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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Aug 17. 2022

프라하 AirBnB 주인 추천으로 간, 리베레츠

나에겐 예슈테트(Ještěd) 산 그 자체인, 북부 보헤미아 도시


1. 에어비앤비 주인장의 고향에 가다.


2019-2020년 겨울방학

약 2개월 간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

숙소 구하는 데 애를 좀 먹었다.


결국 2개월 계속 머물 숙소 구하는데 실패하고,

체류 전반기에는 사설 기숙사에서,

후반기에는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렀는데,

이렇게 나눠 지내는 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전반기 사설 기숙사는

시설, 분위기, 직원들과 룸메이트들도 좋았고,


후반기 에어비앤비는

아파트 위치와 시설도 만족스럽고,

비록 어플로만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주인장도 매우 친절했다.


약소국 국민인 체코인들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체코어 하는 걸 좋아해서,

체코어를 하면 좀 더 많이 친절해지는

체코어 프리미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때 체코에

여행뿐 아니라 체코어 공부도 하러 간 거여서,

가능하면 체코인들에게는 체코어로 말했는데,


에어비앤비 예약하고 연락 주고받을 때도

예외 없이 체코어로 처음 답장을 써서,


에어비앤비 주인 K와 나는

계속 체코어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에어비앤비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그때까지 갔던

체코와 슬로바키아 도시들을 나열하며,

프라하뿐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너무 좋다고,


체코인인 에어비앤비 주인장 듣기 좋으라고,

그리고 당시 체코에서 진심으로 많이 행복했던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그렇게 썼더니,


주인 K가 이런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___!
체코 여기저기를 여행하다니 멋지네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죠. 저는 리베레츠 출신이에요. 예슈테트 여행 추천합니다:-)


나는 이때 이미 체코와 슬로바키아 도시

10군데 이상 방문한 상태여서,


이제 한두 도시만 더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 후보는 우선

프라하에서 가는 교통편이 좀 복잡하지만

그래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구시가를 가진 텔치,



또는 체코 동부 모라비아 끝에 있는,

체코 제3도시 오스트라바(Ostrava),


또는 2012년에 갔었는데 좋았던,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쿠트나호라(Kutná Hora)였다.


그러던 중 마침

에어비앤비 주인장의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 거고,


리베레츠(Liberec)라는 도시와

예슈테트(Ještěd)를 검색해본 후,


여행지보다는 산업 도시 같은 오스트라바

예전에 가봤던 쿠트나호라

나의 다음 체코 여행지 후보에서 탈락시켰다.


그리고 그 토요일에 텔치(Telč)를 구경하고,

일요일에 체코 북부 리베레츠로 떠났다.




2. 프라하에서 리베레츠 가기


리베레츠(Liberec)

체코 수도 프라하(Praha),

브르노(Brno),

https://brunch.co.kr/@saddjw/161

오스트라바(Ostrava),

플젠(Plzeň)에 이어


체코 제5도시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리베레츠는 체코 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수도 프라하에서 멀지 않다.


Liberec location on the Czech Republic map (ontheworldmap.com)


프라하에서 리베레츠까지

기차로는 3-4시간 걸리고,

편도 200-400 코루나(1-2만원)다.


그리고 리베레츠 기차역은

시내 중심가와 예슈테트 산 모두와 멀어서

리베레츠 안에서 움직이기도 좋지 않은 위치다.


(아래 지도에서 빨간 별이 예슈테트 산,

노란 별이 구시가,

파란 별이 기차역이다.)


Ke stažení | Visit^Liberec (visitliberec.eu)


한편 버스로는 프라하에서 리베레츠까지

1시간-1시간 반 정도 걸리고,

나는 2020년 2월

왕복 요금 8.2유로를 지불했는데,

지금 2022년 8월에 검색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풍스러운 옛 건축과 중요 시설이 모인

리베레츠 시내 중심가가

기차역에서 트램 3-4 정거장 떨어져 있다면,

버스터미널에서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다.


즉 프라하에서 리베레츠 가는

가장 좋은 대중교통은 시외버스다.


그런데 프라하 가는 리베레츠 시외버스터미널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 반면,

프라하에서 리베레츠 가는 버스터미널은

프라하 외곽에 있다.


프라하 지하철 B호선 동쪽 방향 마지막 역인

체르니 모스트(Černy most)역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면 된다.


(프라하의 교통 시스템)


당시에 내가 머무르던 에어비앤비가

프라하 중앙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갈 수 있는 위치라,

그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는 못하는 건

좀 아쉬웠지만,


맨날 가던 데,

또는 적어도 한 번은 가본 데가 아닌

한 번도 안 가 본 새로운 지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그건 좀 설레고 좋았다.


(프라하 체르니 모스트 버스터미널 지도상 위치)


참고로 "체르니 모스트"는

“검은 다리"라는 의미인데,

예전에 이 지역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에

이 지역에 있는 다리가 검게 되어

그런 지명을 갖게 되었단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참고로

어릴 적 피아노 배울 때 나왔던 작곡가 "체르니"는

체코계 오스트리아인으로,

그 "체르니"라는 체코어 성도 "검다"라는 의미다.

