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만 특별한 두브로브니크 현지인의 추천 장소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다른 포스트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브로브니크에 오래 머무는 여행자는
주요 명소의 입장권을 각각 사는 것보다
두브로브니크 카드가 훨씬 더 경제적이고,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10%가 저렴하다.
마음 같아선 그냥 다음날 관광안내소에 가서
휴대전화로 확인 이메일을 보여주고
카드를 받으면 좋겠건만,
아님 아예 모바일 카드로 입장을 하면 좋겠건만,
또 다른 포스트에서 얘기한 것처럼,
크로아티아는 "종이"를 좀 많이 좋아해서,
대체로 모바일보다 출력된 종이를 요구하고,
심지어 그냥 번호 하나 적힌 서류도
출력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만 유효하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 두 번째 날 저녁에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확인 이메일을 출력하러 숙소 주인에게 갔다.
마침 프런트에 엄마와 함께 앉아 있던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이
출력하라고 흔쾌히 컴퓨터를 내주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 우리랑 좀 비슷한 게 있어서,
그렇게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한두 장 출력은 당연히 그냥 공짜로 해준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어로 말하면 좀 더 잘해준다.
더 싸게 해 주거나,
덤으로 뭘 더 주거나,
그냥 좀 더 친절하거나 뭐 그렇게.
나중에 좀 더 다녀보니, 그 동네에선,
다른 크로아티아 도시에서도 그렇고,
이웃나라 세르비아, 보스니아에서도 그렇고,
흔히 경험해서 매우 익숙하면서
또 낯선 동네에서 접하니 어쩐지 좀 어색하기도 한,
그런 한국적인 정서를 자주 만나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숙소 주인과 딸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두브로브니크 카드 예약 메일 출력하고,
당시 내가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어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3주간 배운 초급 크로아티아어 실력으로
영어를 좀 섞어가면서,
한국과 크로아티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한 30분 셋이서 얘기를 하다가
이제 내 방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하니,
그 딸이 잠깐 기다리라면서,
지도 하나를 새로 펼치고는,
거기에다 표시를 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가 우리 있는 데고 여기가 구시가인데,
아마 여기는 잘 알 테고”
하면서 구시가와 성벽에 대한 설명은 패스하고,
"여기는 지금 못 가고"
하면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로크룸(Lokrum) 섬도 패스하고,
“여기 케이블카 타고 산에 올라가면 좋다.
원래 사람 많은데
요즘은 오래 안 기다려도 될 거다.”
뭐 그러면서,
케이블카 타는 데에다가 표시를 해주고,
“여기가 전망이 정말 좋으니,
여기 가서 커피를 마시라”
면서 구시가 동쪽 해변 호텔에 표시를 해주고,
“여기가 정말 좋다”
면서 서쪽의 항구 쪽에서 멀지 않은
어느 길에 또 표시를 해주었다.
중요한 걸 깜박했다는 듯이
“아, 여기도 좋은데”
라며 구시가 서쪽 해안로에도 표시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게 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마쳤다.
하긴 평생 살았으니,
자기 고향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실감 못하는 게 정상인 거 같다.
그 친절한 주인집 딸 덕분에,
현지인의 정보를 알게 되었고,
그녀가 안내한 곳에 다 가보고,
또 다른 곳들도 가봤는데,
구시가와 성벽처럼 “와우”가 연발되고,
뭐에 홀린 듯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하는
생전 처음 본 풍경은 아니었어도,
나도 모르게 “너무 좋다”고 혼잣말을 하게 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지긋이 바라보게 만드는
구시가 밖 현지인의 공간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이제 이 포스트에선
그 어디에나 있는 흔한 바다와 산이지만
그래도 또 특별한
"두브로브니크 현지인의 추천 장소"를 둘러보겠다.
아래 지도에 하늘색으로 표시한 곳이 그곳이고,
분홍색으로 표시한 곳이
추천 장소 가다가 내가 우연히 가게 된 곳이다.
원래 이 지도의 길 위에 적혀 있는 숫자는
그 길을 지나는 버스번호다.
