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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Dec 13. 2022

2018년 월드컵 때 크로아티아에 있었습니다.

언더독의 감동적인 드라마 관람기


1. 오랜만에 크로아티아로


나는 축구의 재미를 잘 모르고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축구 경기 중계도 거의 보지 않는다.


예전에 FC서울 팬인 축구 덕후 지인을 따라가서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경기 직관을 해본 적 있는데,


경기 자체에 대한 기억보다

초록 잔디가 눈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푸릇푸릇한 생동감이 더 강렬한 기억으로,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

그때 같이 갔던 사람들이 좋았고

그래서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도 만나면 그때 얘기한다.


그러니 월드컵 축구 시청자

열정의 순도와 강도에 따라 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내 지인과 같이 원래 축구 좋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이기든 지든

꾸준히 응원하며 덕질하는

(1) 찐 축구팬, 축구광, 축구 덕후


평소에 K-리그 경기 한번 안 보고

유럽리그 경기만 보며,

축잘알의 “객관적인” 평가라며

월드컵 때도 한국 축구의 부족함을 주로 비판하는

(2) 축구 스놉


평소에 국내든 해외든 축구에 관심 없지만,

올림픽, 월드컵, 그 밖에 큰 국제경기를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다른 일이 손에 안 잡혀

집 안과 거리에서

누구보다 열렬하게 응원하는 열정 부자

(3) 축제광


역시나 평소엔 관심 없지만

무슨 경기든

한국팀은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응원하는

(4) 애국자


역시 축구에는 특별한 애정 없고,

반칙을 하든 어부지리를 얻든

편파판정의 수혜자가 되든 상관없이,

실력이나 경기 내용도 필요 없고,

무조건 이겨야 하기 때문에,

잘 싸워도 진 경기에서는

무조건 희생양을 찾아 악평하는

(5) 승리광


뭐 등등이 있을 수 있다면,


나는 한국 대표팀이 축구 경기 이긴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거나

한국의 국격이 올라가지 않는다 생각하는 데다가,


(1)뿐 아니라 축구 자체에 애정은 있는 (2)는

아예 하루아침에 될 수 없고,

평소 축구에 대한 열정도,

직관이나 덕질 등으로 기여한 바도 없으면서

공짜 승리를 선물 받기 바라며 또 요구하는

일회용 응원꾼 (3), (4), (5)도 별로 되고 싶지 않고,

또 될 수도 없어서,


그냥 평소처럼 생활하면서,

나중에 포털에 결과 뜨는 걸로 상황 파악하고,

어쩌다 TV에서 하이라이트 나오면 그거 보면서

어떤 좋은 공격을 시도했는지 정도 알게 되는,

그냥 멀찍이서 관망하는,

이기면 좋지만, 저도 쿨하게 박수칠 수 있는,

그 열정의 강도가 가장 낮은 등급인

(6) 지나가는 행인


정도이다.


그런 내가 2018년 1-7월,

6개월 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체류하며

크로아티아어 공부하고 주변 지역 여행하던 중,


그 월드컵에서 최대 파란을 일으킨

크로아티아 축구의 “역사적 순간”을

우연히 그냥 지나가다 목격하게 된 거다.


뭔가 나의 미천한 축구 열정에 비해

너무 과분한 상을 받은 건데,


나의 학문적 열정에 비해

내가 인생에서 받은 너무 부족한 보상이

이런 식으로 상쇄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다시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걸 보니,

4년 전 크로아티아에 있을 때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크로아티아 얘기도 좀 하고,

그때 내가 찍은 사진이랑 영상도

브런치에 방출해볼까 한다.


나 같은 축알못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결승까지 올랐고,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패해서

준우승을 했었다.


당시 크로아티아에서는

그 예상 밖 선전에

점점 월드컵 열기가 달아올랐고,

월드컵 끝나고 “국뽕”이 최고조에 달했다.




2. 파란의 시작은 아르헨티나 전


내가 크로아티아어를 배우던 코스는

크로아티쿰(Croaticum)이라고,

자그레브 대학 부속 기관이었다.


대학 건물 안에 위치한 크로아티쿰은

대학 학사일정대로 정규 학기를 시작해서,

대학 학사일정대로 기말 시험을 보고

졸업식을 하고 한 학기를 끝낸다.

그리고 방학에는 인텐시브 코스를 따로 연다.


나는 1월 말에 가서 3주짜리 인텐시브 코스를 하고,

1주 쉬고,

2월 말에 정규 코스를 시작했는데,

그게 3개월 조금 넘어

6월 초에 끝났다.


