, 혹은 놓아주기의 단계가 오겠지. 인간 심리를 다룬 오랜 이론의 순서가 그렇다는 것일 뿐, 과연 나도 그와 같을지? 




# 플래시백 



고3 시절, 나는 참 순응적이고 영롱한 아이였다. 모두와 잘 어울렸고, 어른 말에 싫은 기색을 내비친 적이 거의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야자’ 종료 시간을 10분 앞두고 먼저 교실을 나가려다 산적 같은 체육 교사에게 발각되어 그의 두툼한 손이 나의 뺨에 스매싱을 날리고, 내 몸은 반동으로 360도 정도 회전했으나, 그럼에도 나는 ‘10분 먼저 나간 내가 잘못한 거지. 그래 그런 거야’라며 아픈 뺨을 달랜 기억이 있다. 더 끔찍한 일은 내 친구가 당했다. 나와 함께 교실을 나섰던 친구는 체벌로 고막이 터졌으나,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체제에 따르라는 무언의 압박 앞에서 우리는 일그러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저항하지 못한 우리가 맞이하는 것은 일그러진 자화상뿐이라고. 


나의 사춘기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체제 순응적이던 내가 아버지께 처음 반항한 시기다. 나는 고등학교 동아리 축제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아버지는 “공부해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며 나를 말렸다. 아버지의 그 말에 휙 돌아선 나는 방문을 쾅 닫고 창밖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에이씨!” 


에이씨, 그러니까 이 단어는 내 사춘기에 관한 아주 상징적 말이다. 그즈음 사춘기의 내 가슴에 훅 들어온 한 문장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나는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말이 참 좋았다. 그 말에 기대어 나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짐작하듯 똑같다. 성적에 맞춰 대학 가고, 인기 있는 전공을 선택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취직을 하고, 뒤늦게 결혼하고 딸을 얻고... 그렇게 이 세월 저 세월.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었던가. 내 손으로 한 세계를 파괴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다시 마흔둘의 백수 가장이 되어 악몽을 꾸고, 일그러진 시절을 만나고, 그렇게 가당찮은 사춘기를 겪고 있다. 

“에이씨!”




# 호모 잉여로우므스 



나이 마흔, 인생의 하프타임이라는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이제는 덧셈보다는 뺄셈이 많아진 인생이라는 것을. 인생의 절반까지는 “그래, 잘할 수 있어. 더할 수 있어”라는 덧셈의 시선이 많았다. 그래서 힘이 났다. 그런데 나이 마흔, 인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주변의 시선은 뺄셈으로 변했다. 


“벌써 나이가 그만큼이나?" 

"그래서 당신은 뭘 할 수 있나요?" 

"눈높이를 낮춰야지. 어깨에 들어간 뽕도 좀 빼고."

"재취업이 쉽진 않을 겁니다” 


등 빼고 빼도 더 뺄 것이 남은 나이. 나는 어떤 유의 인간이 되어가는 것일까. 

혹시, 호모사피엔스 : 지혜가 있는 인간(X-요즘 스펙 좋고 외국어 능통하고 참신한 젊은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혹시, 호모파베르 :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X-내가 가진 기술이 뭐 있어서) 

그럼 혹시, 호모루덴스 : 놀이를 즐기는 인간 (X-물려받은 재산이 있니, 모아둔 돈이 많니, 그렇다고 월세를 받니? 뭔 돈이 있어서 놀아?) 


이렇게 O/X 체크를 하는 동안 다행스럽게(혹은 불행하게도) 나도 인간의 이름 하나쯤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인간이라고, 그것도 요즘 유행하는 신인류라는 것을. 내가 바로 호모 잉여로우므스(O-잉여가 넘치는 인간)였구나! 이런 생각까지 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아, 이럴려고 반평생을 살았나, 자괴감 들고 그래.” 