영어로 치면 블랙(Black) 씨인 거다.


프라하 B호선 종점

“체르니 모스트"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그 아래가 바로 시외버스 승강장이라

찾기 어렵지 않다.


(2020년 2월, Černý most, Praha, Czech Republic)
(2020년 2월, Černý most, Praha, Czech Republic)


아침잠을 좀 많이 희생하더라도

여행지에서 가능하면 오래 머무르기 위해

가능한 한 일찍 출발하는 나는

아침 7시 버스를 예매했다.


주말이라

예슈테트 산에 스키 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침 일찍 떠나는 시외버스치곤

승객이 꽤 많았다.


내가 여행 비수기인 겨울에 여행을 해 보니,

체코 시외버스는

보통 출발 시간 딱 맞춰서 탑승 시작하는데,


겨울 스키 시즌이라 승객들이 좀 많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버스도 좀 더 일찍 와서 기다리고

탑승도 10분 이른 6시 50분에 시작되었다.


그렇게 출발한 버스는 원래 리베레츠에

8시 5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예정보다 4-5분 이른 8시에 도착했다.


딱 1시간 걸린 거다.


어쩜 그날 그 버스의 운전기사가

성격이 급한 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래 사진처럼 생긴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이제 시내 구경예슈테트 산 등반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3.  "리베레츠"라는 도시


리베레츠는

현재 북쪽으로 독일, 폴란드와 가까운데,


역사적으로 독일, 체코의 접경 지역으로,

오랫동안 독일인과 체코인이

함께 거주하던 곳이었다.


체코나 폴란드 도시들은 수백 년 간

독일,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 하에 있었어서,

거의 대부분 독일식 명칭을 따로 가지고 있는데,


리베레츠는 독일의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고

아예 독일 도시로 역사를 시작했고,

오랫동안 독일인 주민이 절대다수였던 곳이었다.


이름도 독일 이름이 먼저 생겼다.




체코 도시 리베레츠(Liberec)

독일어로 라이헨베르크(Reichenberg)인데,


독일어로

"부유한 산, (자원이) 풍부한 산"이라는 의미다.


체코인들은 그 이름을

Rychberk(리흐베르크)로 부르다가

조금씩 자기가 발음하기 더 편한

체코식 발음으로 바꾸어 불렀는데,

그 와중에 어두의 R을 L로 바꾸어서

결국 지금의 Liberec(리베레츠)가 되었다고 한다.


R와 L을 바꿔 부른 부분에서

동질감에 얼굴에 급 미소가 지어지며

갑자기 체코인에 대한 친근감이 커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r와 l이 음운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한국어, 일본어와 달리

체코어에서는 r과 l이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러니 r와 l의 발음 자체를 헷갈렸다기보다는

'자유로운'을 뜻하는 라틴어 liber 같은 단어가

의미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체코어 화자들이 느끼기에

좀 더 듣기 좋은 발음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지 않았을까 싶다.




리베레츠(Liberec)

14C 말 처음 독일식 명칭으로 역사에 등장했고,

독일과 체코 귀족들의 영지이다가,

16C 말

합스부르크 황제 루돌프 2세(Rudolf II.) 시기에

도시의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기에 이 도시에 의류 산업이 처음 도입되었다.


즉 공식적인 역사와 더불어 산업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체코의 중요한 산업 도시다.


이후 17C 다른 체코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30년 전쟁과 역병을 겪으면서

도시가 쇠퇴하기도 했으나,


18C 직물 산업이 크게 흥했고,


19C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

여러 산업이 크게 발달해서,

프라하에 이어

보헤미아, 즉 체코에서 2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현재 리베레츠 구시가의 많은 오래된 건축들이

이때 건설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체코인이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되는,

독일인의 도시였던 리베레츠는

행정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보헤미아 왕국의 도시이기도 했기 때문에,


1차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망한 후

자동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도시가 되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 1918-1920년 독일은

오랫동안 독일계 주민이 거주해왔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역들을 묶어,

남의 영토 안에 독일 보헤미아 지방(Provinz Deutschböhmen)을 임의로 지정했는데,


수도가 라이헨베르크, 즉 리베레츠였다.


하지만 리베레츠에

체코슬로바키아 군대가 파견되면서,

그러한 독일의 시도는

공식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산업이 쇠퇴하고 경제가 나빠지면서

리베레츠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고,


2차세계대전 시작 1년 전인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 거주 지역을

독일이 주데텐란트(Sudetenland)로 지정했을 때,

리베레츠는

독일식 이름 라이헨베르크(Reichenberg)로

주데텐란트 북쪽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아래 지도 위쪽 REICHENBERG가

특별하게 밑줄로 표시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https://www.stamp-collecting-world.com/sudetenland_history.html


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후,

이 도시의 독일인들은 모두 독일로 추방되었고,

대신 다른 지역의 체코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서

그 인구 공백을 채웠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리베레츠는 명실상부한 체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4. 리베레츠 여행의 하이라이트, 예슈테트 산


러시아는 워낙 크니까 온갖 지형이 다 섞여 있지만,

나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 살아봤는데,

두 도시 다 제대로 평지였다.

주변에 산은 보이지 않고,

도시 내에 언덕도 거의 없다.