크로아티쿰에는 “동포 할인”이 있는데,

수강료가 무료거나 매우 저렴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신 우리 같은

연고 없는 외국인 수강생의 수강료가 비싸다.


아무튼 그것 때문인지,

이민 2-3세대 크로아티아 동포들이 많았는데,

남미에 크로아티아 이민자들이 유독 많은지,

수강생의 반 이상은

남미 이주 크로아티아인 2-3세대들이었다.


우리 반의 남미 동포 중에

아르헨티나 출신 클라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정규 학기 종강할 때쯤

크로아티아어 선생님 밀비야가

크로아티아랑 아르헨티나랑 같은 조인데

어떤 나라가 이길 것 같냐?”

고 물었다.


클라라는

“크로아티아가 잘하면 좋겠고

16강 같이 올라가면 좋겠지만,

아르헨티나가 이길 것이다.”

라는 식으로 살짝 돌려 대답했다


클라라는 그렇게

할아버지의 나라 크로아티아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 거지만,


당시 클라라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축알못인 나도 생각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가 이기겠지.’


그전 수업 토론 시간에 클라라가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축구로 성공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의미에서

아르헨티나가 이기길 내심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뭐 축구에 크게 관심도 없고,

당시 나에게는 월드컵보다는 여행이 더 중요했다.


크로아티아는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럽 동쪽의 동유럽이라기보다는

유럽 중앙의 중부 유럽에 가까워서,

동서남북의 이웃국가 방문 동선이 짧아

국내외로 여행 다니기 좋은 지리적 조건이었고,


당연히 팬데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유럽에 오래 머물 기회가

앞으로 많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니까,

유럽 간 김에 여행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어 수업 정규과정이 끝나자마자

약 1달 반 동안,

오스트리아 빈, 그라츠, 할슈타트,

노르웨이 오슬로, 베르겐,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노비사드,

코소보 프리슈티나,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코토르,

보스니아 사라예보, 모스타르, 메쥬고리예,

크로아티아 리예카, 풀라, 라브, 트라코슈찬 등을

숨 가쁘게 돌아다녔다.



그중 어떤 여행을 마치고

(아마도 노르웨이-헝가리 여행이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크로아티아가 아르헨티나를 이겼다

소식을 들었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D조였는데,


6월 21일(목) 아르헨티나전에서

크로아티아 3:0으로 대승했다.


자그레브에서 여행 떠나기 전

내가 관심 없어서 못 본 건지,

아님 아르헨티나 전 승리로 분위기가 급반전했는지,

여행에서 돌아오니

자그레브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3. 자그레브 중앙광장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Zagreb)

비교적 구시가가 크고,

큰 광장도 몇 개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중앙 광장

반 옐라치치 광장(Trg bana Jelačića, Ban Jelačić Square)이다.


반(Ban)은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크로아티아를 통치했던 수장으로

왕 밑의 총리 같은 위치였다고 한다.


요시프 옐라치치는 19세기 중반

크로아티아의 반(ban)이었는데,

당시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치하였기 때문에,

반(ban)이 크로아티아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크로아티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인물이었다.


그는 1848년 헝가리 혁명을 제압했는데,

당시 헝가리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 지배세력이었으므로

크로아티아인의 민족 영웅이 되었다.


크로아티아 농노제를 폐지하기도 했다.


그 옐라치치 광장은

아래 지도의 빨간 별표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고,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트램 5-6 정거장 정도 걸리는 곳이다.


https://ontheworldmap.com/croatia/city/zagreb/large-detailed-map-of-zagreb.html


지도를 좀 더 중심가로 Zoom-in 하면

아래 지도의 하늘색 별표 부분이 그 광장이다.


https://www.croatiawise.com/zagreb-map.html

(구글 지도상 위치)


서울의 광화문 광장이나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보다는 작지만

오래된 유럽 광장치곤 꽤 큰 편인

옐라치치 광장의

월드컵 전 평상시 풍경은 이렇다.


(2018년 2월, Croatia, Zagreb)


광장 한 가운데는 반 옐라치치 동상도 서 있다.


(2018년 4월, Croatia, Zagreb)


입체감을 느끼고 싶다면 동영상도 있다.


(동영상 1: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1)

(2018년 3월, Croatia, Zagreb)

(동영상 2: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

(2018년 4월, Croatia, Zagreb)


그런데 아르헨티나 전 승리 이후

내가 목격한

옐라치치 광장은 이런 분위기가 되었다.