한국은 어디 가든 산이 보이지만,
내가 한 달 이상 머물렀던 외국 도시들은
거의 다 평지여서,
2014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6-7주 머물 때,
어디 가든 산이 보이는 게 새삼 신기했는데,
발칸반도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크로아티아에서도
어느 도시에 가나 멀리 혹은 가까이 산이 보이고,
특히 해안인 달마티아 지방에선
어디 가나 서쪽엔 바다, 동쪽엔 산이 보인다.
구시가와 성벽으로 유명한 두브로브니크에는
스르지 산 혹은 스르지 언덕이 있다.
영어에서는 Mountain으로 표현하지만,
해발 415미터로
서울 남산보다도 250미터나 낮은 높이라
크로아티아어에서는 Brdo[브르도],
즉 "언덕"이라고 부른다.
Srđ[스르지]라는 이름을 듣고
“가운데”라는 의미의 Srd[스르드]를 연상하고,
거기서 파생된 지명이라고 계속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블라시오 성인 이전 두브로브니크 수호성인이던
“세르지오 성인”을 가리키는 거란다.
블라시오 성인은
10세기부터 두브로브니크 수호성인이니,
14세기 러시아 출신 세르지오(세르게이)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
그리스도교 신자여서 박해받고 순교했던
4세기 시리아 출신 성인 세르지오가
두브로브니크의 산 이름 스르지다.
Srđ의 마지막 자음 đ은
[지]보다는 [쥬]에 더 가깝지만,
외국어 표기법에서는 [지]로 표기한다.
매우 크로아티아어적인 문자라서,
영어에서는 그냥 Srd로 표기하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아는 언어들에서
자음 없이 모음만 있는 단어는 있어도,
모음 없이 자음만 있는 단어는 없는데,
크로아티아어-세르비아어-보스니아어,
슬로베니아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에는
이렇게 모음 없는 단어들이 있다.
즉, 그 명칭 자체가 매우 슬라브어적이고
또 크로아티아어적인 곳이다.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1)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첫 번째 방법은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는 것이다.
1969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1991-1992년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2010년 다시 재건하여 운행을 시작해서
차체가 매우 최신식이다.
한 번에 30명씩 탈 수 있고,
성수기엔 줄이 엄청 길다고 하는데,
그래도 루트가 길지 않아 3분이면 정상에 오른다.
구시가 북쪽에
(위 지도의 Dubrovnik Cable Car라고 표시)
케이블카 타는 곳이 있는데,
이정표를 따라가면 찾기 어렵지 않다.
2019년 현재 요금은
일반 왕복 170쿠나(약 3만원), 편도 90쿠나,
12세 이하 왕복 60쿠나(약 만원), 편도 40쿠나.
4세 이하 무료.
아침 9시부터 이용 가능한데,
마감시간은 시즌에 따라 16시-24시까지 달라지고,
두브로브니크의 다른 물가와 마찬가지로
케이블카 요금 또한 계속 비싸지고 있으니,
요금과 운행 시간은 케이블카 타러 가기 전에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두 번째 방법은 위 지도에서 2번으로 표시한
지그재그 보행로를 따라 산행을 하는 것이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며,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가톨릭 의식 "십자가의 길"의 14처가
중간중간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3)
세 번째 방법은 17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건데,
나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에 십자가의 길 산행은 아예 몰랐고,
케이블카는 원래 안 좋아해서,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면 거의 안 탄다.
2019년 현재 두브로브니크 시내버스 요금은
버스에서 사면 15쿠나(약 2,700원),
버스 가판대에서 미리 사면 12쿠나(약 2,100원),
24시간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티켓은
30쿠나(약 5,400원)이며,
나는 두브로브니크 카드 3일권이 제공하는
시내버스 6회 무료 탑승권 중 2회를 활용했다.
(참고로 7일권은 10회 무료,
1일권은 하루 무제한 사용 가능하다.)
17번 버스의 루트는 다음과 같고
구시가 서쪽 필레 문(Pile Gate) 앞
버스정거장에서 17번 버스를 타서,
(두브로브니크 모든 시내버스는 거기에 선다)
종점 보산카(Bosanka)에서 내린 후,
멀리 보이는 첨탑까지
서쪽으로 20-25분 정도 걸으면 된다.
그 길이 바다 쪽으로 나 있어서
풍경이 꽤 괜찮고 걸을 만하다.
단, 17번 버스는 1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고,
주말에는 그나마 덜 자주 다니기 때문에,
버스정거장에서 왕복 시간을 잘 체크해야 한다.
