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 유산 코토르(Kotor) 구시가와 깊고 푸른 리아스식 해안
아드리아 해 연안에 위치한
몬테네그로 인기 관광지인 코토르는
15C부터 18C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였고,
이후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의
지배를 받았지만,
러시아와 프랑스는 매우 짧은 기간 점령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구시가를
자기 식으로 바꾸기보다는
주변 산에 군사요새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
그후 제1차, 제2차세계대전,
1990년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와
유고연방 사이에 벌어진 전쟁과 코소보전쟁에서도
큰 공격을 당하지 않고,
비교적 무사히 넘겼다.
따라서 2018년 현재 코토르 구시가는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형성된 그 모습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았고,
바로 그래서 2017년
"16-17세기 베네치아 방어시스템: 육지 - 서쪽 해안 (Venetian Works of Defence betwee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Stato da Terra – western Stato da Mar)"이
UNESCO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때,
코토르는 그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코토르 구시가는
"UNESCO 문화유산"이란 명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그냥 그 미적 가치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나는 구시가를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전
코토르 성벽부터 먼저 올랐는데,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어서 빨리 내려가서
저 예쁜 구시가를 직접 봐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성벽 계단에서 멀찌감치 서서 본
푸른 산, 푸른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와
보색대비를 이루는 빨강 지붕의 구시가가
나중에 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느낀 구시가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예고편"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
"본편"을 보면서는 약간 실망을 하긴 했지만,
뭐 그래도 가까이서 본
코토르 구시가 실물도 충분히 아름답다.
코토르 구시가는 이렇게 생겼는데,
코토르 지도는 다들 이렇게 산이 위로,
구시가와 바다가 아래로 가게 나와서,
지도의 왼쪽이 북쪽이다.
코토르 구시가엔
다양한 시대에 건축된 성당들,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저택들과 돌문, 좁은 길과 돌계단이
옛스러움과 독특한 개성을 한껏 내뿜고 있다.
하지만 코토르 구시가가
다른 유럽의 구시가에 비해 특별한 건,
UNESCO도 인정한 방어 시스템,
즉 도시 뒤쪽에 수직으로 솟아있을 뿐 아니라
삼각형의 코토르 구시가를
수평으로도 에워싸고 있는 기다란 성벽일 것이다.
구시가의 성벽은 위 지도에서
회색 선으로 빙 둘러 표시되어 있는데,
13번, 2번, 14번 문을 통해
구시가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성 요한 요새까지 가는 수직 성벽과 달리
이 수평 성벽은 성수기에도 입장이 무료다.
이 코토르 구시가를 둘러싼 수평 성벽은
성 요한 요새로 가는 수직 성벽과 마찬가지로
9세기에 설치가 시작되어,
거의 천년 동안 보완되고 변경되었다.
총길이는 4-5Km,
높이는 최고 20m,
너비 2-16m란다.
여긴 북문(Sjeverna vrata, The Northern Gate)
[지도 13번]이다.
북문은 16세기 오스만 터키에 거둔 승리를
기념하여 건설되었다.
북문 바깥엔 여느 유럽 중세 요새와 마찬가지로
일조의 수중 방어 시스템인 해자가 있는데,
인공 해자가 아니라,
스쿠르다(Skurda)강이 서쪽 바다로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 강에 비치는 주변 풍경도 근사하고,
강과 성벽, 동쪽의 산,
그리고 강과 바다 건너 서쪽의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어느 쪽을 봐도 모두 장관이다.
아래 사진 왼쪽은 북쪽 망루,
오른쪽은 구시가 건물과 구시가로 가는 통로다.
북쪽 성벽 안쪽 길은 폭이 꽤 넓고,
구시가의 건물들이
성벽에 매우 가까이 붙어 있다.
그 중 커다란 둥근 지붕을 빼꼼히 내밀고 있는
성 니콜라 성당(Crkva svetog Nikole, The Church of St. Nicholas) [지도 8번]은
1902년부터 1909년 사이 건축된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다.
그 옆에도 또다른 둥근 지붕이 보이는데,
이건 성 클라라 성당(Crkva svete Klare, Church of St. Clare)이다.
둥근 지붕 때문에 정교 성당인줄 알았는데,
14-18세기에 건설된
프란치스코 수도회 가톨릭 성당이다.
성 클라라 성당 서쪽엔 시립극장(Gradsko pozorište)[지도 9번 근처]이 있다.
이 극장은 19세기 초인 1810년
발칸반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가 프랑스 나폴레옹 통치 시절이라
나폴레옹 극장(Napoleonovo pozorište, Napoleon's Theatre)이라고도 불린단다.
크기는 작지만 르네상스 양식 건축답게,
디테일이 매우 정교하고 예쁘다.
시립극장 남쪽으로 붉은 지붕이 덮힌
좁고 긴 통로가 이어진다.
