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아빠의 싱가포르 여행 5박 6일
MBA에서 떠난 해외 필드트립
돌도 안지난 아빠에게, 아기와 와이프도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사치일 거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해외필드트립(?)이란 명목으로 1학기가 끝난 후 해외로 탐방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다는 건 와이프에게 육아를 독박으로 맡긴다는 것이고, 나 또한 아기를 떠나 있는 시간 자체가 낯설고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
근데, 싱가포르잖아...?
싱가포르는 나에게 특별하다. 일단 부동산 개발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싱가포르는 볼거리, 배울거리가 정말 많은 곳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번도 안 간 게 부끄러울 정도로 그곳은 나에게 현업과 직결된 곳이자, 내게 단순히 여행이나 관광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도시, 국가였다. 사실 아기 출산 전에, 와이프와 해외여행 5곳을 꼭 가자며 버킷 리스트(Bucket lists)를 만들었는데, 그 중 내 마음 속 1순위는 단연코 싱가포르였다. 다만, 아기를 임신한 아내에게 뙤약볕 쬐는 무더운 날씨의 싱가포르가 내 1순위라고 주장하는 건 내 이기심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싱가포르는 잠시 저 뒤로 보내놓고 나트랑, 방콕 같은 휴양지를 앞세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선택에 일절 후회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당분간은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싱가포르가 MBA 해외필드트립 프로그램의 목적지라니... 그야말로 '유레카?', 아니... '세렌디피티'같은 운명적 순간이라고 느꼈다.
와이프의 한마디 "다녀와!"
그녀는 강인하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독립심이 강하고 또 설사 스스로 걱정되는 면이 있어도 혼자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끔은 내게 강하게 말하는 그 말이 진짜일까? 하는 우려도 되지만, 어쨌든 와이프는 허락해 주었다. 내가 싱가포르를 얼마나 가고 싶어하는지 알기에... 오죽하면 내가 싱가포르를 가지도 않고, 싱가포르 10개 테마로 브런치에 연재까지 했을까.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는 주저않고 싱가포르행 티켓을 예매했다. 가슴이 뛰었고, 정말 이 시간을 소중히 잘 써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그 시간은 아내의 희생이 따르는 결정이기에...
가는 곳마다 아내, 아기가 생각난다
공항에 도착했더니, 우리 아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기를 데리고 출국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아들도 빨리 해외여행을 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내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JEWEL을 향했다. 신이 나서 발걸음 가볍게, 땀을 쪽쪽 흘리며 경보(?) 수준으로 달렸던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그 경이로움에 놀랐고, 한 10초 정도 응시하고 난 다음에 우리 가족이 생각났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내는 아들과 매트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기를 보러 와 주신 장모님도 함께 계셨다. 뒤로 보이는 VORTEX 폭포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다음에 꼭 함께 오자며 다짐의 약속을 했다. 호텔로 출발 전 딘타이펑 딤섬을 먹기 위해 혼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맛이 없었다. 뭔가 혼자 하는 여행이 내심 홀가분하면서도, 한켠의 허전함이 크게 자리잡은 탓인지, 낯설고도 어색하고, 불편한 여행이 계속되었다.
싱가포르 5박 6일 동안 참 부지런히도 다녔다.
MB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간 것이다 보니 물론 함께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현업에 종사하는 어른들끼리 함께 하는 것이다 보니 각자의 목소리, 자율성이 높았다. 가이드, 학교 측과 협의하여 무더운 날씨에 어쩔 수 없이 도는 관광 프로그램을 대부분 취소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나만의 테마를 잡고 여행을 시작했다.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가족과 반드시 함께 오리라
일부러 마리나베이샌즈 근처로 가지 않으려 했다. 다음에 꼭 가족과 싱가포르를 온다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에 묵고, 또 루프탑 수영장과 바를 가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싱가포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 호텔의 상징성과 장관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들었다. 모셰 샤프디 건축가의 설계로 장엄했던 건축학적 아름다움, 쌍용건설이 지은 시공적 완성도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 루프탑 수영장/스카이파크의 설계와 시공에 대한 전문성은 또 다른 기업들의 합작이 모여 완성된 하나의 예술품(Artwork). 이것만큼은 또 싱가포르를 오기 위해 남겨두고 싶었고,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었다. 싱가포르의 가장 아름다운 보물은 가족에게 선사하고 싶었달까. 다른 MBA 원우들은 이 호텔 근처 몰, 카지노, 루프탑 바 등을 즐겼지만, 나는 일부러 피해 혼자 여행을 떠났다. 앞의 이유들 때문이다.