(4)
네 번째 방법은 17번 버스의 루트를
택시나 렌터카를 타고 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나마 17번 버스 루트가 가장 빠른 길이라,
택시나 렌터카로 가도 그 길로 가면 된다.
택시비는 300쿠나(약 55,000원) 정도 든다는데,
이건 숙소 주인이나 여행안내센터 등
현지에서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5)
마지막으로
스르지 산 "투어"를 통해 갈 수도 있는데,
이것도 여행안내센터에 물어보면 될 거다.
내가 스르지 산에 간 날은
4박 5일 두브로브니크 체류 마지막 날이었는데,
계속 오던 비가 멈추고
아침에는 날씨가 화창했다.
그래서 17번 버스 밖 풍경도
더욱 선명하고 하늘도 근사했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 가는 17번 버스 안 1)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 가는 17번 버스 안 2)
극비수기라 그런지
아니면 관광객들은 보통 버스 타고
스르지 산에 안 가는지,
작은 버스 안에는
나 말고 1-2명의 현지인 승객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종점인 보산카(Bosanka)는
주민이 20명 남짓인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밖에 없고,
그나마 크기도 작은 미니버스고,
버스 승객도 별로 없었나 보다.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면,
1991-1992년 유고연방군이
두브로브니크를 포위하고 공격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안내문이
크로아티아와 영어로 쓰여 있다.
스르지 산에 오르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걸 읽어 보니,
여기가 1991-1992 두브로브니크 포위 당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곳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사망일자가 1991년이나 1992년인
비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작은 마을의 중심인 듯 보이는
버스정거장에서 서쪽으로는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길게 펼쳐진다.
한 겨울에 이런 초록 산책로를 만나니 반갑다.
하지만 그 산책로를 지나면,
바위들 사이에 듬성듬성 난 작은 나무뿐이다.
그래도 겨울이라 그늘이 별로 아쉽지 않은 데다가
바위산은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게 또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그 길을 걷다가 좀 더 바다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 붉은 지붕의 구시가가
푸른 하늘과 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감탄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두브로브니크 자료 사진에서 많이 봤던
바로 그 모습이다.
그 길의 끝에 십자가가 보이면,
이제 스르지 산 정상에 도달한 것이다.
그 십자가 서쪽에는 케이블카 승하차장이 있다.
그 케이블카와 십자가 사이가
구시가 전망이 제일 좋은데,
케이블카 기둥이 안 나오게 찍기는 좀 어렵다.
아래 사진 왼쪽은 두브로브니크 동쪽,
오른쪽은 서쪽이다.
십자가와 케이블카 승하차장 뒤로 보이는
낡은 벽돌 건물은
임페리얄 요새(Tvrđava Imperijal, Imperial Fortress)다.
임페리얄 요새는 19세기 초 1806-1814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달마티아 지방을 점령하고,
"일리리아 주(Illyrian Provinces)"라고 명명할 당시
건설되기 시작해서,
(아마도 그래서 "황제"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통치 하에서
완성되었다.
19세기 후반 오스만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터키의 침략에 대비하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고,
1991-1992년 두브로브니크 포위 때
크게 파괴되었다.
2016년부터는
유고연방군과의 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조국 전쟁 박물관이 되었다.
그 요새 북쪽에 있는 좁은 통로를 통해
뒤쪽에도 가볼 수 있는데,
건물 앞 쪽이 좀 더 폐허 같다면
그 뒤쪽 건물은 좀 더 요새나 성 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여기가 십자가의 길 14처였나 보다.
당시엔 이 길을 몰랐는데,
여기서 걸어 내려가는 게
버스 타고 가는 것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겠다.
구시가 서쪽 풍경도 보이고,
구시가만이 아니라 두브로브니크 전경을 보기엔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요새 북쪽엔 TV 송신탑이 있는데,
이것도 90년대 초 전쟁 중 파괴되었다가,
다시 건설한 것이라서
새로 지은 것처럼 말끔하다.
요새 동쪽엔 1992년에 전쟁 중에 사망한 듯한
누군가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겹겹이 쌓인
이국적인 모양과 색의 발칸 산맥이 보인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
그렇게 요새까지 돌아보고 나니,
"조국 전쟁 박물관" 입구 앞에서 망설여진다.
