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숨 구멍》창작 노트
몇 년 전, 직장인이었던 시절, 세상 어디에나 있고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이상한 직장 상사가 나에게도 있었다. 부서 회의를 한 번 할 때마다, 전 부서원의 얼굴을 흙빛으로 만드는 사람. 유달리 괴로웠던 어느 날의 회의를 마치고, 책상으로 돌아와 깊은 한숨을 휴, 내쉬었다. 답답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는지, 한숨 소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책상 너머 동료가 내뱉은 한숨은 어찌나 컸던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과장님 책상에 구멍이 뻥 뚫리겠네요."
《한숨 구멍》(창비 2018)은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다. 처음에는 '한숨'과 '구멍'이라는 두 단어만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단어를 연결시키니 재미있는 그림이 떠올랐다. 한숨에 뻥 뚫려버린 구멍이라니! 책상에 뻥 뚫린 구멍은 마치 내 가슴에 뻥 뚫린 구멍 같기도 했다. 아픈 동시에 시원한 느낌이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괴로운 일이 나에게 또 뭐가 있을까? 새 직장에서 더 끔찍한 상사를 만나는 것?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고통받던 서른몇 살의 직장인인 나는 소심하고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말 한마디 걸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닥쳤다면 가장 끔찍했을 것만 같은 상황, 바로 '전학'을 가는 상상에 이르렀다. 아마도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울고 싶었을 것이다. 마치 회의실로 가려고 몸을 일으킬 때의 내 심정처럼. 밥을 먹어도 얹힐 것만 같겠지. 회의를 마친 내 심정처럼. 계속 한숨만 쉬겠지. '휴우-' 하고.
송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까만 구름이 가슴속에 가득 차서 자꾸 한숨만 쉬게 된다.
"후."
밥을 먹을 때도, 아빠와 함께 유치원에 갈 때도, 송이의 가슴속에는 까만 구름이 가득해 갑갑하다. 새로 만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도 하나도 즐겁지 않고, 짝꿍 아영이와 바람개비를 만들고 한자리에서 점심을 먹어도 까만 구름은 사라질 생각이 없다. 이제는 배 속에 까만 구름이 가득 찼다. 그래서 또 한숨만 쉴 뿐이다.
"후유."
왜 까만 구름은 사라지지 않는지, 그게 걱정이 되어 송이는 또 한숨을 쉰다.
"후유우."
까만 구름은 점점 더 커져서 송이의 머릿속까지 차오르고, 한숨을 쉬면 쉴수록 더욱 커지더니 결국, 뻥! 하고 터져버렸다. 송이 가슴에 커다란 한숨 구멍이 뚫리고, 구멍 속에서 까만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더니 세찬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마음속 두려움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고 내뱉기란 아이도 어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송이는 새 유치원에 가는 일이 무척 두렵고 무서웠고, 엄마와 아빠에게서 아마 “괜찮아”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을 테다. 괜찮은 일이라고 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 들었으니까, 송이는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한숨만 쉰다. 직장 상사의 모진 말 따위에 상처받을 시간에 더 나은 기획서를 쓰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하며 한숨만 쉬었던 내 모습처럼. 송이의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은 사실 한숨으로도 풀리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터트린 울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꽁꽁 숨겨두었던 마음속 두려움은 검은 구름의 모습으로 뻥 뚫린 구멍 속에서 흘러나온다. 빗물은 그 두려움으로 인해 흘리는 굵은 눈물방울이다.
송이가 용기를 얻는 후반부를 쓰면서, 나는 “괜찮아” 혹은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등의 손쉬운 위로의 말을 쓰지 않으려 조심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일은 없다. 스스로 용기를 내어 극복하기 전까지는. 대신 나는 송이에게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과 천진난만한 친구의 선물이 불러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을 선물했다. 그리고 언제나 등 뒤에서 자신을 불러줄 엄마의 목소리까지. 그렇게 송이의 한숨 구멍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들로 메워졌다. 송이의 마음속에는 내일은 아마 오늘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용기의 봉우리가 검은 구름 사이로 솟아났을 것이다.
끔찍한 회의를 마친 그날, 내 가슴에도 한숨 구멍이 뻥 뚫렸다. 비록 송이처럼 속 시원히 소리 내어 울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내 한숨 구멍은 금세 시원한 바람과 다정한 사람들의 말소리, 맛있는 저녁식사로 차올랐다.
《한숨 구멍》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유치원, 어린이집에 처음 가는 어린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 회의에 지친 직장인의 심경이었다는 것은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