폴란드도 '평야, 들판'을 의미하는

pole(폴레)라는 단어에서

Polska(폴스카)라는 국명이 나왔을 정도로,

남쪽의 산악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폴란드 도시는 정말로 대체로 평평하다.


하지만 이 동네가 다 그런 건 아니라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같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디를 가나

멀리 또는 가까이

크고 작은 산이 계속 보인다.


(“발칸” 자체가 “산”이라는 의미였다.)


이들 국가들 사이에 위치한 체코

지형도 그 중간 정도인 것 같다.


아래 지도에서 보이듯,

(초록색) 평지가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산과 평지가 섞여 있고,

대체로 국경 지역에 산이 있다.


https://www.123rf.com/photo_122606679_high-detailed-czech-republic-physical-map-with-labeling.html


위 지도에서 내가 빨간 별로 표시한 리베레츠에도

지도가 옅은 갈색 또는 황토색으로 표시한

비교적 높은 산이 있다.


리베레츠의 예슈테트 산은 해발 1012m로,

해발 836m인

서울 북한산보다 좀 더 높은 정도라,

아주 많이 높은 산은 아니지만,


위 지도에서

리베레츠 오른쪽에 짙은 갈색으로 표시된

해발 1603m Sněžka(스네쥬카) 봉은

체코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해서,

리베레츠 근처는 체코의 중요한 산악지대이다.


 리베레츠에서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예슈테트 산에 오르는 것이고,


그래서 나의 프라하 에어비앤비 주인장도

리베레츠 가보라고 추천하면서

굳이 예슈테트 산을 덧붙였던 것이다.




아까 봤던 그 리베레츠 시 전체 지도 중간

노란 별로 표시한 곳에

고풍스러운 건축이 가득한 관광지 구시가가 있고,

그 근처에 시외버스터미널도 있다.


그리고 예슈테트 산은 지도 왼쪽 끝

빨간 별로 표시한 곳이다.


Ke stažení | Visit^Liberec (visitliberec.eu)


지도상으로 좀 멀어 보이지만 가는 방법은 쉽다.


위 지도에서 빨간 선으로 표시된 트램

시내에서 타면

예슈테트 산 입구까지 갈 수 있다.


리베레츠 대중교통 티켓은

가판대에서 사면 20코루나(약 천원),

버스나 트램 안에서 사면 24코루나다.


이런 차등 요금제는

대부분의 체코, 폴란드 도시에 그대로 적용되는,

이 동네의 관례적인 대중교통 요금 부가 체계다.


나는 가판대에서 왕복으로 쓸 티켓 두 장을 사서

Horní Hanychov (호르니 하니호프) 가는

3번 트램 타고 그 종점에서 내렸다.


Horní Hanychov는 리베레츠 가장 서쪽 지역으로,

서울로 치면 '은평' 뭐 그건 지명인데,


체코어로 hora는 ‘산’,

horní는 ‘위쪽의’라는 의미로,

이름 자체가 그 지형을 어느 정도 암시한다.


트램에서 내릴 때 보니,

프라하에서는 종점을

Konečna zastavka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končina라고 표현한다.


이 동네 방언인가 본데,

내 전공상 그게 또 신기해서 따로 메모를 한다.


그렇게 트램을 타고

버스터미널로부터 예슈테트 산 입구까지 가는데

15분 정도 걸리고,


나는 산 입구에 아침 8시 30분쯤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님 여름 관광시즌이 아니라 그런지

아님 그냥 내가 못 찾았는지

관광안내소가 안 보인다.


어떤 목조 건물이 있어

관광안내소인가 싶어 갔는데,

그냥 “예슈테트의 악마들”이란 이름의 식당/펍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뭔가 희한하게 생긴 조형물도 있다.


찾아보니,

챔피언 게이트(Brána borců, Gate of Champions)로 스키 점프 선수를 형상화한 것인데,

2009년 리베레츠 예슈타트 산에서

세계 노르딕 스키 대회가 열렸고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만든 거란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밖에 다른 조형물이나 시설은 딱히 없고,

바닥은 뽀득뽀득한 눈이 두껍게 덮여 있고,

멀리 아스라이 산 정상의 탑 꼭대기가 보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챔피언 게이트 뒤로는

산 정상까지 오르는 리프트가 있었는데,

난 스키어도 아니고,

급한 일도 없으니,

그냥 걸어 올라보기로 했다.


그래서 탑이 보이는 쪽으로 그냥 걸어갔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눈이 좀 쌓이긴 했지만,

나무가 높아서 그 길을 걷는 게 나쁘지 않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렇게 가다 보니,

결국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달했다.


나는 환경 파괴안전 사고에 대한 우려로

케이블카는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가,

폴란드 자코파네 카스프로비 봉 오를 때

2시간 넘게 줄 서서 탄

케이블카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도 있어서,


웬만하면 케이블카는 안 탄다.


그리고 다행히 그날 나는 급한 일이 없고,

아침 일찍 도착해서 시간은 많고,

겨울 하늘이 맑지만 많이 춥지는 않고,

나는 꽤 따뜻하게 차려 입고 있었고,

그리고 산도 높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렇게 나는 케이블카 승강장 옆으로 난

발자국을 따라 걸어 올라갔는데,

그렇게 가다 보니 결국 스키장 한가운데 도착했다.