스르지 산과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한 박물관이고,
여기서 밖에 볼 수 없어서,
들어가 보고 싶으면서도,
버스 출발 시간이 1시간 좀 넘게 남았는데,
버스까지 걸어가는 시간 25-30분 정도 빼고,
30분 만에 박물관을 다 둘러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좀만 늦어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다
안 들어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결국 안으로 들어갔다.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건,
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조국 전쟁 박물관(Muzej Domovinskog rata, Homeland War Museum)은
2019년 현재
입장료 30쿠나 (약 5000원), 어린이는 무료.
입장 시간은 8:00-22:00.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박물관이 아니라서
아마 입장료는 한동안 안 오를 것 같다.
박물관 홈페이지도 크로아티아어로만 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는데,
1991-1995년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연대순으로 설명하고,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비디오도 상영하고,
당시의 무기 같은 것도 전시되어 있다.
처음에 전쟁의 진행상황에 관한 글을 읽다가
아무래도 그러다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 못 나갈 것 같아서
그냥 그림만 대충 보고,
나중에 읽을려고 전시된 글을 사진 찍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전쟁 진행 상황이야
나중에 필요할 때 인터넷에서 찾으면
다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벽과 천정엔 특별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자연스러운 인테리어가
이 박물관의 주제에 딱 맞는 것 같다.
매표소 바로 앞에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으로 올라가면,
그냥 으스스한 폐가 분위기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면 옥상이 나온다.
그리고 역시 거기서도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 박물관 옥상 풍경)
시간이 없어 너무 대충 본 게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보고 나오길 잘한 것 같다.
두브로브니크 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전체에서
이런 현대사 박물관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제 버스 시간 늦지 않게 걸어가야 한다.
올 때와 달리 돌아갈 때는 길도 잘 아는 데다가,
길 자체도 내리막길이라
시간이 조금 덜 걸렸다.
임페리얄 요새 근처에서 본
일본인 여자 관광객 세 명을 태우고
내 옆을 지나면서,
택시 기사 아저씨가 괜히 나한테 인사를 하고 갔다.
버스 시간에 촉박하니,
돈 좀 얹어주고,
저 택시 좀 얻어 탔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걸어가면서 경험하는
이 이국적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길)
임페리얄 요새 동쪽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건설했다는
또 다른 요새의 잔해도 보인다.
이게 보이면 버스정거장에 거의 다 도착한 거다.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늦게 왔고,
보산카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남녀 중고등학생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에서 돌아오는 17번 버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스르지 산에서 돌아오는 17번 버스)
버스에서 멀리 로크룸(Lokrum) 섬이 보인다.
로크룸 섬은 숲이 좋고,
여름엔 해변에서 해수욕하기도 좋고,
식물원과 베네딕토 수도원도 있고,
미드 "왕좌의 게임"의 강철 왕좌도 있단다.
5-9월까지는 로크룸 섬까지 페리가 운행되는데,
2019년 현재 입장료를 포함한 왕복 티켓이
150쿠나(약 27,000원)이고,
그 운항시간은 시즌에 따라 다르니,
페리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겠다.
내가 갔던 2월엔 페리가 운항하지 않았는데,
시간표를 보아하니,
겨울뿐 아니라,
10월부터 4월까지 배편이 없는 것 같다.
현지인이 알려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카페는
5성 호텔 Hotel Excelsior 안에 있다.
구시가 동쪽으로
해변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데,
입구로 들어가면 호텔 프런트이고,
카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야 나온다.
커피 마시러 왔다고 하면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바다 바로 앞이어서 전망은 진짜 좋은데,
겨울이라 개방하지 않은 듯 보이는
통유리 밖 야외가 전망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극비수기여서 관광객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커피 마시기에 애매한 시간에 갔는지,
아님 다들 커피보다 밤에 술 마시러 여기 오는지,
4-5시쯤 손님이 거의 나 혼자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크로아티아어 연습도 할 겸
크로아티아어로 주문했는데,
40-50대 정도의 중후한 웨이터가
크로아티아어 할 줄 아냐면서 좀 놀라며,
어디에서 왔는지 묻더니,
나중에 계산하며 나갈 때
나한테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지인이 알려준 장소인 데다가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해서
난 숨겨진 명소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유럽에서 이제 한국인이 거쳐가지 않은 곳을 찾기는 불가능한 거 같다.
