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카드가 안내한 역사적, 문화적 명소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두브로브니크 카드” 3일권과 7일권에는
두브로브니크 근교 차브타트(Cavtat)
가는 왕복 시외버스 티켓과
화가 부코바츠의 집 입장권이 들어 있다.
내가 관광 패스를 많이 써 본건 아니지만,
이런 관광자용 도시 패스에서
그 도시의 경계를 넘어 “근교”까지 가라고
버스 티켓을 넣어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
보통 도시 패스를 구입하는 관광객의 목적은
도시의 다양한 명소를
가능한 한 저렴한 가격에 둘러보려는 건데,
패스를 발행하는 도시 입장에서는
실제적으로 기한 내에 다 방문하기 어려운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명소를 넣어,
명목상으로 고객의 선택의 폭을 넓히며
“이렇게 혜택이 많다”고 허세를 부리고,
실제적으로는 그 혜택 숫자에 맞춰
패스의 가격을 높인다.
관광객은 도시 패스의 넘치는 혜택을
다 누리지도 못하고,
아주 약간 할인된 가격에
몇몇 명소만 방문하고 그 패스 사용을 마감한다.
그래서 근교 차브타트에 있는 부코바츠 박물관과
거기까지 가는 왕복 시외버스 티켓이
두브로브니크 카드에 포함된 거 보고,
유명하지도 않은 근교 도시에 갈
두브로브니크 관광객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까지 넣은 건,
너무 심한 "혜택 부풀리기" 아닌가 생각했었다.
두브로브니크 체류 3일 동안
결국 거기를 갈 여유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두브로브니크 카드에 포함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생각보다 작아,
관람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성벽을 도는 데는 보통 1시간 내외 걸리고,
(난 천천히 걸어서 4시간이었지만,
그러고도 하루는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여러 다른 방법으로 스르지 산에 올라도,
사진 찍는 거 말고 그 위에서 할 수 있는 게,
두브로브니크 구시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나
1991년 유고연방군과의 전쟁박물관 관람 정도여서
그걸 다 해도 역시 2-3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두브로브니크에서 가볼 때 다 가보고도,
구시가를 여러 번 둘러보고도,
관광지 밖 두브로브니크 여기저기를 가보고도,
차브타트 갈 시간이 났다.
그리고 처음엔 근교"까지나" 갈 필요 있나 싶더니,
나중에는 두브로브니크 다 둘러보고 나서
그렇게 근교"까지도" 갈 수 있는,
경험의 확장 가능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낯선 도시에 와서,
또 다른 미지의 도시로 떠나는 게 좀 설레기도 했다.
두브로브니크 카드 살 때
왕복 시외버스 티켓까지 넣어주니
그냥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어차피 포함되어 있는 혜택
활용하는 차원에서 가봤더니,
차브타트는 두브로브니크에서 멀지도 않고,
(서울 안의 웬만한 동네 간 거리보다 가깝다)
마을 자체가 크지 않아
한번 둘러보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아서,
제대로 자리 잡고 해수욕을 할 게 아니라면
반나절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두브로브니크 바깥을 벗어났다
다시 돌아오는 경험이 특별하고,
크로아티아 해변은 항상 그렇듯이,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차창밖 풍경도 근사하다.
그래서
한번 가볼만하다.
차브타트(Cavtat)는
아래 지도와 마찬가지로
두브로브니크 남동쪽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로,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약 4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버스는 천천히 운행하고
정류소마다 다 서니까,
아마 렌터카 같은 걸로 가면 시간이 덜 걸릴 거다.
서북쪽 두브로브니크까지 약 20Km인데,
남동쪽 몬테네그로 국경까지도 약 20Km로
옆 나라 몬테네그로에서도 멀지 않다.
즉, 차브타트에서 1-2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몬테네그로의 휴양지 코토르에도 갈 수 있다.