위 사진 가운데

빨간 경계 있는 데까지 올라간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휭휭 스키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혼자 산을 오르다가 좀 뻘쭘해졌다.


아, 여기는 스키 슬로프라

이 길로 걸어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스키장을 장비 없이 걸어다니는 나를,

아무도 제재하거나,

주의 주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그렇게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걸어가는 길이 경사도 있고

여러모로 좀 불편하기도 해서,

다시 되돌아 걸어 내려왔다.

 

그러고 나서 구글맵을 검색했더니,

찻길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아래 예슈테트 약도(?)에서,

지도 오른쪽 바깥으로 난 길을 통해

예슈테트 산 정상의 탑까지 걸어갔고,

정상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내려와,

아래 약도 중간의 알 수 없는 여러 길을 지나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긴 산행을 하게 되었다.


https://iski.cc/en/resorts/2160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처음 10분 정도는

구글맵이 알려준 찻길로 계속 걸어갔는데,

그렇게 걸어가던 도중에

어떤 겨울 평상복 차림의 여자분이 개를 데리고

어떤 길에서 걸어 내려오는 게 보인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수 있을 정도면,

쉽게 오갈 수 있는 길인 것 같아 그 길로 들어갔다.


안내판은 따로 없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그 사람들을 뒤따라갔다.


난이도는 중하.


거의 등산은 하지 않아 전혀 훈련되지 않은,

특별한 장비 없이

롱패딩과 보통의 운동화를 신은 내가 걷기에도

대체로 수월해서

전반적 난이도는 “”인데,


가끔 경사 급한 길이 나오고,

눈이 쌓여 좀 미끄럽기도 해서 “”이기도 하다.


체코 현지인들은

그 길을 유모차를 밀면서 걷기도 한다.

개랑 같이 걷는 사람은 무지 많고,

다들 아무 등산 장비 없이 그냥 걷는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중간에 “천천히"라는 부사가

체코어, 영어, 독일어, 슬로바키아어로

정성스레 쓰여 있는데,

사실 뭐 빨리 갈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어서,

이건 “천천히 가세요”라는 경고문이라기보다는

“당신은 지금 천천히 걷고 있군요”라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한 묘사 같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사람들의 잦은 발걸음으로

눈이 눌려 압착된 또는 조금 녹은 통로 옆

높다란 침엽수에 눈이 쌓인 모습이 멋있어서,

그렇게 “천천히” 걷는 게 더 좋아진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중간에 이정표가 있는 좀 넓은 공간이 나오면,

이제 정상에 거의 다 온 거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동영상 1: 체코 리베레츠 산행)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제 산 꼭대기 탑이 가까이 보이지만,

아직 또 5-10분은 더 걸어야 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제 좀 더 큰 길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산 밑 풍경,

오른쪽으로는 우주선 닮은 거대한 탑이 보이는

그 길을 좀 더 걸으면 곧 정상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예슈테트 산 정상에서

폴란드와 독일도 보인다고 했으니,

동쪽인 여기는 폴란드 쪽인지도 모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동영상2: 리베레츠 예슈테트 탑 가는 길)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건 아래서 봤던 그 케이블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1933년 예슈테트 - 호르니 하니호프 케이블 카(Lanová dráha Horní Hanychov – Ještěd, Jeschke - Horní Hanychov cable car)가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니,

100년 가까이 된 케이블카다.


근데 유럽의 산에 있는 케이블카나 푸니쿨라는

거의 다 그렇게 19C말-20C초에 만들어졌다.


안개가 좀 더 걷히면

거기에서 리베레츠 시내도 다 보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구글맵에서는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정상까지

걸어서 35분이라고 했는데,

50분은 걸어간 것 같다.


그렇게 11시 다 되어서 정상의 탑에 도착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예슈테트(Ještěd)라는 이름은

16C에 처음 체코 문헌에 등장했고

독일식 명칭 Jeschke(예슈케)는

그 이후에 등장했다고 한다.


즉 도시 이름은 독일어 이름이 먼저였지만,

산 이름은 체코어 이름이 먼저였던 건데,

체코어 Ještěd는

“물푸레나무 숲, 물푸레나무 언덕"이란 의미란다.


19C 중반 이후 예슈테트 산은 관광지가 되었고,


현재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 

예슈테트 탑(Ještěd Tower)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인 1966년에 세워졌다.


높이가 거의 100m나 된다고 하니,

산 높이의 거의 1/10이다.


어쩐지 산 밑에서부터

너무 잘,

너무 두드러지게 보인다 했다.


체코어로는 "예슈테트 TV 송전탑 호텔(Hotel a televizní vysílač na Ještědu)"이라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송전탑이고

호텔이며,

덧붙여 전망대이고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그 다기능 예슈테트 탑 안에 입장하는 건 무료.


그런데 내부가 좀 휑하고, 그 안에서 뭐 할 게 없다.