난 카페라떼 마셨는데,
25쿠나(약 4,500원)로
커피값은 다른 데보다 2배 정도 비싼 것 같다.
살인물가인 두브로브니크도
커피값과 마트 물가는 한국에 한참 못 미친다.
그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카페”
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브로브니크 현대미술관(Umjetnička galerija, Museum of Modern Art Dubrovnik (MoMAD))이 있다.
럭셔리랑은 거리가 한참 먼 나는
그 5성짜리 호텔 안 전망 좋은 카페보다
이 미술관이 더 좋았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로 간 박물관과 미술관 중에서
개인적으로 난 여기가 가장 좋았다.
평소 그림 구경 좋아하는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처음 가본 갤러리인 데다가,
크로아티아 밖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크로아티아 출신 예술가들의 "귀한" 작품을
그것도 엄선된 작품들로 만날 수도 있었고,
그 공간 자체도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개관 시간은 09:00 – 20:00.
(겨울에도 늦게까지 열어서 그것도 좋았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나
통합 박물관 카드로 입장 가능하다.
원래 어떤 두브로브니크 선주의 별장이었다더니,
정말이지 건물에서
뭔가 평창동 부잣집 느낌이 많이 난다.
20세기 초반 건축되었고,
건축학적으론 고딕 양식이 가미된
신르네상스 건축이란다.
그러고 보니
창문이 절제된 높은 외벽은 고딕스럽고,
2층의 로지아는 르네상스 스타일이다.
1948년부터 현대 미술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단다.
이렇게 생긴 입구에 들어가
소지품을 맡기고
2층과 3층의 회화 작품을 구경하고,
2층 테라스의 조각을 구경하게 되어 있는데,
작품이 거의 다 크로아티아 출신 작가들의 것이고,
또 대표작으로 두세 작품씩 엄선해서
전시물은 많지 않지만 너무 좋았고,
관람객도 많지 않고
전시 공간이 넓어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뭔가 여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특정한 작품이나
특정한 작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맘에 들어서,
한번 보고 난 후 같은 전시를 한번 더 돌았다.
이건 2층과 3층의 연결 계단인데,
이런 창문이나 난간의 디테일마저 예술적이다.
2층의 테라스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로지아도 아름답지만,
멀리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또 근사하다.
현지인이 알려준 럭셔리한 호텔 카페의 전망에
나는 크게 감동하지 않았는데,
두브로브니크 최고의 전망이라는 말에
너무 기대를 해서였는지도 모르고,
그 카페를 찾아가던 길에 본,
“통유리 끼지 않은” 바다 풍경이
카페에서 본 유리창 밖 풍경보다
더 근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페에 들어가니 슬슬 해가 지고 있었는데,
통유리에 방해받지 않고 그걸 보고 싶어서
커피만 마시고 얼른 카페를 나왔다.
다행히 아직 그래도 태양의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크로아티아 자다르가 알프레드 히치콕 덕분에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긴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실물이 명성 그대로인 자다르 일몰 말고도,
크로아티아 해변은 어디든 일몰이 근사하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반예 해변 일몰)
물론 일몰이 아닐 때도 근사하다.
괜히 크로아티아고,
괜히 아드리아해겠는가?
일몰이 아닐 때는
구시가와 성벽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Hotel Excelsior, 두브로브니크 미술관과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사이에 있는 해변은
반예 해변(Plaža Banje, Banje Beach)으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서 가장 가깝고,
구시가와 로크룸 섬이 보이는 전망이 가장 좋고,
또 여름밤엔 밤새 파티가 벌어지는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핫한 해변이다.
(동영상:두브로브니크 반예 해변)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반예 해변 서쪽)
반예 해변 서쪽에는 파도도 거세고,
바위도 울퉁불퉁해서
수영이나 해수욕을 하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 거친 바위 바로 옆에는
구시가 같은 흰색 건물이 서 있는데,
라자레티(Lazzarettos of Dubrovnik, Dubrovački lazareti)라고 불리는 예전 검역소로
300미터에 이르는 긴 건물이다.