차브타트(Cavtat)는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도시 Epidaurus [에피다우루스],
기원전 3세기엔
로마 도시 Epidaurum [에피다우룸]이었다가,
7세기 아시아에서 온 아바르(Avar)인과
동쪽에서 온 슬라브인의 침입으로 무너지고,
주민들은 현재의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남부,
당시엔 섬이던 라구사(Ragusa)로 도망갔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유적이
8세기 비잔틴 성당의 흔적이고,
또 7-8세기에 두브로브니크가 시작됐다고 하니,
에피다우룸이 무너진 시기와
두브로브니크에서 본격적 문명이 시작된 시기가
딱 맞물린다.
많은 주민들이 두브로브니크로 떠나
거기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에피다우룸에는 사람들이 거주했고,
중세에는 대외적으로 "구 라구사",
즉 “구 두브로브니크”라는 의미의
Ragusa Vecchia라 불리면서,
작지만 이제는 매우 강력한 나라가 된
“새로운” 라구사 공화국(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Cavtat라는 지명도 라틴어 Civitas Vetus,
즉 "옛 도시, 구도시"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차브타트는
현재의 두브로브니크의 조상도시인 거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된 유적은 거의 다 사라져,
고대문명의 흔적이나 고풍스러움은 느낄 수 없는,
여름 휴양객으로 붐비는,
바다가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작은 마을이다.
물론 이 작은 바닷가 마을은
구시가도 작고 예쁘고,
바다도 풍경이 아름답지만,
여기만큼 아름다울 게 분명한
수많은 두브로브니크 근교 중에
굳이 차브타트를 두브로브니크 카드에 넣은 건
관광자원으로의 중요성 이외에,
이 마을이 가진 이런 역사적 중요성과,
이 마을 출신 화가 부코바츠(Bukovac)가 가진
문화적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차브타트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우선 가보고 좋으면 좀 오래 있다 올려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두브로브니크 서쪽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0번 버스를 타면 된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로 가는 게 아니라면,
요금은 2019년 현재 편도 25쿠나(약 4,500원),
버스는 거의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닌다.
(버스 시간표는 다음 사이트 참고)
(동영상:두브로브니크-차브타트 가는 길)
차브타트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다.
지도 주황색이 건물인데,
RAT[라트]라는 반도에 거의 다 몰려있고,
여기가 가장 중요한 시가지다.
해안의 파라솔 표시에서 알 수 있듯이,
해수욕장이 많고,
그래서 이 근방에선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지도를 보니
누드비치도 있나 보다.
지도 서남쪽 수스테판(Sustjepan) 반도 옆에
쓰여 있는 FKK가
독일어 Freikörper-Kultur(자유로운 몸 문화)
에서 나온 “누드비치”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독일어에서는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크로아티아에서 "누드비치"는 다른 자기 말 말고,
독일어 FKK 그대로 쓰고,
크로아티아어식으로 “에프-까-까”라고 읽는다.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크로아티아에 유독 많은 것 같진 않고,
아마 유럽엔 다들 이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은데,
지도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크로아티아 해안 지역,
즉 달마티아와 이스트라 반도의 해안에
FKK라고 적힌 해변이 있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크로아티아 통틀어서 30개 정도가 있단다.
두브로브니크도 서북쪽 바빈 쿠크(Babin kuk)의
Cava[차바] 해변이 FKK라고 한다.
아무튼 Croatia라는 호텔 전용이라는 그 FKK까지
차브타트에 있다는 건,
워낙 일반 해수욕장이 많고,
해변이 아름답다는 의미일 텐데,
이 해변 휴양지에
나는 해수욕을 할 수 없는 2월에 갔고,
내가 간 날 따라
비가 장마철처럼 주룩주룩 내려서,
해변에 앉아 있기는커녕,
멀찍이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작은 해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물속과 물 밖 모두에서
어떤 형태로도 할 수 없었고,
극비수기라 식당, 카페, 상점도 한산했다.
아예 문 닫은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많았고,
어떤 빵집은 낮 1시인가 2시에 벌써 문을 닫았다.
그래서 비가 주룩주룩 오는 2월의 어느 날,
차브타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시가 구경이 전부였다.