내가 갔을 때

바깥 전망은 안개가 껴서 선명하지 않았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전망대 안쪽 벽에는 예슈테트에 대한 정보가

포스터처럼 붙어 있었는데,

탑이 생기기 전에 어떤 풍경이었는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이 옛날 풍경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인공의 흔적이 적어서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탑 바깥으로 나가니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서

거의 날아갈 것 같다.

그래서 대충 기념사진 찍고

금방 산 밑으로 내려와야 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탑 옆에 서 있는 정상의 십자가는

18C 초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니,

여기에서 제일 오래된 구조물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사뭇 UFO 같이 생긴 예슈테트 탑에 승선하지 못해

울고 있는 아기 외계인 같은 동상도 서 있다.


찾아보니 마침 제목도 꼬마 화성인(Malý Marťan, The Little Martian).


단 2010년 이걸 만든 작가의 의도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온 화성인을 형상화한 거란다.

눈을 가린 건 화성식 인사인가 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위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작은 오벨리스크는

1838년 세워진 로한 스톤(Rohanský kámen, Rohan Stone)으로

Clam-Gallas와 Rohan,

두 귀족 가문 영지의 경계 표지란다.


알고 보니 별 의미도 감동도 공익도 없어서 그런지

괜히 더 볼품없어 보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동영상 3: 리베레츠, 예슈테트 산 정상)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렇게 탑의 안과 밖을 한 번 둘러보고,

이제 올라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걸어 내려왔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올라갈 때는 예슈테트 탑이 이정표가 되어서,

그게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면 됐는데,

이제 이정표가 사라져서 그런지

내려오는 길은 길 찾기가 좀 더 어려웠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보행로가 끝날 때까지 걸어서 내려왔을 때

구글 지도에서

35분인가 40분 걸어내려가면 된다고 했고,

구글 지도 끄고

아무 생각 없이 앞사람 따라 내려왔다.


그렇게 30-40분 넘게 걸어도 산이 안 끝나길래

다시 구글 지도를 켜 보니 잘못된 길이었다.


올라가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거의 다 같았지만,

내려가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다 달랐던 거다.


알고 보니 나는 산 밑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산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구글맵을 다시 켜보니,

거기서부터 트램 정거장까지 59분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글맵 자주 들여다보며

우선 한 30분을

사람 안 다니는 눈길을 걸어서 내려갔다.


키 큰 침엽수도 우거지고,

눈도 예쁘게 쌓인 것이

사실 길 자체는 정말 걷기 좋다.

사람도 없어 주변도 조용하고 마음도 평안하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구글맵이 알려준 길을 따라 그렇게 걸어서,

드디어 20분 정도 남겨뒀는데,

스키 타는 길이 나왔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저 멀리 예슈테트 탑이 보이는 걸 보니,

아까 그 스키 길은 아니고,

한참 동남쪽으로 내려온 곳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뭔가 또 길을 잘 못 든 느낌인데,

아까처럼 거기서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어서,

휭휭 내려가는 스키어들 사이에서 좀 망설이다가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가 정말 이상하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말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냥 운동화를 신은 발로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넘어지면 그냥 엉덩이로 썰매 타며 내려오기도 하며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뭔가 비장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각오로 내려오는데,


나 말고 또 독일어 하는 두 남자가

나처럼 스키 없이 그 길을

나와 비슷하게 걸어 내려가는 게 보인다.


그제서야 거기가 지금은 스키장이긴 하지만

우리처럼 스키장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하이킹을 하는 곳이기도 해서

스키 안 타고

그냥 걸어갈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순간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그 "특별하고”

나에게는 “유일한” 경험이 재미있어졌다.


길 가운데는 좀 더 걷기 좋지만

바닥이 더 미끄럽고,

스키어들과 부딪힐 위험이 있고,

길 가장자리는 눈이 더 깊게 쌓여서

발이 눈에 쑥쑥 빠져서

걸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운동화 속에 조금씩 눈을 적립하며 걷다가

잠깐 서서 신발에서 그 적립한 눈을 다 털어내는 걸

몇 번 반복하면서,

멀리 리베레츠 시내가 보이는

침엽수림 속 눈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언덕을 다 내려오니,

마침 3번 트램이 오길래,

그거 타고 리베레츠 구시가로 돌아왔다.




5. 구시가 중앙 광장


3번 트램에서 창밖을 보니

아침에 본 낯익은 도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길래,

거기서 트램을 내려 구시가로 걸어갔다.


그때가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구시가에서 늦은 점심을 천천히 먹으면서

몸도 좀 따뜻하게 하고 좀 쉬고나서,

리베레츠 시내 중심가를 둘러봤다.


Ke stažení | Visit^Liberec (visitliberec.eu)

 

리베레츠 시내 중심가는

Visit Liberec 사이트에서 캡처한

위 지도처럼 생겼다.


가운데 빨간 번호가 모여있는 곳이 구시가, 

즉 가장 오래되고 예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유럽 도시 관광의 중심 Old Town인데,

이제 소제목 5번부터는 그 동네를 슬슬 둘러보겠다.


(중요 명소에는 이 지도의 빨간색 번호를 덧붙여

위치를 표시하겠다.)


리베레츠 구시가는 꽤 작은 편이고,

대부분 이 도시가 크게 번영한 19C에 지어진,

다른 유럽 도시나 체코 도시랑 비교하면,

비교적 최근의 건축이다.