매우 좁아서 한 사람씩 걸을 수 있는,
1인용 보행로다.
그 좁은 길 끝에 성벽 정문 위 여러 깃발과,
그 뒤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인
성 마르코의 날개 달린 사자가 보인다.
구시가 서쪽에 위치한 정문(Glavna gradska vrata, The Main Tower Entrance)[지도 2번]은
바다와 구시가를 직접 연결하는 문이다.
문 자체는 1555년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세웠지만,
아마 유고슬라비아 시절 리모델링을 했는지,
매우 20세기적인 것들이 새겨 있다.
문 위에 쓰인 1944년 11월 21일이라는 날짜는
코토르가 나치 독일로부터 벗어난 날이고,
그 위에 라틴문자로 적힌 글귀는
20C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Tito)가 한 말로,
다음과 같은 의미다.
Tuđe Nećemo Svoje Ne Damo.
남의 것을 우린 원치 않고, 우리 것을 주지도 않겠다
정문 앞에는 대포가 두 대 있고,
그 대포가 가리키는 곳에
아름다운 푸른 바다가 보인다.
정문 바깥 남쪽 성벽 아래에는 재래 시장(Gradska pijaca, The town market)이 있다.
매우 흥미로운 걸 많이 판다던데,
난 너무 늦게 갔는지,
거의 다 문을 닫았다.
성 마르코의 날개 달린 사자가
벽에 새겨져 있는 걸 보니,
이 시장도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생겼나보다.
성벽 위에서 정문을 지나 남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이제 더 이상 지붕은 없는 대신,
통로는 좀 더 넓어지고,
동쪽으로 구시가 안쪽
오루지야 광장(Trg od oružja)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지금은 관광명소인 이 성벽이
원래 군사적 시설이었다는 걸 상기시키는
참호 혹은 망루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 멀리 남문과
오전에 올랐던 성 요한 산 위 수직 성벽이 보인다.
그 길의 끝에 있는 남문(Južna vrata, The Southern Gate)[지도 14번]은
몬테네그로 도시 부드바(Budva),
체티니에(Cetinje)로 나 있어,
예전엔 3개의 출입문 중 가장 중요한 문이었단다.
그래서인지, 13, 16, 18세기에 만들어진
3개의 입구로 겹겹이 쌓여 있다.
남문의 해자는 연못인 줄 알았는데,
구르니치(Gurdić) 강으로 바다와 연결된다.
남문 안쪽에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둥근 망루가 있는데,
난 처음에 여기가
성 요한 요새로 오르는 길인 줄 알았더니,
수직 성벽으로 가는 길이 있긴 한데 막혀 있고,
그냥 주변 풍경만 둘러볼 수 있었다.
이 망루 안쪽 문이 남문의 세 출입구 중
가운데 출입구였던 것 같다.
여긴 남문의 가장 바깥쪽 출입구.
이건 남쪽 망루 아래 공간인데,
두꺼운 돌로 된 어두운 통로 때문에
실질적으로 열려있지만 닫힌 공간 같고,
코토르 구시가를 둘러싼 성벽에서
가장 요새 느낌이 많이 나는 곳인 것 같다.
물론 작은 구멍으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 강물 해자가 너무 예뻐서,
그런 엄숙한 역사적 기능은 금새 잊고,
한참을 그 공간에
"자발적으로" 갇혀 서 있게 된다.
이제 남문을 통해 구시가 안으로 들어오면,
본격적인 코토르 구시가 구경이 시작된다.
코토르 구시가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은
성 트리폰 가톨릭 대성당(Katedrala Sv.Tripuna, The Cathedral of Saint Tryphon) [지도 4번]이다.
코토르의 수호성인인 성 트리폰은
아직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지 않았던 3C경
박해를 받아 순교한 그리스도교 성인이다.
현재 성당은 12세기(1166년)에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코토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인데,
그 이전부터 이 자리엔
그리스도교 성당이 있었다고 한다.
동방정교도가 약 70%를 차지하는 몬테네그로에
두 개 있는 가톨릭 대성당 중 하나로,
비록 약 3% 정도밖에 안되는
소수 가톨릭교도를 위한 종교 시설이지만,
몬테네그로의 대표 종교건축이라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
2013년에 건설된 포드고리차에 있는 예수부활 정교 대성당(The Cathedral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Saborni Hram Hristovog Vaskrsenja)에 건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성 트리폰 대성당 뒤엔
이렇게 멋스러운 둥근 벽이 있고,
뒷문에도 화려하면서,
디테일이 살아있는 장식이 있다.
구시가 북쪽엔 성 루카 성당(Crkva sv. Luke, Church of St. Luke) [지도 7번]이 있는데,
이 또한 12세기 말(1195년)에 건설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
원래는 가톨릭 성당으로 지어졌는데,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피해 코토르로 온
동방정교도들이 정교회 성당으로도 사용하면서,
현재는 가톨릭 제단과 동방정교회 제단이
모두 남아있다고 한다.