어차피 여름에 갔어도
나 혼자서는 해수욕을 하지 않았을 테고,
수영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바다는 항상 멀리 있는 무엇이어서,
바다만 바라볼 수 있다면,
해변에 머물 수 없는 건 크게 아쉽지 않았는데,
차브타트는
구시가(Old Town)도 별로 예스럽지 않고,
딱히 문화적 유산이 많지도 않아,
문화적 여행을 할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난 좀 멘붕이었다
구시가 중심 버스터미널[위 지도 20번]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앞에 작은 관광안내소[지도 25번]가 보인다.
비도 많이 내리는 데다가,
지도도 하나 얻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작은 관광안내센터 안에는 아무도 없다.
따뜻한 실내에서 그렇게 5-10분 정도 기다리니,
직원이 나타났다.
비수기라 직원이 한 명밖에 근무하지 않나 보다.
그녀가 준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린다.
거기에서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는데,
선착장에 작은 배들이 몇 대 정박하고 있다.
크기도 아담하고, 겨울이라 배가 몇 대 없지만,
그래도 여기가 차브타트의 가장 중요한 항구다.
(동영상: Cavtat 해변1)
문을 거의 닫은 상가 건물들 앞에
무슨 동상도 서 있다.
처음엔 차브타트 출신 유명인사인가 했는데,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최초의 크로아티아 대통령 투즈만 박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코나블레 지역 주민들이 세움
거기서 좀 더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성당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수도원(Church of Our Lady of the Snow Monastery, Franjevački samostan Gospe od Snijega)[지도 5번]이다.
차브타트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15세기에 만들어진 고딕-르네상스 건축으로,
성당이 수도원 벽 바깥에 있고,
성당 문도 잠겨있지 않아,
다른 도시의 수도원들에 비해
좀 덜 폐쇄적인 인상이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점령기에 창고로 전용되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공공건물로 사용되다가,
1984년에 문화 유적이 되었다.
수도원에 딸린, 출입이 자유로운 작은 성당은
예술작품으로 유명한데,
제대와 신자석 사이의 벽 위쪽에는
차브타트 출신 화가 블라호 부코바츠가 그린
차브타트 전경 그림이 있다.
이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건
1510년에 만든 성 미카엘 폴립티크(polyptych),
즉 성경의 장면이 그려진 접이식 그림 패널인데,
2018년 2월에는 보수 중인지,
실물 없이 그냥 사진만 붙어 있었다.
난 원래 성당이랑 박물관 안에서 사진 잘 안 찍는데,
사람 없는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냈다.
그 성당에서 서쪽으로는
이렇다 할 문명의 흔적이 없이,
그냥 작은 언덕 옆으로 바닷가 산책로가 계속된다.
그래서 다시 구시가로 되돌아가서,
좁은 골목의 높지 않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계단을 다 오르면,
라트(Rat) 반도의 건너편
북쪽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그 구시가 서쪽 계단 끝에는 라치치 가족묘(Mauzolej obitelji Račić, Racic Mausoleum)[지도 3번]가 있다.
난 비가 내려 길도 질척거리고,
무슨 보수 공사를 하고 있길래,
거기는 가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았는데,
그곳도 차브타트의 중요한 문화적 명소다.
라치치는 19-20세기 유명한 선장이었는데,
그의 아내의 유언대로 만든 가족묘는
브라치 섬에서 나온 흰 돌로 만든
아르데코 양식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 유명하고,
현지인 사이에는 종이 울릴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두브로브니크 카드 3일권, 7일권으로
입장이 30% 할인된다.
거기서 다시 차브타트 구시가 동쪽으로 걸으면
낮은 계단 밑으로 멀리 바다가 보이는
비슷한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그 골목의 동쪽 끝,
구시가 입구엔 성 니콜라 성당이 있다.
성 니콜라 성당(St. Nicholas Church, Crkva sv. Nikole) [지도 14번]은
15세기 처음 만들어진 르네상스식 가톨릭 성당으로,
종탑은 18세기에 덧붙여졌다.
특별히 높은 건물이 없는 구시가에서
이 성당의 종탑은
차브타트 구시가의 스카이라인에 멋을 더하는
가장 눈에 띄는 건축이며,
가톨릭 교회 행정적으로도
차브타트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이 안에도 차브타트 출신 화가 블라호 부코바츠의 그림을 비롯한 많은 성화가 있다.