예슈테트 산을 걸어 내려오면서

삽질을 좀 하는데 시간을 탕진해서

구시가를 둘러볼 시간이 많지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중요한 것들은 2시간 남짓 다 본 것 같다.


리베레츠는 구시가가 특별한 역사를 가진

관광 도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정표, 안내문 같은 관광안내가 없었는데,

휴일이라 여행안내소가 닫혀 있어

지도나 브로셔 같은 자료를 못 받으니

그런 게 더 아쉽게 느껴졌다.


아무튼 우선 나는 구시가의 중앙광장으로 갔는데,

여기는 구시가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도 언덕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구시가의 중앙광장은 이름이

베네시 광장(Náměstí Dr. E. Beneše)이다.


에드바르트 베네시(Edvard Beneš)는

1935-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었는데,

독일의 주데텐란트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2차세계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을 추방하는 결정을 한 지도자다.


원래 이 광장은 구시가 광장(Altstädter Platz, Staroměstské náměstí)으로 불리다가,

1937년 베네시 광장이 되었고,

1938-1945년 독일 주데텐란트 시절에는

아돌프 히틀러 광장(Adolf-Hitler-Platz)이라 불리기도 했다.


베네시 광장 중앙에는

19C 초에 세워진

포세이돈 분수(Neptunova kašna, Fountain of Neptune)가 있다.

내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분수는 작동하지 않았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구시가 광장에서,

그리고 리베레츠 시 전체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축은 시청(Liberecká radnice, Town hall)일 것이다.

[지도 1번]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시청

17C부터 이 자리에 있던 르네상스 건축을

19C말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신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했고,

빈 시청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 두 사진에서 왼쪽이 빈 시청,

오른쪽이 리베레츠 시청인데

둘이 정말 많이 비슷하다.


(빈 시청)

(2018년 6월, Vienna, Austria)


하지만 빈 시청은 신고딕 양식이라,

같은 신고전주의지만 양식이 좀 다르다.


그래서 어디가 또 다른가 했더니,

지붕이랑, 밖에 덧붙인 그리스식 기둥 장식,

그리고 창문이 좀 다르다.


리베레츠 시청 내부는

7-8월에 월-토 투어를 할 수 있는데,

일반 100 코루나(약 5천원), 할인 70코루나고,

첨탑에도 오를 수 있다고 하니,

리베레츠 전망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리베레츠 시청 투어 정보)


시청 건물 동쪽 아래에는

사람들 이름이 쓰인 조형물이 있는데,

1968년 8월 21일이 덧붙어 있는 것을 보니,

"프라하의 봄" 때 희생된 사람들의 추모비다.


참고로 "프라하의 봄"을 진압하러

바르샤바 조약국 중 하나였던 폴란드 군대가

리베레츠를 지나서 프라하로 입성했고,

그 과정에서

리베레츠에서도 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여긴 리베레츠 시청이 마주 보고 있는

베네시 광장 남쪽.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건 베네시 광장 동쪽.

르네상스식 열린 로지아 기둥과

아케이드로 1층이 연결된 이 건물들은

사진 오른쪽

언덕길 아래로까지 쭉 연결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여긴 베네시 광장 서쪽.

여기도 사진 왼쪽의

언덕길로 건물들이 계속 연결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리고 이건 광장 동북쪽의 조형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의 조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제목이 뭔가 싶어 지금 찾아보니,

2022년 현재는 다른 조형물로 대체된 것 같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동영상 4: 리베레츠 구시가 광장)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5. 성 안토니우스 성당


베네시 광장 밖으로도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줄지어 서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베네시 광장 밖 서쪽,

그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 성 안토니우스 성당(Kostel svatého Antonína Velikého, Church of St. Anthony the Great)이 보인다.

[지도 1번과 25번 사이]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성 안토니우스 성당은

외부 장식이 최소화되어 있고,

고딕 양식의 높은 첨탑을 가지고 있다.


19C 신고딕양식으로 리모델링되어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16C부터 이곳에 있었던 가톨릭 성당이고,

리베레츠 최초의 석조 건축이었고,

17C 후반까지

리베레츠의 유일한 성당이었다고 한다.


16C 리베레츠의 공식적인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리베레츠 역사의 시작부터 계속 함께 한 셈이다.


안토니우스 성인은

은자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하는데,

은자들의 수호성인의 성당 치고는 너무

도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6. 샬다 극장


이제 베네시 광장 북쪽으로 가서,


우선 리베레츠 시청 서북쪽에는

리베레츠 연방정부 사무소 (Magistrát města Liberec) 건물이 보인다.


외벽에 장식과 디테일이 많은

19C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으로

여러 건물을 연결해서 만들었다는데,

그렇게 연결된 게 좀 느껴진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평일이었음

여기에서 여행 안내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옆에는 우체국 카페(Kavárna Pošta)가 있다.


건너편 우체국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삼아

문을 연 카페로

19C 말 신-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인테리어가 유명하단다.

원래 일반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현재는 문이 닫혀 있다.