성 루카 성당 앞
성 루카 광장(Trg Sv. Luke) 건너편에는
구시가 주위 수평 성벽 돌 때 봤던
성 니콜라 성당(Crkva svetog Nikole, The Church of St. Nicholas) [지도 8번]가 서 있다.
정면엔 커다란 세르비아 정교회 깃발이 걸려있고,
그 아래엔 니콜라 성인이 그려져 있는데,
니콜라 성인 옆에는 고대교회슬라브어로
"기적을 창조하는 성 니콜라이"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문 양쪽 옆에는
역시나 고대교회슬라브어가 쓰여 있는데,
왼쪽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1902년 8월 18일 교회가 건립되다.
오른쪽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의 1909년 5월 17일 성당이 축성되다.
라고 쓰여있다.
이 성당은 1902년부터 1909년까지 지었다.
이건 성 니콜라 성당 서쪽에 있는
성 클라라 성당(Crkva svete Klare, Church of St. Clare)에 딸린
프란치스코 수녀원(Franciscan convent)이다.
코토르 구시가 동쪽엔 1221년에 건설된
성 마리아 성당(Crkva Marije Koleđate, St Mary's Collegiate Church)[지도 12번]이 있는데,
이 성당 뒤 광장에
수평 성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종탑(St. Francis Monastery Tower)[지도 14번 근처]은
13세기에 코토르에 세워진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흔적이다.
지금은 수도원 없이, 종 없는 종탑만 남아 있다.
특별한 관광지로 표시되지 않은
그냥 보통 골목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여긴 구시가 동쪽
성 트리폰 대성당 뒤의 골목.
이 골목의 커다란 건물엔 심상치 붉은 별과
붉은 글씨가 쓰인 판넬이 붙어 있는데
예전에 이 건물이 감옥이었음과,
1918년 혁명가들이
이곳에서 사망했음을 알리고 있다.
그 밖에 그냥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구시가 여기저기 숨어 있다.
구시가 정문 안에 있는
시계탑(Sat kula, Clock Tower)[지도 3번]도
17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건설된
구시가의 중요한 이정표로,
한눈에 예쁘다 싶은 건축물은 아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훑어 보면,
날개 달린 성 마르코의 사자와
다른 섬세한 고풍스러운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안내지도에 표시된 주요 관광지 따라서
구시가를 한번 돌고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만들어졌다는
요새를 올라갈까 했었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어서,
거기가 어딘지도 정확하게 모르겠는데다,
오전에 이미 성벽을 등반했으니,
이제는 다른 걸 보러 가는 게 낫겠다 싶어,
구시가를 벗어나 바닷쪽으로 걸었다.
(동영상: 건너편에서 본 구시가와 산)
그렇게 조금 걸으니,
이제 코토르는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 사는 흔한 동네가 된다.
아래 사진 같은 상업 광고판도 있었는데,
구두와 핸드백 사진 밑에 써진
"천국"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paradiso와
"12개월 할부 구매 (가능)"이란 뜻의
몬테네그로어를 읽으면서,
누군가에겐 이미 거의 천국처럼 보일
이런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이따위 하찮은 천국을 꿈꾸기도 하겠구나 싶어서
나도 몰래 괜히 피식 웃고,
그 천박하디 천박한 인간의 욕망이 만든
뒤틀린 천국의 괴이한 이미지도 기념으로 찍었다.
좀 더 걸으니,
바다에 접한 꽤 큰 시민 공원이 있고,
그 안에는 자유를 위해 산화한 용사 기념비(spomenik palim borcima za slobodu, Monument of Freedom to the fallen citizens)가 서 있다.
1941-1945년 2차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누군지 잘 모르겠는
코토르 위인들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그렇게 걷다가
코토르 북쪽 도브로타(Dobrota)에 가게 되었다.
Dobr-[도브르]는 슬라브어에서
"좋다"라는 의미를 갖는 어근이라,
이름 자체가 "좋은 동네"라는 뜻이라 신기했다.
처음엔 거의 러시아어만 들리는 해수욕장과
해수욕하는 러시아인들만 보이길래,
그냥 휴양지이기만 한 줄 알았다.
"러시아" 해변을 지나니,
페라스트(Perast) 지역, 성 요한 섬(Ostrvo Sveti Đorđe, islet of St. George)과 성모 바위섬(Our Lady of the Rocks, Gospa od Škrpjela)에 가는 해상투어를 하는 여행사가 몇 개 있는데,
그걸 본 순간,
코토르에서 해야 할 매우 중요한 경험을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가다보니 일반 주택이 많이 보인다.
알고 보니, 도브로타는
코토르 구시가에서 가장 가까운 주택가다.