그런 아담한 차브타트 구시가 골목 중간쯤에
부코바츠 생가(Vlaho Bukovac Home , Kuća Bukovac)[지도 11번]가 있다.
개관 시간은
11월-3월 (비수기)
화-토 9:00-17:00, 일 14:00-17:00.
4월-10월 (성수기)
월-토 9:00-18:00, 일 09:00-14:00.
두브로브니크 3일권, 7일권으로 무료입장이다.
블라호 부코바츠(Vlaho Bukovac)는
현대 크로아티아 회화의 대표 화가이다.
그가 태어난 이 집은 그의 할아버지가 구입해서,
그의 아버지와 부코바츠 자신이
지금의 모습으로 건축하고 증축했는데,
1층 남쪽 대문 쪽에 작은 정원이 있고,
2층 뒤 북쪽에 큰 정원이 있는 이 2층 건물은
18-19세기 전형적인 부르주아 주택으로,
그 건축만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단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살았던 집이라고 하기엔,
많이 작고 소박한 그 집이 박물관이 된 건,
크로아티아 대표 화가 부코바츠 생가이기 때문이다.
이 집을 산 그의 할아버지는 Giuseppe Fagioni
[아마도 "쥬세페 파지오니"라고 읽을 것 같다]
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선원이었는데,
차브타트 여인과 결혼하고 이 곳에 정착했다.
그렇게 1/4 이탈리아인이었던 부코바츠 자신도
어렸을 때 부계를 따라 이름과 성이
Biagio Faggioni[비아지오 파지오니]였는데,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크로아티아어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긴 3/4은 크로아티아인이고
크로아티아에서 살았으니,
자신에 이름에 그런 정체성을 담고 싶어 한 건
너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게 Biagio라는 이름은 Vlaho[블라호]가 되었고,
이탈리아어로 faggio가 "너도밤나무"인데,
그게 크로아티아어로 bukva[부크바]여서
성을 Bukovac[부코바츠]라고 스스로 지었다.
[러시아어로 буква는 "문자, 글자"라는 의미다.
슬라브어는 이렇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르다.]
그는 15살에 고향을 떠나 남미와 북미에 갔다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로 돌아와서
당시 크로아티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말년을 보낸 체코 프라하로 떠나기 전
4-5년간 고향 차브타트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지은 이 집을
그때 그가 2층으로 증축하고,
작업실도 새로 만들어서 현재 모습이 되었다.
그는 이 18-19세기 부르주아 저택뿐 아니라,
앞서 둘러본
차브타트 가톨릭 성당에도 회화 작품을 남긴,
가장 유명한 차브타트 출신 인사다
구시가의 좁은 골목 사이 계단 중간쯤
대문이 열린 부코바츠 생가가 보인다.
입구에 비석같이 생긴 걸 보고,
무덤인가 했는데,
이 집에서 부코바츠가 태어났다는 안내문이다.
이 작은 입구에 들어가서,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보여주니,
어떤 QR코드를 인식하라고 했는데,
그럼 휴대폰으로 박물관 음성안내를 받을 수 있다.
겉모습과 달리 최신식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때 QR코드로 들었던 그 안내 사이트가 나온다.
이걸 들으면서 박물관을 관람했다.
그런 안내 후에도
직원분이 1층의 큰 그림을 설명해주고,
2층은 혼자 보라고 했다.
1층엔 차브타트 축제를 묘사한 커다란 그림과
그의 자화상이랑 가족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여러모로 2층이다.
2층 작업실에는
그가 그린 그림이 벽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고,
그 작업실 옆에는 그가 살던 방들과
그가 쓰던 가구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한 방에서는 차브타트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바다 전망 하나로 꿈의 방이 된다.
부코바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작업실 한쪽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 방은 무척 밝았고,
그 옆으로 난 문을 빠져나가면,
마치 비밀공간 같은 그 뒤의 정원으로 연결된다.
바다는 안 보여도
아늑하니, 휴식 같은 공간이었다.
부코바츠 생가에서 1층의 무슨 그림이
자그레브에서 전시 중이라 없다고,
그림이 걸려있던 자리에 대신
그림을 프린트한 천을 걸어놓았었다.