(2018년 6월, Croatia, Zagreb)
(2018년 6월, Croatia, Zagreb)
(2018년 6월, Croatia, Zagreb)


그 광장 뒷길의 한 바에는 대진표가 붙었는데,

경기 날짜와 스코어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크로아티아는 아직 아이슬란드와,

한국은 아직 독일과 경기하기 전의 상황판이다.


(2018년 6월, Croatia, Zagreb)
(2018년 6월, Croatia, Zagreb)




4. 펍에서 본 아이슬란드전


아르헨티나 이전 나이지리아,

그 이후 아이슬란드도 다 이겨서,

크로아티아는

3전 전승으로 깔끔하게 16강에 진출했다.


이때 우리 크로아티아어 선생님 밀비야가

자기 집 근처에서 축구를 함께 보자

Whatsapp 단톡방에서 우리를 초대했다.


아마도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아이슬란드 전이었던 것 같다.


크로아티아인, 그리스인 등은

관광객을 많이 접해봐서

아시아인을 좀 쿨하게 대하지만,

그래서 별로 티가 안나지만,


사실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스 등 발칸반도 사람들

다들 정 많고 친절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많이 챙기고,

크로아티아어 선생님 밀비야도

교실에서건 교실 밖에서건 학생들을 챙겼다.


이미 4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facebook이나 그 밖의 SNS를 안 하니,

잊을 만하면 가끔씩 밀비야가 

Whatsapp이나 이메일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곤 한다.

팬데믹 때도 그랬고,

최소 일 년에 2-3번은 연락하는 것 같다.


그런 정 많고 친절한 선생님 밀비야는 당시

아래 지도 위 파란 화살표로 표시한 지역에 살았다.


https://ontheworldmap.com/croatia/city/zagreb/large-detailed-map-of-zagreb.html


당시 우리 반 친구들 5-6명과

밀비야 가족이 함께 축구경기를 본

바의 분위기는 아직 꽤 평온했다.


(2018년 6월, Croatia, Zagreb)
(2018년 6월, Croatia, Zagreb)
(2018년 6월, Croatia, Zagreb)


이렇게 장난스런 유니폼을 입는 사람도 있었다.


(2018년 6월, Croatia, Zagreb)


경기에 이기기도 했고,

맥주도 맛있었고,

보통의 크로아티아인이 동네에서

어떻게 월드컵을 즐기는지도 목격하고,

종강 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밀비야,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도

모두 반가워서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5. 16강전과 결승전은 광장에서


그 예선 전 끝난 후

나는 오스트리아 그라츠할슈타트에 다녀왔다.



그라츠에서 돌아온 후에도

아직 월드컵은 계속되고 있었고,

크로아티아의 16강전 상대는 덴마크였다.


지금 찾아보니,

7월 1일(일) 16강전에서 덴마크와 1:1이었다가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했는데,

나는 이 경기를

자그레브 옐라치치 광장에서 봤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1: 2018 월드컵 16강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 Croatia, Zagreb)

(동영상 2: 2018 월드컵 16강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광장에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수 있었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타이완 여자애랑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정도의

소음 수준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는 축구 룰을 전혀 모르는데

그냥 보러 왔다고 했다.


난 아무리 축알못이라도 축구 룰은 대충 아는데,

대만은 축구보다는 야구가 더 인기 있다는

그 친구 말이 정말인지,

그냥 자기합리화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러 다른 수준의 축알못들이 

광장에 기웃거릴 정도로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축제가 되어 있었다.




7월 7일(토)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는

러시아와 2:2였다가 연장전에서 4:2로 승리했는데,

나는 그때 코소보 프리슈티나에 있었다.


프리슈티나 시내에 있는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서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사람들은 많고

나는 키가 작아서 경기를 관람하진 못했다.


사람들의 환성과 한숨이 엇갈리는 소리만 들었다.


7월 12일(수)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는 잉글랜드와 경기해서 2:1로 승리했다.


날짜를 보아하니,

4강전은

내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있을 때 했나 보다.


하지만 거기서는 축구와 관련된 기억이 전혀 없다.




7월 15일(일) 결승에서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에 4:2로 해서

준우승을 했다.


이때는 내가 긴 여행을 마치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돌아왔을 때였고,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

아니 결승전을 느끼기 위해서,

옐라치치 광장으로 향했다.


내가 10여 일간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 여행을 하는 동안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열기는 한껏 달아올라서,

하양-빨강 체크무늬가

광장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애국심을 뿜어내고 있었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결승전 날 광장의 스크린 앞쪽은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사람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아래 사진 티셔츠에 적힌 글은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여(Lijepa naša domovino)"라는 제목의

크로아티아 국가 가사인데,

월드컵 끝나고 이 티셔츠를 사고 싶어서

자그레브 시내를 찾아 헤맸는데

결국 못 샀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사람들이 축구 응원할 때 더 많이 부른 노래는

이거다.