다소 경박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치고는

겉모습도 꽤 고상해 보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연방사무소와 우체국 카페 동쪽으로는

작은 광장이 보인다.


여기도 이름은 베네시 광장으로

시청 뒤쪽 공간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작은 베네시 광장 남쪽엔 시청의 뒷면이 보이고,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작은 베네시 광장 북쪽에는

샬다 극장(Divadlo F. X. Šaldy, František Xaver Šalda Theater)이 있다.

[지도 18번]


(우체국 카페와 우체국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래 사진 왼쪽 우체국 카페가 부분적으로 보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샬다 극장

19C 후반 신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어

외벽의 장식에 꾸밈이 많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인테리어 장식에 참여했다고 하니,

내부도 매우 화려할 것 같다.


오페라, 발레, 연극 공연을 하는 극장이라는데,

클래식 공연도 하는지,

극장 2층에 "심포니 콘서트" 안내가 붙어 있다.


2020년 3월 공연은 취소되었겠구나 싶어

지금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극장 동쪽에는 19C말 건설된

우체국(Česká pošta) 건물이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리고 작은 베네시 광장 남쪽,

리베레츠 시청 가까이에는

기상관측 기둥(Meteorologický sloup)이 서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19C말 신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기상관측 기둥은

온도나 습도 등을 알려줬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시내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아마 19C 이런 기구를 세우는 게 유행이었나 보다.


당시에는 과학이 주기능인 장치로

장치 자체의 미학적 측면을 무시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지금은 과학적 기능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미학적,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7. 관광객으로 아쉬운 리베레츠 플라자


큰 베네시 광장의 동쪽으로 가면

리베레츠 플라자(Liberec Plaza)라는

현대적인 대형 쇼핑몰이 [지도 18번]

19C 후반- 20C 초반의

고전적인 건축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아래 두 사진의 왼쪽 건물은

리베레츠 플라자 옆 은행 건물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은행 건물에서 좀 더 북쪽으로 걸어와서

리베레츠 플라자 뒤쪽 광장에는

고양이들(Kočky, The cats)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서 있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거라는데,

이날 이 근처에서 노는 아이들은 한 명도 못 봤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플라자가 구시가의 끝은 아니라서,

100년은 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축들도

여전히 근처에 남아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플라자 건물 위로 공룡이 보여서

저건 뭐지 했는데,

여기에 DinoPark라는 공룡테마파크가 있단다.


리베레츠에 놀러 온 체코 어린이에게는

중요한 놀이 공간이 될 것 같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8. 리베레츠 성


다행히 리베레츠 구시가가

그렇게 공룡과 함께 허무하게 소멸하고,

거기에서 끝나버린 건 아니다.


보통의 유럽 도시에는

구시가 한참 바깥쪽에 현대적 건축이 들어서는데,

리베레츠는 그 건축들의 시대적 배합이 좀 달라서,

구시가 중심에

그런 거대한 현대 건물이 섞여 있을 뿐,


아직도 리베레츠 도시 구석구석에는

한국인들이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시간 관계상 그것들을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공룡 테마파크 남쪽의

리베레츠 성(Liberecký zámek, Liberec Castle)은 가 볼 수 있었다.

[지도 19번]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성은 16C말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16C 이 도시의 본격적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리베레츠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중 하나다.


현재는 주변이 담이 없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특별히 성을 구경하지 않더라도

걷기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프라하의 성은 hrad(흐라드)라고 하는데,

리베레츠 성은 zámek(자멕)이라고 해서,

두 성(castle)의 차이가 뭔가 찾아봤더니,

두 단어가 원래 같은 뜻인데,

귀족이 소유했던 성은 zámek(자멕)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단다.


그리고 리베레츠 성(zámek)은

레데른(Redern)이라는 체코 귀족

16C말 건설한 성이다.


하지만 그후에 계속 다른 귀족 가문이

이 역사적 성의 주인이 되었고,

아래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18 C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의

새로운 성(Nový zámek, New Castle)을 건설한

귀족 Clam-Gallas는 그 건물 옆에 동상도 서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예슈타트 산 정상에 영지 경계 오벨리스크를 세운

바로 그 귀족 가문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아무튼 성의 한쪽 부분과 또 다른 부분은

그렇게 좀 스타일이 다르다.


서쪽 건물은 색이 화려하고 장식이 많고,

동쪽 건물은 흰색에 장식도 거의 없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게 동쪽 신고전주의 건물.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이게 서쪽 바로크 양식이 가미된 건축.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장식이 많은 붉은색 바로크 스투코 건물 앞에는

오벨리스크도 서 있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 공원 남쪽에 19C 말 건축된,

지금은 갤러리로 쓰는 듯한,

요한 리비에그 2세 빌라(Vila Johanna Liebiega mladšího)가 있긴 하지만,

그 밖의 나머지 부분은 자연이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겨울이라 나무와 풀이 황량했는데,

중간중간에 벤치도 있고,

여름에 가면 휴식하기 꽤 좋은 공간이 될 것 같다.