그리고 나중에 자그레브에 돌아와 보니,
정말 자그레브 구시가의 한 미술관에서
“블라호 부코바츠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했는데,
모르는 이름이라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다가,
"생가까지 다녀온" 익숙한 작가라는 걸 알아보고,
두브로브니크 다녀온 지 2주쯤 후
자그레브에서 그의 그림 전시회에 갔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그 박물관 옆의 벽에 걸려있는 포스터 속
그림도 부코바츠 그림이다.
파리에서 작업한 작품만 전시한 것인데도,
차브타트 생가보다 그림이 훨씬 많고 다양했다.
그래서 전시의 만족도는
자그레브 특별전이 더 높았다.
이 전시회 다녀온 이탈리아 친구 키아라에게,
부코바츠 성이 원래 이탈리아 성이었는데,
크로아티아식으로 바꾼 거라고 하면서,
원래 이탈리아 성을 찾아 보여주니,
키아라가 그랬다.
어쩐지 그림이 이탈리아식이더라.
그 친구가 무언가 특정한 걸 정말 염두에 두고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난 그 이야기 들으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서양 미술에서
이탈리아적이지 않은 게 있을까 싶기도 하고,
또 부코바츠의 그림은
키아라가 한 말에서 이탈리아를 빼고
다른 나라 이름을 넣어도 다 말이 될 것 같은,
그런 보편적인 사실주의 서양 회화이기 때문이다.
부코바츠는 특정한 사조를 만들어낸 화가도 아니고,
특별한 시그니처가 있는 작가도 아니라,
사실 크로아티아 밖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림의 테마도 다양해서 흥미롭고,
어쩌면 당시 주류 기법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
고전적이면서 사실주의적인 그림이
매우 아름답고, 조화롭고, 모나지 않고 따뜻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내가 차브타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이 박물관에 간 것,
그리고 부코바츠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이다.
차브타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바다라,
비 오는 겨울에 봐도,
파랑과 초록이 뒤섞인 바다가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구시가를 좀 둘러보고,
그 근처 바닷가를 걸었다.
(동영상: Cavtat 바다 2)
별로 크지 않아서 그렇게 쓰윽 둘러보는데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는다.
한 2-3시간 정도
그렇게 구시가와 구시가 근처를 구경하며
차브타트에 머무르다가,
이제 두브로브니크로 돌아가려고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갔는데,
이런!
그날은 평일이었는데
내가 미리 적어둔 버스 시간은 주말용이었다.
버스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다음 버스까지 1시간이 조금 덜 남았는데,
더 이상은 별다른 걸 할 게 없어 보이는
이 마을에서 그동안 뭘 해야 하나 싶다.
점심을 먹을까도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좀 시간이 아까워서,
구시가가 있는 라트(Rat) 반도 주위를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고,
나무가 많은 작은 언덕과 바다 풍경도 멋지고,
조용해서 걷기가 참 좋다.
지금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 30-40분 걸었나 보다.
터미널에 버스 시간 맞춰 갔으면,
이 좋은 걸 못하고 갈 뻔했다.
때로는 아니 어쩌면 꽤 자주,
실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준다.
(동영상:Cavtat 바다 3)
한번 돌고 나서 시간이 좀 더 남아서
조금 10-15분 좀 더 걷다가
제시간에 시외버스를 타고
무사히 두브로브니크로 돌아왔다.
(동영상: 차브타트에서 두브로브니크 오는 길)
두브로브니크 카드에 있어서 한번 가본
차브타트(Cavtat)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가보길 잘한 것 같기는 한데,
내 스타일의 여행지는 아니었다.
난 가만히 앉아서 쉬는 여행보다,
움직이고, 구경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차브타트에서는 내가 할 게 딱히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예쁘고, 해수욕장이 많아서,
여름에 바다에서 휴양하기에는
그래도 근교 차브타트가
붐비는 두브로브니크보다 더 나을 것 같다.
그밖에 두브로브니크 가는 관광객에게
크로아티아인들이 추천하는 장소로는
국립공원 믈레트(Mljet) 섬이 있다.