# 임계점에서 역기를 내던지는 이유 



솔직히 나는 가능하면 유쾌한 마음으로 내가 맞이한 현실을 분석하는 중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내 현실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집에서는 ‘백수 인생’이란 타박을 견뎌야 하고, 시쳇말로 커가는 딸아이의 분유값도 벌어야 한다. 넉넉한 배짱과 용기가 있다면 덜컥 창업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즈음 되니 리스크가 무섭게 다가온다. 

나는 조금씩 겁을 먹고 있다. 다시 일어날 타이밍마저 놓칠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희극인 행세를 하는 것인지도. 


어째 여기까지 쓰다 보니 얘기가 뜬금없이 자학 모드로 돌아선 것 같다. 이즈음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슬쩍슬쩍 딴 길로 새는 경우가 생긴다. 사춘기를 겪는 어른의 일상다반사라고 부디 이해해주길. 

기왕 이런 흐름이 된 거 지친 나를 위로하는 법 하나쯤 얘기해도 괜찮겠지. 내가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 종종 떠올린 이미지 컨설팅이니 독자 여러분도 자학이 파고들 때 대처용으로 써보면 좋겠다. 


1. 올림픽에 출전한 역도 선수가 있다. 

2. 역도 선수는 1회전 2회전 3회전에 따라 역기 무게를 최고점으로 끌어올린다. 

3. 나는 인생이 역도와 같다고 생각한다. 20대 30대 40대에 따라 최고점의 무게를 들어야 한다.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는 40대의 역기 무게는 아마도 당신이 들어야 할 최고 중량이다. 

4. 다시 올림픽 무대로. 역도 선수는 마지막 3회 차에 자신이 들 수 있거나, 우승에 가까운 무게를 선택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이다.   

5. 이제 승부처다. 선수는 손이 미끄럽지 않도록 밀가루 같은 탄산마그네슘 가루를 바르고 탁탁 친다. 모든 힘을 모아 정강이를 넘어 배까지 역기를 들고, 한 번 숨을 고른 뒤 어깨까지 단숨에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머리 위로 올리고 1초 2초... 아! 그러나 마지막 1초를 버티지 못해 역기를 내팽개치고 말았다. 

6.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버티기 힘든 극한의 순간. 나는 임계점에서 역기를 내던져야 하는 선수의 마음에 눈물이 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만약 그때 놓지 않았다면 그는 회복하기 힘든 최악의 상처를 입을 것이다. 놓을 수 있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내가 아는 힐링이나 위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때로는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게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라는 것. 

그리고 최근 나 역시 임계치의 역기를 내던졌다. 





아, 용케도 여기까지 



용케 여기까지 끌고 왔다. 부족한 내 인생, 하프타임까지 잘 끌고 왔다. 그리고 이번 〈볼드저널〉의 주제인 ‘사춘기 어른과 그를 돕는 자기분석 서비스’란 내용 역시 여기까지 잘 끌고 왔다. 아, 용케도! 지금까지 나의 고백을 통해 사춘기에 빠진 어른의 다섯 가지 감정 특성을 파악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 


먼저, 분노.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둘째, 회상(플래시백). 잘난 것 없는 내가 기댈 곳은 과거뿐. 이른바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런 것. 게다가 지금 내 삶이 왜 일그러졌는가 알려주는 과거의 힌트들. 

셋째, 자괴감. 남들은 다 자리 잡고 있는데 나만 버림받은 것 같은 잉여 인간으로서. 

넷째, 집중력 저하.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생각에 빠져 자꾸 샛길로 새는 젊은 치매 같은. 

다섯째, 자기 연민 혹은 셀프 힐링. 이래저래 불쌍한 인생, 누구 하나 챙겨주지 않으니 내 인생 내가 챙겨야 한다는, 그리고 지금 비우지 않으면 새로 채울 게 없을 것만 같은. 


다행히도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도와주는 서비스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자기분석 서비스에 나는 잠시 마음을 맡겨보기로 했다. 




