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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 Jan 23. 2017

눈, 사람

[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4]201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날 무렵

키다리 아저씨께


......일곱 가지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 선물들이 상자에 담겨 캘리포니아에 있는 가족이 보내준 것이라고 상상해요. 시계는 아빠가, 무릎 담요는 엄마가, 보온병은 할머니가-이쪽 날씨가 추워 제가 감기라도 걸릴까 늘 걱정하시죠-그리고 노란 메모지는 남동생 해리가 보낸 것이라고 상상해요. 언니 이소벨이 실크 스타킹을 보내줬고, 수전 숙모가 매튜 아널드 시집을 보냈고, 해리 숙부는(동생 해리는 숙부의 이름을 땄어요) 사전을 보내줬고요. 숙부는 초콜릿을 보내고 싶어 했지만, 제가 동의어 사전을 사 달라고 고집을 부렸죠.

아저씨도 제가 지어낸 가족의 일원이 되는 데 반대하지는 않으시겠죠?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中)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준 

금화 다섯 개로 일곱 가지 물건을 삽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이 멀리서 주디를 그리워하는 가족들이 자신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고른

선물이라고 상상하지요.

상상력이 없었다면, 그로 인한 문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외롭고 슬프고 절망적이었을까요.

(물론 상상력 때문에 우리는 현실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상상해봅니다.


오늘 밤, 밖엔 하얀 눈이 쌓여 있어요.

새들도,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먹을 것을 찾던 너구리 가족도 보금자리에서 자고 있고

세상의 슬프고 화나는 일들도 잠시, 없었던 일이 됩니다.

그렇게 평화롭고 따뜻한 밤입니다.

   





네가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나는 그림을 그려.

 

 

 

작고

완벽하고

아름답고

특별한

꼭 너와 같은

작은 눈송이 하나로 시작해

둘이 되고

셋이 되지.

 

 

곧 밤하늘은 

하얗게 떠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가득 차.

작은 눈송이들은 따뜻한 대지 위로 내려앉아.

온 땅이 하얗고 포근하게 뒤덮일 때까지.

꼭 너와 같이.



엄마 사슴은 아기 사슴을 데리고

고요한 자작나무 곁에서

내 하얀 캔버스 위 자욱을 살피고


여름날 추억이 깃든 고요한 정원에

코를 비벼대지.







눈이 내리면

세상은 잠시 다른 곳이 돼.




"엄마, 세상에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아요."


마법 가루 같은 눈은 차갑고 신기해.



눈이 그치면 

밖으로 나가볼까?

아주 잠깐만. 




엄마와 나는 하얀 눈에 첫 발자국을 찍었어.

그리고



눈 괴물도 만들었지.







눈을 너무 오래 맞았다가는


룬디(월요일)라는 이 펭귄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룬디?"



"룬디? 어디 있니?"




친구들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지.







다시 눈 위에 버려진 별눈이처럼.



조그마한 아기가 눈 더미 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있었어. 

엄마가 늑대에 쫓기다 그만 아기를 눈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거든. 

썰매를 쫓던 늑대들이 아기에게 몰려들었지만 머리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어. 

하늘의 별을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아기의 천진난만한 눈동자에 겁을 먹은 것만 같았지.



밤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어. 

아기의 눈 속에 그 별빛이 그윽하게 깃들었어. 

그때 지나가던 사내, 시몬 소르사가 눈 위에 있는 아기를 발견하고는 자기 썰매에 태웠어.



별눈이는 시몬의 집에서 행복하게 자랐어.

별빛이 그윽하게 깃든 눈동자는 무엇이든 꿰뚫어 보았지.

하지만 어른들은 별눈이의 맑은 눈을 무섭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시,
별눈이는 순록 가죽 포대기에 꽁꽁 감겨 하얀 눈밭 위에 버려졌어.



별빛이 아이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비추고 그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았어.

아이의 마음속은 착한 마음과 신을 향한 경건한 마음으로 꽉 차 있었지.

아롱아롱 맺힌 별빛 덕분에 아이의 눈은 한층 더 신비롭게 빛났어.

별눈이는 이제 저 멀리 별들 너머, 천국 문 앞까지 볼 수 있단다.




별눈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 후로 별눈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별눈이가 지금쯤 어느 집에 보금자리를 틀었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우리는 다만 그곳이 더 나은 곳이기를

바랄 뿐이야...... 별눈이는 지금도 그 맑디맑은 눈으로 일곱 겹의 벽을 꿰뚫어 보고, 사람의 마음을 훤히 헤아

리고, 저 별들 너머 파랗게 끝없이 열린 하늘 너머, 성스러운 천국의 문 앞까지 멀리 내다보고 있을 거야.




별눈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물론 아직까지 어린아이겠지. 

별눈이가 사라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니 말이야. 

별처럼 또랑또랑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착한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사라져버린 별눈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별눈이는 라플란드 아이답게 검은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하고 있다지만,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일 수도 있어. 

머리와 눈동자 색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 아이들은 자라면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린 별눈이를 만날 수 있을 거야.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이 지나고

멀고 멀게만 느껴지던 목요일과 금요일을 지나

즐거운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내고 나면

사라졌던 월요일이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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