원래 발음은 [믈리예트]에 가까운데,
한국어로는 [믈레트]라고 표기한다.
크로아티아어 수업에서 선생님들이
두브로브니크에서 가까운 국립공원 섬 추천하길래,
난 그게 구시가에서 보이는
로크룸(Lokrum)섬인 줄 알았는데,
믈레트 섬은 그보다 훨씬 크고,
좀 더 작정하고 가야 하는 곳이다.
아래 지도에서도 보듯이,
믈레트 섬에 가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두브로브니크에서 배를 타는 것이다.
믈레트는 아주 작은 섬이 아니어서,
선착장이 많은데
폴라체(Polače)에서 내리면
자연 관광지인 국립공원에 가장 가깝단다.
2019년 현재
두브로브니크 배 비용은 편도70쿠나(약 만2천원).
페리는 하루 3대 운항하고,
성수기엔 그 배를 타고 아침에 일찍 갔다가
저녁에 두브로브니크로 돌아올 수 있지만,
비수기엔 배 시간이 애매해서
믈레트에서 하룻밤 자야 한단다.
차브타트(Cavtat)와 마찬가지로,
믈레트(Mljet)도 두브로브니크보다 먼저
이미 기원전부터 역사에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7년 동안 감금된
그 섬이 바로 이 믈레트라고도 하며,
신약 사도행전에서
바오로(바울)사도의 배가 난파된 곳도 믈레트란다.
또한 믈레트 섬 서쪽은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에는 국립공원이 총 8군데,
그중에 4군데는 육지, 4군데는 바다에 있는데,
난 8개의 국립공원 중에,
플리트비체,
크르카 국립공원,
코르나티 군도,
이렇게 3군데를 갔었고,
3군데 다 매우 좋았다.
크로아티아는 어디 가나 예쁜 데가 많은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그중에서도 엄선되어, 관리, 보호되는 곳이라
그 자연의 아름다움이 차원이 달랐다.
규모도 크고,
잘 보전되어,
자연이 무척 조화롭고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답다.
그래서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 믈레트 섬 서쪽도
자연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는 무척 좋을 것 같다.
2018년 2월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를 시작으로,
6개월 머무는 동안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도시와 관광지는
거의 다 다녀온 것 같다.
"두브로브니크"만큼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은 아니라도
크로아티아는 다른 도시도
바다는 바다대로, 육지는 육지대로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지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여행 이야기도 많이 하고,
대체로 여행도 자주 다니는 것 같다.
내가 얘기를 나눠본 크로아티아인들이
유독 지적인 사람들이어서 그런 건지,
아님 보통 다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자기 고향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핵심적 역사나 이야기도 해준다.
우리는 TV 안에서나, TV 밖에서나
어디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가
가장 흔히 하는 여행 이야기인 것 같은데,
크로아티아인들은
어디 어디 가면 뭐가 있는데,
그게 무슨 전설이랑 연결되어 있다,
혹은 무슨 역사적 사건, 역사적 인물과 관련 있다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행히 러시아인들처럼 역사와 야사를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보다
핵심만 찍어 짧게 말하는 그런 이야기 중
어떤 건 매우 놀랍고,
어떤 건 뭐 좀 대수롭지 않고 그렇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난 내가 사는 도시와
다른 지방에 대해 참 모르는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는 왜 학교에서 그런 걸 안 배우는 걸까?
TV에서도 왜 그런 건 잘 얘기하지 않는 걸까?
근대화 과정에서 건축과 가치들을 획일화하면서,
각 지역이 가진 남다른 특별한 이야기들도
그렇게 묻히고 또 잊혔나 보다.
물론 크로아티아인들이 "이야기"해준 곳 중에
내가 못 가본 도시도 많지만,
그래도 내가 가본 크로아티아 바다 쪽 도시는
거의 다 둘러봤고,
이제 크로아티아 바깥에 잠깐 다녀왔다가,
이 매거진의 다음 글부터는
대수롭지 않지만 그래도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진,
관광지로는 덜 유명한,
크로아티아 육지 쪽 도시들을 둘러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