# 자기분석을 도와주는 서비스 



1. 사춘기 아재, 퇴사학교에 가다 

‘퇴사학교’는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의 저자 장수한 씨가 창업한 비공인 오프라인 학교다. 장수한 씨는 삼성 생활 3년 만에 퇴사하고, 책을 내고, 그 경험을 살려 퇴사학교를 세웠다. 흔히 직장 생활의 위기로 3년, 5년, 7년이라는 매너리즘 사이클을 얘기하는데, 그는 첫 사이클을 넘기지 않고 과감하게 사표를 낸 사람이다. 빠른 결정만큼 영리하고 예민하며, 그 역시 상처받은 사람일 것이다. 


퇴사학교는 여러 프로그램을 갖추고, 학기제로 운영한다. 입시 학원이나 취업 학원의 반대편에서 남에게 저당 잡힌 인생을 안 살아도 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반골 기질의 학교를 만나는 것만으로 반가울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곳이 인생에 지친 손님을 기다리는 심야 식당 같은 장소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퇴사학교 프로그램 중 학기제가 아니라 1회로 진행하는 5시간짜리 1day 워크숍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강의명은 ‘Ore&project 아이덴티티 워크숍’(Ore&project 대표 배근정). 수강생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나 30대로 보였고, 마흔을 넘은 아재는 나 하나뿐이라는 게 새삼 외롭기도 했다. 수강생 중 한 명은 퇴사학교를 신청한 이유로 “직장 생활에 보람 따윈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서”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찌릿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마흔이 다 돼서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그 기분을 아는데, 영리한 그들은 벌써 그런 걸 느끼는구나. 그렇게 나만 무딘 것 같아서 아재는 또 잠깐 슬펐다. 


나의 정체성을 마주하는 5시간의 여정은 이런 순서로 진행한다. 먼저 나와 남의 미션을 구분하고, 다음으로 나만의 가치를 추려내는 작업을 거친다. 마무리는 나만의 오리지낼리티를 한 줄로 정의하는 과정이다. 다들 마지막 한 줄을 써 내려가면서 진땀을 빼는 모습이었다. 내 삶의 본질을 단 한 줄로 정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꿈이나 직업 찾기에 실패하는 것은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이다.” -딕 블레스,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 저자.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오리지널)을 찾을 때라는 코칭. 시간과 환경에 쫓겨 what(뭘 하지)하지 말고 why(왜 이 일을 하지)를 묻는 삶을 시작하라는 메시지. 배근정 강사가 소개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에 출연한 김용택 시인이 ‘사과’를 주제로 시를 써보라는 숙제를 내면서 했다는 대사였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제대로 보지 않고 어떻게 시를 써요. 여러분은 진짜 자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거예요.” 


사족 : 퇴사학교의 언어는 아재 이전의 젊은 세대에게 맞춰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재에겐 어른의 언어가 필요하다. 인생에 지친 아재를 위한 보양 특선 같은 프로그램이 포함되면 어떨까. 나이 마흔 넘은 아재만의 그룹으로 타기팅된다면 더 수다스럽겠지. 



2. 마흔의 현실 인식, 신랄하게! 

재취업, 이건 나이 들수록 어려운 문제다. 조직은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를 갖춘다. 위로 갈수록 포함되는 인원수가 적다. 시쳇말로 정말 잘난 놈만 임원이 된다. 그게 실력이든, 정치력이든 어쨌든. 


마흔의 이력서는 그 어떤 것보다 심플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처럼 군더더기 없이 심플해야 한다. 군더더기가 많은 아재의 이력서는 “오죽 쓸 만한 게 없으면”이란 이유로 탈락이다. 나는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든 단계마다 이력서를 써보길 권한다. 직장 인생의 중간 점검을 신랄하게 하라는 말이자, 자신의 현재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하란 얘기다. 아, 나는 그러지 못했다. 