현재는 여러 가지 문화행사를 하는 공간이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 보이는
똑같이 생긴 작은 건물들이 그것이다.
사실 두브로브니크 남쪽엔 항상 바다가 있고,
어느 바다에 가나 다 좋다.
비수기 겨울에 가니 바다에도 사람이 없어서,
바닷소리와 냄새와 빛깔과 그 정취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구시가에서 바다를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성벽 위지만,
입장료가 비싸 매일매일 입장할 수는 없고,
무료입장할 수 있는 곳 중에서는
서쪽 성 라우렌시오 요새 근처와
동쪽 성 요한 요새 근처가
바다를 즐기기에 가장 좋다.
둘 중에서는 성 요한 요새가 좀 더 탁 트여 있어서
바다의 자유로움에 좀 더 걸맞은 공간 같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 있는 동안
바닷바람 맞으러 여러 번 갔었다.
성 요한 요새 옆의 방파제(?)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두브로브니크 시내가,
남쪽을 바라보면 드넓은 바다가 보인다.
외부에서 오는 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세운 보 위에
이제는 바다를 향한 벤치들이 놓여 있다.
구시가 서쪽 필레 문을 나와
5-10분 찻길을 따라 걸어가면
넓고 깊은 바다가 눈 앞에 등장하는데,
여기도
두브로브니크 현지인이 좋다고 말했던 곳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자"라는 뜻의
브라니텔 두브로브니카(Ul. branitelja Dubrovnika) 길 위를 그냥 걸으면서
바다를 멀찍이서 구경하는 것도 좋고,
만약 바다와 직접 대면하고 싶다면,
멀지 않은 곳에 단체 해변(Plaža Danče)도 있다.
요새는 관광객이 점점 많아지긴 하고 있지만,
주로 현지인들이 가는 해수욕장이란다.
버스터미널에서 구시가 가는 길에 있는
그루지 항구(Luka Gruž)도 풍경이 괜찮다.
19-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배 시기에는
해군기지였고,
지금은 두브로브니크로 들어오는
대형 선박들이 정박하는 중요 항구이다.
그 길에 있는 성 십자 성당(Crkva sv. Križa)은
15세기 르네상스 건축인데,
2차세계대전 중 크게 손상되어,
전후에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된 성당 같으면서도
또 별로 오래되지 않은 성당 같아 보이기도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는지,
그의 동상이 성당 한쪽에 세워져 있다.
이 성당 근처는 이런 성당 벽 같은
흰 돌벽 건물이 이어지는데,
그중에는 그루지 재래시장(Gruž Market)도 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신선한 생선을 살 수 있는
수산시장이자, 청과물시장으로,
새벽에 열어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단다.
채소, 과일, 생선,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재래시장이 훨씬 더 신선하기 때문에,
크로아티아인들은 시장에서 사는 걸 선호하는데,
그런 시장은 대부분 낮 2-3시면 문을 닫는다.
이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Konzum[콘줌]이라는 대형 마트도 있다.
그 그루지 항구에 서면
건너편으로 또 다른 붉은 지붕산이 보이는데,
Babin Kuk[바빈 쿠크]라는 동네다.
마침 숙소 주인 딸이 알려준 장소 중 하나가
거기에 있어서 버스 타고 거기도 가봤다.
바빈 쿠크 [Babin Kuk]은
크로아티아어로 "할머니 엉덩이"라는 의미인데,
이름은 좀 많이 이상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동네로,
두브로브니크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숙소 주인 딸이 표시해 준 데가
그 바빈 쿠크 중간 어디쯤이었고,
무슨 공원인가 숲이라고 했던 것 같아,
그냥 일단 구시가에서 바빈 쿠크 가는 버스를 타고,
사람들 많이 내리는 데서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버스에서 사람들 다 내리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길래,
너무 많이 왔구나 싶어
나도 서둘러 내렸다.
길에서 바다를 보니 동쪽으로 곶이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라파드(Lapad) 동네였다.
급한 것도 없고 해서,
버스가 온 길을 다시 걸어 되돌아갔다.
가다 보면 보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땅히 뭐가 눈에 보이진 않는다.
현지인들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다.
하긴 뭐라고 물어보겠는가?
"여기 근처에 좋은 데 있다던데 어딘가요?"라고?
