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차마 하지 못한 말
육아 때문에 휴직을 택하는 아빠는 없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육아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작고 소중한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 라는 이유를 들기도 하지만, 단지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육아휴직에 따르는 수많은 리스크를 짊어질 아빠는 많지 않다.
어떤 계기,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훨씬 더 강력한 무언가 말이다.
남자에게 휴직은 '기회'가 아니라 '도전'이다
기회는 긍정적인 느낌이다. 뭔가 나에게 부여된 선물과도 같달까? 반면, 도전은 성공과 실패를 내포한 양면적인 존재다. 오히려 실패가 조금 더 앞서는 부정적인 느낌마저 든다.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는 실제 현실과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랄까? 어쨌든, 남자들은 휴직을 무조건적인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는 길로 보지 않는다. 실패할 수도 있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실패를 안고도 한번 나서보겠다는 '무모함'이 내포돼 있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스러워 진다는 클리셰가 있는데, 그말인즉슨 전투적, 야생의 자세가 조금 더 소프트해진다는 여성성을 말하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사실 나만 봐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보다는 안정이 편하다. 그건 비단 남여를 편가른다기 보다, 인간의 본능성, 즉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 남자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정말 힘들고,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잘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런 남자들에게 육아휴직이란 도전은,
마지막 남성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남자, 아빠는 반전을 꾀한다
남자는 보통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사회생활 10년차 언저리에 접어들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일찍, 늦게 하신 분들은 예외로 하고. 어떤 일에 익숙해지고 프로페셔널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그 일에서 더이상 성장하거나 배울 것이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빤히 보인다. 내 앞에 앉아있는 팀장님이 내 미래고, 해직 통보받고 짐싸는 전무님이 내 미래다. 대기업 임원이라고 해 봤자 말로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걸 본 아빠는 고민이 많아진다.
미혼 남녀와는 완전 다르다. 씨~게 온다 느낌이... 왜? 아기 때문에
아기를 보며 생각한다. '이대론 안 돼'
아무리 맞벌이 시대라 해도, 수천년을 바깥 세상에서 돈 벌어오고 사냥하던 남자들에게 가정을 지키는 것에 대한 본능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나, 우리가족을 좀 더 잘 살 수 있게 할까? 오직 그 고민이다. 잘 산다는 건 외적인 것들, 예컨대 영유를 보내고, 좋은 학원과 사교육을 받게 하고,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을 테고. 좀 더 내적으로는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할 때 '말리지 않고', '혼내지 않고'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없다'는 건 결국 돈이 없음과 직결되고, 돈이 없다는 건 결국 가정의 가장인 '아빠의 소득과 벌이'에서 귀결되기 때문에...
육아휴직의 '휴', 쉴 휴 자가 아니다. 한숨의 '휴~'다.
그래서 휴직을 내고 회사를 안 나가도 매일 한숨만 는다. 뭔가 해보겠다고 나왔는데, 생각보다 계획대로 내 삶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자유의지로 24시간이 주어지면 온전히 내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랜 관성에 젖은 내 삶의 패턴 속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한 하루를 반복적으로 살아간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회사에 안 나가도 되는데 아침 6시에 눈이 깨고, 집에 있어도 되는데 괜히 씻고 밖으로 나간다. 잠깐은 쉬어가도 되는데, 도무지 쉴 생각을 하지 않는다. 24시간 내내 머리를 굴린다. 왜? 불안하니까...
후퇴는 없다
이미 휴직을 쓴 사람은 회사에서 낙인이 찍혀 있다. 본인 팀에, 인사팀에. 돌아가면 똔똔(본전) 아니면 마이너스다. "오~ 요즘 아빠들 육아휴직 많이 쓴다던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어떻게 남자가 육아휴직을 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쉬지 못하고 수년째 회사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육아휴직 쓰고 한가롭게 노는 듯한 남자(아빠) 직원이 질투, 시기심까지 생겨난다. '저 사람은 뭐길래 저렇게 한가롭게 휴직이나 쓰고 있지?' 물론,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바로 회사의 수많은 '아빠들'... 육아휴직은 쓸 수도 없는 환경에 놓인, 매월 돈 벌어서 집에 월급 갖다줘야 하는 대한민국의 무수한 아빠들이다.
육아휴직 한 아빠들이여, 세상에 나올 것
아빠들, 안다. 집에서 육아 하느라, 그리고 또 가장으로서 가정의 현재와 미래도 생각하느라 머리 깨질 거 잘 안다. 그럴 때일수록 집 안에서 곪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의 시간은 매일 줄어들고 있다. 휴직의 시간은 대한민국에서 최대 1년, 부부가 모두 써 봤자 각각 1년 6개월이다. 요즘 20대 청춘들이 군대 갔다오는 시간이다. BTS 벌써 다 전역한 거 생각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이 시간, 하루하루를 세상에 내던져야 한다. 뭔가 해 보기로 하고 나온 이상,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밑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극복해 내야 한다.
수많은 아빠들이여,
아니, 아빠가 된 수많은 남자들이여
아니, 육아휴직을 쓴 수많은 남자 아빠들이여
힘내세요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To-be-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