9.  어둠 속 베네시 광장


그렇게 리베레츠 성을 둘러보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둘러보려고,

다시 베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여기는 베네시 광장 동남쪽으로 난 통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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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베네시 광장.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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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여기는 베네시 광장 서남쪽으로 난 통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고풍스러움의 구심력이 점점 약화된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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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그렇게 점점 덜 고풍스러워지는 길을 걷다 보면

이제 버스터미널 앞 트램 정거장에 다다른다.


(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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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Liberec, Czech Republic)


리베레츠 버스터미널에서

저녁 6시 출발하는 버스를 무사히 탔고,

7 10 프라하 동쪽

체르니 모스트 터미널에 도착했다.




10. 여행이 허락하는 삽질의 미학


리베레츠 다녀오고 나서

에어비앤비 주인 K와 다른 일로 연락하다가

처음 인사말 부분에

리베레츠 갔다 왔는데 좋았다는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전 잘 지내요. 이 아파트에서 지내는 게 참 좋네요. 지난주에 리베레츠와 예슈테트 다녀왔는데, 거기 정말 맘에 들었어요.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메시지에 집주인 K는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______. 체코 생활을 맘껏 즐기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여기는 오래된 아름다운 장소가 정말 많죠. 마치 다른 세기에 있는 것 같이 느끼게 만드는 그런 장소 말이죠.


체코의 여러 도시들을 구경하는 건,

나의 프라하 에어비앤비 주인 K 말대로

수백년 전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보고

또 그 안에 머물면서

다른 세기, 다른 시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리베레츠 시내도 충분히 예뻤지만,


비교적 늦게 역사가 시작된 리베레츠의

그 역사적 흔적을 품은 구시가에서는

사실 특별한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리베레츠는

지지난 세기라는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보다는

예슈테트 산이라는 특별한 공간으로의

동시간적 여행이었다.


나는 사실 산행을 즐기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아서,

한국에서는 산에 가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날씨가 좋고, 시간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누군가 나더러 산에 가자고 하면,

거절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체코에서 여러 도시를

대부분 당일치기로 여행하면서,

자세히 보면 많이 다르지만,

언뜻 보면 많이 비슷한 풍경들을 보고,

비슷한 루틴으로 여행을 계속 하다 보니,


보통은 내가 선택 안 할 그 산행

갑자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에어비앤비 주인이 갑자기

자기 고향이라고 추천하니,


비록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친절함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인간적 호감,


공적 관계에서 갑자기 자발적으로 털어놓은

상대방의 사적 이야기로 촉발된 친근감,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 도시에 별 애향심이 없는

서울 출신이라면 다들 남몰래 부러워하는,

자기 고향에 대한 조심스러운 자부심과 애정


같은 것들이 번쩍이며

뭔가 강한 동력으로 내 심장에 와 닿았고,


또 그런 특별한 에피소드라는 태그 때문에

그 장소가 또 특별한 공간이 되어서


아무 망설임 없이 선뜻

다음 행선지로 선택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기대나 특별한 계획도 없이,

그냥 에어비앤비 주인 K의 말대로

예슈테트 산이나 올라갔다 오자 하면서

정말 가볍게 리베레츠로 떠났고,


나의 리베레츠 메인 이벤트가 된

그 예슈테트 산행 덕분에

다른 체코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추억을 적립했다.


문화적 유산과 달리

자연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또 조금씩 풍경이 다르고,


예슈테트에서 본,

한국산 풍경과 확실히 다른,

그래서 체코스러운 "이국적인" 겨울산 풍경

나는 많이 좋았다.


(외국인들 여행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왜 흔한 바다, 흔한 산을 보면서

그들이 감탄하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산행도 미숙하고,

복장도 너무 평범한 상태로

겨울 산을 오르고 또다시 내려오면서,

길을 잘못 들어 많이 돌아가야 했지만,

중간에 ‘해지기 전에 여길 나갈 수 있을까?’,

‘오늘 집에 못 가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가벼운 길 잃음 덕분에

멋진 공간 안에 머물며 멋진 풍경 실컷 봤고,

그런 삽질 덕분에

리베레츠 여행이 더 특별해졌다.


남들 쌩쌩 스키 타는데,

운동화에 들어간 눈을 계속 덜어내며

미끄러지지 않으려 뒤뚱뒤뚱

눈길을 걸어 내려오는 게 바보 같았지만,

당시 그게 나의 최선이었고,

또 그 경험은 그걸로 마지막일 걸 알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재미있어하며 웃으며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누군가 친한 사람과 그 순간을 함께하고,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을 일이 없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인생의 모든 실수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어떻게든 좋은 기억이 되지만,

적어도 덜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지만,


여행의 실수와 헤맴은

특히 더 빨리 더 쉽게 좋은 추억이 되고,

오히려 그 장소를 더욱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 같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한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과정을 즐기러 떠나는 거라,

태생적으로 목적 없는 헤맴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공간에 들어섬과 동시에

모든 것이 새롭게 리셋되고,

그 공간을 떠남과 동시에

또다시 새롭게 초기화되는,

아무런 연고가 없어,

쉽게 취하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낯선 공간의 마력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어쩜 그래서

초기화가 어려운 복잡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목적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목적을 열망하며 사는

여행 밖 일상의 우리에게는

목적지는 있지만 딱히 특별한 목적은 없는,

그 과정 투성이

여행이라는 녀석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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