Croatian national football (soccer) fans anthem - YouTube

워낙 많이 들어서

나도 어떤 부분은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5: 2018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6: 2018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7: 2018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8: 2018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동영상 9: 2018 월드컵 결승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결국 경기에 지자,

어떤 20-30대 남자는 마시던 맥주병을

바닥에 힘껏 내던져 깨뜨리기도 했는데,


그게 내가 목격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었고,


다들 대체로 평온했다.


축구 응원곡이랑

크로아티아 국민가요도 함께 부르고,

아쉬운 마음에 광장에 계속 서 있다가

결국은 슬슬 흩어졌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졌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한 것 같았다.


하긴 그 강팀들을 이기고 결승까지 간 게 어딘가?




6. 결승전 후


그다음 날인가 그 다다음날

은행에 가러 옐라치치 광장에 갔는데,

광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광장 동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자그레브 은행(Zagrebačka banka)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경비원이 못 들어가게 하면서,

내일 오라며 문을 닫는다.

그의 태도는 단호하지만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모드리치를 비롯한

크로아티아 선수단이 광장 단상에 올라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원래 축알못들은 축구선수도

한 팀에 한 명 정도만 안다.


내가 아는 크로아티아 축구선수는

주장, 크로아티아어로 "카페탄(kapetan)"인

루카 모드리치(Luka Modrić)뿐이었다.


너무 사람들이 많고

너무 멀어서 

얼굴은 못 보고

그냥 멀리서 목소리만 들었는데,

모드리치는 항상 그렇듯이

나대지 않고 겸손하게 말하는 순둥이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목소리 톤도 안정되고 흥분하지 않는다.

농담도 안 하고

그냥 뻔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신뢰가 갈 수가 없다.


축구는 내가 잘 모르지만,

모드리치는 항상 내게

박지성, 손흥민처럼 인성으로 축구하는 선수처럼 느껴졌다.


내가 크로아티아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

"우리 주장 (naš kapetan)"이라며

모드리치 칭찬을 계속했다.


선수들이 이제 떠나도,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자그레브 시내는 그냥 축제 자체였다.


(동영상 9: 2018 월드컵 결승전 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10: 2018 월드컵 결승전 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나는 경기 다 끝나고나서 기념으로

티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그 전에 한 3-4천원이면 살 수 있던

반팔 티셔츠 쪼가리가 3-4만원씩 한다.


내가 사고 싶었던 디자인을 결국 못 찾은 데다가

원래 가격을 아니 도저히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도

하양-빨강 체크무늬는 티셔츠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2018년 7월, Croatia, Zagreb)


광장 위 옐라치치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체크무늬 망토를 두르고 서 있었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2018년 7월, Croatia, Zagreb)


(동영상 11: 2018 월드컵 결승전 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중앙광장)

(2018년 7월, Croatia, Zagreb)


그리고 이제 스코어와 날짜가 다 채워진

광장 뒤쪽 골목 바의

대진표도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2018년 7월, Croatia, Zagreb)




6. 축구 그리고 드라마


나는 2002년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그래서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이 어땠는지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축구 좋아하는 지인 따라

페테르부르크 스포츠 바에 경기를 관람하러 갔는데,

그 바의 한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이탈리아인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자,

러시아인과 이탈리아인/스페인인 모두

심판 욕하며,

뭐 씹은 표정으로 탄식을 하며 술을 마셔대서,

주눅 들어서

승리를 맘껏 기뻐하지도 못했다.


페테르부르크보다 모스크바는

스킨헤드가 심하다는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던데,

소문은 무지 무서웠었다.)

혹시나 한국 이겨서

공격 타깃이 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그 월드컵을

그렇게 숨어서 주눅 든 채로 보낸 나에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상대적 약체 크로아티아의 선전 그리고

그 광장의 인파와 들썩이는 분위기는

생전 처음 누려본 스포츠 축제이자,

축구를 통해 느낀 첫 자유와 승리의 행복한 드라마였다.


오늘 새벽 경기에서 크로아티아가 이기면

또다시 객관적 약체팀인 언더독이 승리하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그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고,


아르헨티나가 이기면,

가난에서 벗어난 빈민가 출신들의

숨겨진 언더독 역전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 어느 팀이 이기든 나는 좋다.


그나저나

내일 크로아티아-아르헨티나 전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먼저 연락하는 밀비야에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해볼까 보다.


크로아티아가 이긴다면 축하의 메시지를,

진다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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