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빠라고 불리고 싶단다
아빠는 커녕, 빠빠도 모른다
11개월 된 아기가 할 줄 아는 말은 '엄마', '맘마'다. '빠빠'의 존재는 알기는 아는데, "빠빠 어딨어?" 라고 물으면 아기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벽에 걸린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를 빤히 쳐다본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를 갔다오고 난 뒤 벽에 붙인 포스터인데, 처음에는 장난으로 "여기 아빠 있네?"라고 몇 번 했더니, 진짜 고릴라를 아빠로 아는 모양새다. 장난인 줄 알지만, 내심 섭섭함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나름 육아 열심히 했는데... 아직도 아빠를 모르다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뭐...
아기에게 "엄마는? 엄마 어딨어?" 하면 냉큼 고개를 휙 뒤돌아본다. 단 0.1초의 고민도 없이 엄마를 빤히 쳐다보는 아기를 보면서, '아 그렇지, 주양육자는 엄마지.' 엄마의 돌이 다돼가는 아기에 대한 헌신, 그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육아 했네 외쳐도 의미가 없다. 아기가 가장 잘 안다. 누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노력하고, 시간을 쏟았는지...
언제쯤 아빠를 알까?
육아휴직 한 아빠는 엄마도, 밖에서 돈 벌어오는 가장으로서의 아빠도 아니다. 그냥 돌봐주는 사람? 냉정하지만 그렇다. 아빠라면 응당 아빠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진데, 그것이 살림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뭔가 엄마와 역할이 겹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빠는 아빠의 역할이 있다. 그것이 꼭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 아빠는 아빠가 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집 안에서 힘을 쓰는 무엇이든, 아기가 커갈때 아빠라는 존재로 옆에 있어주는 것이든, 주말에 함께 나갈 때 어디든 차로 데려다주는 드라이버로서의 아빠든. 미술관에서 아기가 보고싶은 미술품을 볼 때 눈높이에 맞춰 자신을 안아주는 딜리버리 맨으로서의 아빠든. 어쨌든 아빠는 분명 필요한 존재다.
오늘도 열심히 외친다. "아빠~~ 해봐"
"아빠? 아빠??? 아빠빠???" 계속 아기와 매트리스 위에서 뒹굴면서, 한켠에는 언젠가 아빠라는 단어가 아기 입에 붙게끔, 아니 한번은 정말 자연스럽게 아빠를 부르기를 기대하며 나도 모르게 주입식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이게 뭐라고, 아기한테 인정받으려고 육아하는 것도 아닐텐데, 뭐 이리 목숨을 거나. 별 것 아니다. 그러나 육아휴직하며 아기에게 꽤나 많은 힘을 쏟는 아빠라면, 응당 "아빠"라고 불리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심'이자 '권리'이다.
그래서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그럴거다.
"00아, 아빠~~~~ 해 봐"
(제바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