몸값 높을 때 이직하는 게 업계의 상식인데, 나는 몸값 다 떨어진 백수 신세다. 나처럼 이력서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력서 쓰길 돕는 서비스가 창궐하고 있다. 나는 ‘커리어플래닛’ 정경균 대표에게 나의 이력서를 의뢰했다. 그리고 첫 번째 통화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제가 하는 서비스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냉정하게 자신의 현재를 인식하게 돕는 것, 두 번째는 인생의 무기가 될 만한 이력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라는 말이 좋았다. 나처럼 “뭐 잘 되겠지. 밥은 먹고 살겠지”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타입에겐 냉정한 시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경영과 마케팅을 전공하고 인사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베테랑이다. 일단 인사팀의 시선으로 이력서 코칭을 받는 게 마음에 들었다. 


커리어 코칭은 1회 2시간 정도, 2회로 진행한다. 1회 차에는 자기 탐색과 함께 SWAT 분석, 이를 통해 나의 핵심 역량을 뽑아내는 시간을 갖는다. 2회 차에서는 지난 이력을 바탕으로 핵심 역량만 추출해 담는 본격 이력서 메이킹을 진행한다. 이렇게 만든 이력서는 헤드헌팅 업체에 소개되고, 링크드인을 포함한 구인·구직 플랫폼에 올리는 과정을 거친다. 재취업자에겐 말 그대로 실전 도우미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스스로의 지난 인생과 경험치를 이력서 한 장에 얼마만큼 심플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 


이 글은 원고 마감이 있는 터라 2회 차(나의 이력서 완성) 전에 쓰고 있다. 나는 약간 흥분하고 있다. 내 복잡하기만 하고 쥐뿔도 없는 것 같은 능력이 북유럽 스타일처럼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서 약간 걱정도 한다. 너무 잘 포장되어 내게 맞지 않는 옷이 되면 어쩌나. 아, 가진 것 없으면서 정직하기만 한 이 보통의 아재를 어째야 하나. 


사족 : 내가 커리어 코칭을 통해 들은 희망적인 말 하나. “그래도 마흔 초반이면 가치는 떨어지지만 기회는 있는 나이예요.” 또 그는 내게 분명히 “이력서에는 당신의 핵심 역량을 담은, 흡입력 있는 문장이 포진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말을 할 때 정 대표의 표정에 약간 근심이 어려 있었다는 것이지만. 



3. 내 귀에 캔디, 소울링 

〈내 귀에 캔디〉라는 tvN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상대와 전화로 속닥속닥 소통하는 기획물이다. 사람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털어놓는다. 비밀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소울링’은 비밀이 보장되는 모바일 심리 


상담 서비스다. 모바일 앱을 통해 내 감정을 구술하면 그 감정에 따라 전문 심리 상담사가 일대일로 심리 처방을 해준다. 첫 화면에는 “당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다독인다. 나는 ‘내 귀에 캔디’에게 나의 심리를 적어 보내고 처방을 받았다. 하루 한 번씩 답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나의 심리 : 세상에 화가 나서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 없을까요? 또 주변에서 나의 미래를 걱정하고 의심하는 시선도 부담이 됩니다. 이럴 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처방전 : 당신 주변의 말들 역시 당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 본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주변은 더욱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지금은 자신을 잘 지탱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에게 매일 긍정적 메시지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에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네요. 짧지만 이틀이라도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 여행을 가서 자신의 부정적 마음을 글로 적고 태우거나 찢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부정적 마음을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있나요? 다음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사족 : 누군가 나의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 이런 이야기는 집사람과 솔직하게 나눠야 하는 건데”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익명의 누군가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아재의 현재는 모바일 공간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아재에겐 내 귀에 캔디 같은 달콤함이 아니라 까끌까끌한 처방전이 필요한 것이라고. 





Blowing in the wind 



긴 글을 마감하며. 어른 아이의 자기분석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를 만나는 일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어쩌면 꽤 오랫동안. 그렇게 나의 본질을 알았다고 안도하는 어느 순간, 다시 사춘기의 불안함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겠지.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바람에 흔들리는 날들이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만
Before they call him a man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요 

...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그 답은 바람만이 할 수 있지 








*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아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자 하는 아빠, 남의 삶을 기웃대지 않는 아빠, 멋스러움을 아는 '모던 파더'들의 말과 얼굴을 모으는 미디어 <볼드저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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