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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l 13. 2023

18장 양이와의 동거 생활: 각자 알아서

반려동물을 기른다고 하면 일이 많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강아지의 경우 산책과 놀이가 필수인 만큼 보호자의 수고에 따라 강아지의 행복도 비례하는 반면, 고양이 돌봄에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산책과 운동을 시킬 필요가 없고, 배변도 플라스틱 실내 화장실로 해결이 되며, 무엇보다 집안을 자기의 영역으로 여겨 편안해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동거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반려묘로서의 진화를 거듭하였겠지만, 몸집이 작고 움직임이 크지 않은 본성과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려견 집사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부분은 아마도 강아지를 오랜 시간 혼자 두는 일일 것이다. 사람과의 유대가 깊고 같이 있고 싶어하는 강아지들이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 하여 분리불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고양이는 집사에게 크게 의존적이지 않아 하루정도의 물과 식사만 준비해 놓으면 잘 지내기도 한다. 


일반 고양이에 비해 양이는 한 급 더 독립적이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마치 나 혼자 사는 것처럼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해결한다. 식사와 간식도 규칙적이라 시간에 맞추어 대령해 놓으면 집사를 귀찮게 하는 경우가 없다. 놀이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놀이 시간에만 잠시 놀지, 시도때도 없이 놀자고 하거나 어슬렁대며 심심한 티를 내지 않는다. 집을 비우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난감을 꺼내 놓고 나가지만 양이는 노는 적이 없다. 처음엔 이러한 양이가 지나치게 소심하고 무기력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으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양이의 성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홀로 길거리를 떠돌면서 발달된 생존 본능 때문인지, 보호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며 힘센 고양이들한테 치여서 그런지, 아니면 진짜 성향 자체가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양이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은 집사에게는 고맙고 편리한 일이다. 집사에게 잘 치근덕대고 애교도 부리는 고양이들이 가끔씩 부럽기도 하지만, 별로 할 일이 없다는 점에서는 내가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양이가 독립적이어서 편한 것도 있지만, 나 역시 ‘나홀로’ 스타일이어서 룸메이트 로서의 좋은 합을 이룬다. 만일 양이가 냉장고 위를 아슬아슬 올라타거나, 장 속 물건들을 흩으러뜨리거나, 나의 간식을 탐한다면, 신경 쓰이고 짜증도 났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려면, 각자 알아서 사는 독립심도 필요하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기대란 나의 원함이나 바램에서 비롯되지만 상대방에게는 책임이나 부담으로 다가간다. 양이가 발랄하고 애교 많은 고양이면 좋겠다는 바램은, 무던한 양이를 재미없는 양이로 보게 하고, 털털한 고양이면 좋겠다는 바램은 양이를 까다로운 고양이로 보게 한다. 양이 역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집사의 눈치를 볼 것이다. 어느 정도의 기대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지나친 기대는 덫이 된다. 


기대 못지않게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이래야 된다. 안된다’는 신념이다. 만일 반려묘는 친근하고 영특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할수록 무심하고 게으른 고양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고양이와 비교하며 아쉬움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부부라면, 부모라면, 형제라면, 친구라면, ‘---해야 된다, 안된다’라는 믿음을 대부분 갖고 있다. 남편이라면 이래야 된다는 신념이 강할수록 그에 반하는 남편의 행동은 반감을 가져오고, 친구라면 이래야 된다는 신념이 강하면 친구로부터의 배신감이나 소외감을 경험할 수 있다. 신념에는 거창한 것들, 쪼잔한 것들, 사소한 것들이 들어있다. 양심과 도덕성이 엄격해야 된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지 않는다, 옷을 제대로 입어야 된다 등에 걸친 다양한 믿음들은, 상대방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나의 태도와 시선을 결정짓게 한다. 한 쪽의 신념이 너무 강하다면 다른 한 쪽은 눈치를 보고 자신감을 잃으며 관계의 불편함을 느낀다. 


독립성과 반대에는 의존성이 있다. 정서적인 의존성이란 자신 대신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다. 작게는 의상, 메뉴, 장소를 선택하는 것부터, 크게는 학교나 이사 결정, 배우자나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의견이나 결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통점은, 스스로의 판단이나 확신에 대한 불안함을 타인을 통해 재확인하고 해결하려는 점이다. 결정장애가 있는 지인이 의견을 물어오면 처음 몇 번은 기꺼운 마음으로 돕게 되지만, 나중에는 귀찮아지거나 매번 의견을 물어오는 지인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가까운 관계에서도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면, 관계의 피로감이 쌓여간다. 지나치게 독립적인 것도 문제가 되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의존적인 경우이다. 


간섭과 방해를 싫어하는 양이를 조심하다 보니, 혹시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도움과 친절이라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참견이나 개입을 하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한 마디로,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이다.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알아서 할 것이고, 설혹 알아서 못한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건 상대방의 몫이다. 독립적인 양이와 살며, 각자 알아서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 알아서 살다 보니, 나에 대한 확신과 베짱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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