"PS. Cafe, Dempsey 로 가 주세요"
차이나타운에서 다같이 중식을 먹고, 각자의 일정대로 뿔뿔이 흩어지던 와중. 나는 홀로 빠져나와 무더운 35도의 여름에 그랩을 부르기 위해 메인 도로로 벗어났다. 잠깐 5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겨드랑이 양쪽에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등줄기는 흥건히 젖어 빨리 택시 안 시원한 에어컨을 불렀다. 그랩 택시는 탑승장소가 아닌 곳에 설정하면 이상한 곳으로 탑승지를 임의로 찍어, 바로 내 현재 위치가 아닌 조금씩 벗어난 곳으로 이동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2-3분을 더 걸었고, 겨우 그랩 아저씨와 만났다. "Hi, Are you Justin?" "Yes, I am. Ps Cafe, Dempsey, Please."
택시에 흘러나오는 아이유 노래, 마음을 드려요
귀에 익숙한 목소리와 가사가 흘러나온다. 아이유의 노래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드려요 라니... 그랩 앱을 다시 보니 기사 이름이 한국 이름이다. '어, 한국 아저씬가?'... 바로 한국어로 물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기사님 왈, "?????.. No~~!!" 아니란다. 그냥 싱가포르 분이란다. 그렇게 말을 트고 약 20분간 대화를 나눴다. 싱가포르는 혼자 오셨나요? 혼자 싱가포르는 뭐하러 오셨나요? 등등... 간단하게 답을 하고 나는 내가 궁금한 걸 물었다. 단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나의 학구열을 뽐내기 위해, 아저씨께 이것저것 물었다.
싱가포르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잘 돼 있다는데 실제 그런가요? 체감하시기에 물가는 어때요? 지금 가는 Dempsey라는 동네가 요즘 핫하다면서요? 한국사람들도 요즘 싱가포르 많이 오죠? 싱가포르 날씨가 이런데 실제 현지인들이 체감하기엔 어때요? 여기도 교육열 높죠? 한국도 그런데 여긴 더 심하다던데... 등등
도착, PS. Cafe
여긴 내가 휴직 전 회사 다닐 때 정말 많이 보았던 카페다. 숲속의 카페, 자연친화적 공간 기획의 사례로 많이 꼽았던 곳이다. 역시 이미지는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감흥이 별로긴 했다. 완전 휴양적인 느낌도, 도시/현대적인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뜨겁고 빡빡한 싱가포르 도시 내 로컬들의 휴식처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평일에 갔던 지라 사람들이 덜 붐볐고, 특히나 관광객도 없어서 좋았다. 조금 사는 엄마, 아이들이 놀러온 느낌, 조금 사는 친구들이 브런치를 즐기는 곳인 것 같았다. 싱가포르처럼 자연과 숲이 계획적으로 잘 조성된 도시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숲과 자연을 찾는구나... 를 보면서 인간의 본연적인 '자연에 대한 친화, 추구' 감각은 어딜 가나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 가장 비싼 동네 맨하탄 중심의 센트럴파크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고, 가장 비싼 뉴욕 집들이 그곳 인근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걸 보면.
에어팟을 꼈다,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자연을 온전히 느껴보려 에어팟을 꼈다. 물론 초코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덤이다. 너무 친절한 매니저 덕분에 커피만 마시기가 조금 그래서, 디저트 추천을 요청했더니 이상한 레인보우 케이크를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그냥 초코케이크를 달라고 했다. ^^;; 싱가포리쉬 영어가 귀에 꽂히니, 내가 온전히 느끼려 했던 PS CAFE 무드를 느끼기 어려워, 죄송하게도 에어팟을 꼈다. 노이즈 캔슬링을 누르고, 카페 한가운데 앉아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 앞에 엄마 둘, 아기 둘'이다.
또다시 아기, 와이프가 생각이 난다. 여기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또 내심 한켠에는, 그래도 혼자 와서 이렇게 보내는 시간 자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싶다가도 그런 두가지 극단의 생각이 양립했달까. 푹 쉬러, 생각을 모두 지우러 왔는데 오히려 생각이 더 커지는 카페인 것 보니, 오래 있기는 힘들겠다 싶었다. 케이크를 빠르게 먹어 치우고, 한 1시간 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육아휴직 중 싱가포르 여행, 너무나도 감사한,
그러나 아기, 와이프가 24시간 생각나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지만,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만 남겼다. 아내, 아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