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글은 한 편의 이야기인 동시에, 장면들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며, 때로는 장면을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면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글은 그림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리고 장면들이 흥미롭게 흘러가도록 일정한 구조와 리듬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이제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아기 돼지 삼 형제’와 같은 친숙한 이야기가 어떻게 그림책으로 다시 쓰였는지 살펴보자. 그림책 글의 구성 방식과 특징을 더 쉽고 흥미롭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는 성에 용이 나타난다. 독자는 용이 당연히 공주를 납치해가리라 예상하지만, 로버트 문치는 용에게 공주가 아닌 왕자를 납치하도록 한다. 그런데 공주는 무서워하기는커녕, 화가 나서 종이봉지 하나만 걸쳐 입고 용을 찾아간다.
로버트 문치는 익숙한 옛이야기를 새로운 그림책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만 서술하고 나머지는 모두 생략해버렸다. 왕궁이나 숲, 무시무시한 용에 대한 묘사, 혹은 왕자와 공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다. 심지어 용과 왕자, 공주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공주는 용을 찾아 떠나지만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아주 쉽게(그저 페이지를 한 장 넘기는 정도의 수고로움만으로) 용을 찾아낸다.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다음, 오로지 공주가 용과 나누는 대화, 공주가 왕자와 나누는 대화만으로 갈등을 끝내버린다.
이 책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너는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짧은 글을 통해 독자는 독립적이고 판단력마저 훌륭한 공주의 성격과 가치관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그림에는 이러한 글의 특성이 매우 잘 반영되어 있다. 공간은 거의 그려져 있지 않고 개성적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치중한 그림이다. 시공간적 배경으로는 상투적인 성과 숲을 보여줄 뿐인데, 이 이야기에서 배경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늑대의 입장에서 보는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다. 책을 펼치면, 죄수복을 입는 늑대가 나와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늑대야. 알렉산더 울프. 그냥 알이라고 부르기도 해.”
그렇다. 그냥 악당 늑대가 아니다. 그에게도 ‘알’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알은 어쩌다가 늑대 이야기가 이렇게 고약하게 소문이 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뭐라고 변명을 하는지 어디 한번 들어나보자,’
늑대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이 책은 교묘한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발한다. 글은 능청스러운 늑대의 목소리로 ‘듣는’ 늑대 입장의 변명이지만, 그림은 멍청한 늑대를 골탕 먹이는 듯 보이는 만만찮은 돼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알을 뺀 나머지 등장인물들-신문기자, 간수 등-이 모두 돼지이고, 이들이 알을 감시하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알의 말이 사실은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의심을 품게 된다.
글과 그림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조화를 이루며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림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