버스가 갔던 길을 따라 계속 걷다가
바다로 내려가는 좁은 길과 찻길의 갈림길에서
난 그냥 찻길로 계속 갔는데,
그때 그 좁은 길로 내려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좁은 길 끝에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라는 이국적 이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긴 해변이 있다고 한다.
결국
현지인의 추천 장소인 공원인가 숲은 못 찾았는데,
그래도 그렇게 멀리 바다와 산을 보면서
걷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서 그루지 항구 건너편까지 갔다.
이 길은 폭이 좁고 바다랑 무척 가까워서
바다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중간에 있는 큰 건물은
관광 무역 대학(Fakultet za turizam i vanjsku trgovinu)이다.
바다 건너 그루지(Gruž) 동네도 보인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항구 1)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항구 2)
그렇게 바빈 쿠크 동네를 둘러보고 나니,
그 동쪽 동네 라파드(Lapad)는 어떤지 궁금해서
그 다음날은 거길 가봤다.
라파드는 바빈 쿠크와 구시가 사이에 있다.
이번엔 버스를 타지 않고
처음부터 그냥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바다가 나타나기까지,
주변엔 그냥 주택가와 상가밖에 없어서,
걷는 재미는 없다.
라파드는 1960-70년대가 되어서야 개발이 시작된
우리로 치면 신도시 지역이다.
그전에는 바닷가 근처에
상인이나 귀족들의 별장만 있는 변두리였단다.
별다른 풍경 없이
주택가와 상가를 좀 걷다 보면
그 길 끝에 라파드 만(Uvala Lapad, Lapad bay)과
팰러스 호텔(Hotel Palace)이 나타난다.
겨울인 데다가,
6시인데도 벌써 해가 져서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그래서 멀리까지 가진 않았는데,
이 호텔 주변으로 해안이 길게 펼쳐져 있다고 한다.
라파드 만 서쪽에는
전날 버스에서 내려서 바다를 바라봤던
그 언덕이 보인다.
알고 보니, 이렇게 다 연결되는 거였다.
(동영상: 두브로브니크 밤바다)
밤에 말고 밝을 때 한번 더 왔으면 좋겠는데,
그 다음날은 스플리트(Split)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빗발이 살짝 흩날리는 겨울 밤바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숙소 주인 딸이 지도에 직접 표시해 준 장소들은
구시가나 성벽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어도,
특별히 "숨은 명소"까진 아니었지만,
"현지인의 추천 장소"가
아무 여행객이나 흔하게 얻는 정보가 아니라서,
그걸 받은 내가 괜히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주로 만나는 현지인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사실 그냥 재화를 매개로 한 겉친절만 받게 되는데,
그렇게 별 거 아닌 얘기하며 수다도 떨고,
뭐 대단한 건 아니어도,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보고 나니,
그 호의 자체가 고맙기도 하고,
관광객 등골을 빼먹으려고 혈안이 된 것 같았던
깍쟁이 두브로브니크인들도 이제 좀 달라 보였다.
전반적으로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이
수도 자그레브나 스플리트 사람들보다
좀 더 시골 사람들 같고, 좀 더 친절하기도 하다.
그 현지인의 정보가 고마웠던 건
정보 자체도 나한테 필요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구시가와 그 주위를 둘러싼 성벽 너머로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지평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두브로브니크 카드 3일권의
6회 무료 시내버스 탑승으로
그렇게 구시가 밖을 돌아다녀봤지만,
그냥 하루 날 잡아서
30쿠나(약 5,400원) 짜리
24시간 무제한 티켓을 사서,
버스를 타고 내리며,
두브로브니크 구석구석 돌아다녀도 좋을 것 같다.
두브로브니크는 걸어 다니기엔 좀 많이 크지만,
시내버스로 여행하기엔 또 별로 크지 않은 도시라
어디에서건 버스로 10-20분이면
구시가까지는 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항상 버스 창 너머로는
산과 바다가 끊임없이 멋진 풍경을 제공한다.
두브로브니크 첫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그 현지인의 추천 말고,
나의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지평을 넓힌
또 다른 중요한 것이
바로 두브로브니크 카드였는데,
두브로브니크 여행 마지막 포스트가 될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 카드 때문에 한 번 가본
두브로브니크 근교 흔한 바닷가 마을을 둘러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