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지나치게 효율을 따지는 편이다. 의심도 많아서, 모르고 바가지를 쓰는 일은 없다. 바가지를 쓸 경우는 그 정도는 쓰겠다,고 내 스스로 용인했을 때이다.
누구나 그렇듯 여행을 갈 때도 늘 비용안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려고 애썼다. 가족 구성원 모두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지금 이사한 집의 위치도 거의 모든 것을 중간쯤 맞추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 절충안의 결과였다. 물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가 그러다보니 언제나 중간쯤 머무른다는 것에 있다.실패를 피하려고 언제나 안정권의 선택을 하다보니 만족은 언제나 평균에 머무른다. 이른바 '애매한 만족'.
여행을 갔다왔을 때에도 크게 실패하지 않고 적당히 만족했지만 어느 딱 꽂히는 순간이 없다. 모든 상황을 컨트롤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무사히 다녀왔다는 것에 의의를 두지만 그럴 바엔 그냥 안온한 집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와 남편은 정말 많이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많이 이성적인 나와 감성적인 남편은 여행을 할 때도 그랬다. 남편은 가끔 돈을 많이 써서라도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어했다. 아주 짧더라도.
차를 타고 가다 만난 풍경이 좋은 곳의 카페에서는 배가 불러서 나는 낭비라고 생각하는데도 그는 1인 1음료를 시키고 단 5분이라도 풍경을 즐기기를 실행했다. 하늘에 여러 모양의 구름이 있고 앞으로 하염없는 논이 이어져있는 카페였다. 꼭 필요하지 않았던 귀여운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포함해 음료를 잔뜩 시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가끔 내가 여행을 돌이킬 때 떠오르는 순간들은 대체로 그런 순간들이다.
아이들도 그렇다. 이건 낭비야, 별로 쓸모가 없어, 하는 일에 그들은 올인을 잘 한다. 언젠가 아이가 학교 마당에서 모란 씨앗을 주워왔다.아무런 의심없이 그녀는 빈 화분을 달라고 졸라대어 흙을 담고 심는다. 작은 아몬드 초콜렛같은 모란 씨앗은 너무도 단단해보였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모란은 3년후에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런 계산없이 심었던 오늘의 모란씨앗은 이미 피어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이는 이미 꽃이 피어있는 화분을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건 별 소용없는 일이야, 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소용없는 일인지도 모른 채.나는 내가 똑똑한 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양연화라는 것은 얼마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순간인지.
화양연화, 그것은 너무도 짧기에 강렬한 것이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름으로는 용기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렇게 정의내리면, 화양연화는 생각보다는 자주 있다.
그러니 마음이 부르는 순간에, 그 순간에 맞는 최고의 선택을 하자. 적당하고 합리적인 선택말고.
나도 이제는, 전체적으로 무탈한 여행말고, 바로 그 순간을 위한 여행계획을 짜야겠다.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논밭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 완벽한 조식, 또는 제일높은 전망대, 모든 것이 적당히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 하나만을 하기 위한,굳이 그것만을 하기 위한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