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아기의 아빠는 왜 육아휴직을 쓰는가
작년 이맘때, 난 이직에 대한 희망과 꿈을 품고 한창 이력서 준비와 면접을 준비 중이었다.
오늘처럼 참 추웠던 그날, 여전히 발은 시리고 몸은 부르르 떨렸지만, 왼쪽 옆구리에 낀 회사 노트북을 들고 점심을 거른 채 카페로 향했던 그 가벼운 발걸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공채로 입사한 회사를 떠나, 새로운 회사로 떠난다.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로 실현되리라는 건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몇번의 이력서를 (대~충) 쓰고 떨어져 보면서, 이대로 시간낭비 하다간 올해 또 회사 생활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버티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래, 제대로 준비해 보자’
이직 준비 5개월만, 드디어 성공
최종 2곳에 합격했다. 내가 원했던 수준의, 그리고 이직을 주변에 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두 회사였다. 물론 내가 그 두 회사의 사명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땐, 가까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구 말렸다. “지금 직장보다 더 안 좋은 곳 아냐? 더 작은 곳 같은데 왜 굳이 옮기는 거야?” “지금 회사 복지가 더 좋잖아” “연봉도 지금 회사가 더 많이 주지 않아?” 모두 맞는 말이었다. 매일 피말리는 하루를 보냈던 나에게, 외부에서 보는 ‘외형적 조건, 가치’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 막힌 부분을 뚫어내는 것. 더 이상 나이들기 전에, 즉 마흔살 언저리로 쥐도새도 모르게 넘어가기 전에 내 실력을 쌓아야 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 명확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큰 고민 없이 2곳 중 1곳에 최종 이직 통보를 하고 난 현재 이직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육아휴직’
아이를 낳고 얼마 채 되지 않아 사랑스러운 아들, 아기가 태어났다. 출산, 육아라 함은 더 큰 책임과 어깨에 막중한 무게를 주며, 남자이자 가장에게는 삶의 터닝 포인트를 주는 계기라 하였거늘. 난 이제 태어난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두고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왜? 도대체…왜?
매일 아이를 재우며 바라본 아가의 얼굴
아가는 세상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잠에 든다. 잠깐 칭얼거림은 있지만, 그마저도 귀여운 게 내 아들임이 틀림없다. 내 품에 잠든 아가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가 갑자기 커서 아빠 나 00 하고 싶어’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대기업 직장인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우리나라 월급쟁이의 삶은 자식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재정적 여건을 마련할 수 없다. 특히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고 있는 가장이라면 더욱 더 명확한 미래의 암울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매달 500만원 입금“ 그리고, 생활비, 여가비, 아이 교육비 나가면 남는 건 … 또 다음달 월급. 악순환은 지속되고, 아빠는 나이 들어가고, 아이는 나이 먹어간다. 아빠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할 나이에, 아빠는 은퇴를 앞두고 노쇠한 체력으로 가정을 이끌어가야 할 부담감의 족쇄에 갇히게 된다.
나는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 ‘안 돼’ 라고 말하는 아빠는 되지 말자고. 그리고 나이 들어갈수록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세상을 더 크게 살 수 있도록 꿈을 펼쳐내는 아빠가 되자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회는 나 스스로가 아닌 내 아이가 만들어줬다. 바로 ‘육아휴직’ 이라는 법적 제도로…
그 육아휴직 덕분에, 나는 곧 회사를 잠깐 쉬게 된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 지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감히 도전하고 새롭게 인생 펼쳐내 보고자 한다. 그 이야기를 틈틈이 써 내려갈 예정이다.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