좀 걷다보니, 해양생물학연구소(Завод за биологију мора, Institute of Marine Biology) 건물 서쪽의 아주 작은 성 엘리야 성당(Crkva Sv. Ilije, Church of St. Elijah)도 보인다.
12세기에 생긴 성당이라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해양생물학연구소 입구는 잠겨있고,
거기까지 가는 출입구를 못 찾아서
그냥 이렇게 멀리서만 봤다.
그렇게 계속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면서 걷다가,
18세기에 세워진 가톨릭 성당 성 유스타키우스 성당(Crkva Svetog Eustahija, Saint Eustace Church)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 성당까지 천천히 걸었더니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올 때는 30-40분 정도 걸렸나보다.
처음에 구시가에 가까운 해변에서는
바다에서도 길에서도 러시아어만 들리는 것이,
구시가보다 도브로타에
러시아인이 더 많다는 인상이었다.
당시엔 드디어 내가
러시아인들이 부동산을 싹쓸이했다는
그 몬테네그로에 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도브로타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겨우 14명,
도브로타 전체 인구의 0.17%에 불과하다.
물론 그 14명의 거주자가 숫자로는 소수라도,
경제력으로는 약자가 아니라,
부동산을 대량 매입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해변의 러시아어 구사자들이
다 도브로타 거주자가 아닌 건 분명하다.
대부분 관광객들이었던 거다.
관광객들이든, 부동산 투자자들이든
러시아인들이 왜 그렇게 유독
몬테네그로를 좋아하나 했는데,
코토르에 가보니,
특히 도브로타에 가보니,
왜인지 알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해변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어느 누가
해변과 바다를 안 좋아하겠냐마는,
그냥 바다말고,
안에서 수영하고, 바깥에서 선탠할 수 있는
그런 바다를 좋아해서,
내가 아는 어떤 러시아 선생님은
4-5월에 부산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고 했다.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인기 관광지도
이집트, 터키, 그리스,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같은
따뜻한 바다가 있는 곳이고,
예전에 러시아인들이 가는 패키지로
러시아에서 이집트랑 터키에 간 적이 있었는데,
러시아 관광객을 태운 전세기는
이집트 카이로나 터키 이스탐불에 착륙하지 않고,
러시아 가기 전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후루가다, 샤름 엘 쉐이흐 같은 휴양지에
승객을 내려준다.
(그 때 갔던 터키 해변도시는
이름도 기억 안난다)
카이로나 이스탐불에 갈려면,
그 휴양지에서 따로 비행기나 버스를 타야 하고,
보통 러시아인들은
그렇게 수영하고 해수욕하고 쇼핑하면서
1-2주를 쉬다 온다.
발품 팔아 바지런히 주요 명소 구경하며,
사진 찍고, 기억하고, 감동하고 하는
문화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나랑은
정말 안 맞는 여행 패턴이었다.
러시아는 땅은 매우 넓지만,
바다는 그만큼 넓지 않은데다가,
따뜻한 바다는 더 흔치 않으니,
따뜻한 기후와 바다 그리고 해변은
러시아인들이 꿈꾸는 Paradiso인 거다.
그 중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는
같은 "슬라브어족"에 속하는,
러시아어와 비슷한 언어를 쓰고,
그 중 몬테네그로는
문자도 러시아처럼 "키릴문자"를 써서,
러시아인이 몬테네그로어를 안 배워도,
읽으면 어느정도 이해하는 데다가,
가장 주된 종교도 "동방정교"로
주 종교도 러시아랑 같다.
또한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정치적으로도 러시아와 사이가 좋은 편이고,
30일간 무비자로 방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따뜻한 해변을 가진 국가 중에서도
몬테네그로가 젤 가기 편한 거고,
몬테네그로 부동산의 80%가
러시아인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러시아인들이 몬테네그로를 많이 가서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구시가에서 좀 더 먼,
해수욕하기 좀 덜 좋은 해변이나
그냥 깊은 바다만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몬테네그로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즉, 내가 크로아티아에서 배운
그 언어로 말하는 현지인들이 더 많아진다.
그리고 해수욕이 어려운 푸른 바다 근처에선
자연도 문화처럼 접근하며,
멀리서 구경하고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
문화적 관광객인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리아스식 해안의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멋질 뿐 아니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상쾌하고,
문명의 소음도 확실히 줄어들어,
그냥 그렇게 오감으로 느껴지는,
가만히 서 있는 내게 그렇게 슬그머니 다가오는
자연의 기분 좋은 움직임이 정말 좋다.
코토르에 온 후 두번째로
'코토르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또 걸었다 했다.
(동영상: 코토르 도브로타 앞 바다)
그렇게 다시 구시가 쪽으로 돌아오니,
이제 해가 거의 다 바다 뒤로 사라졌고,
구시가의 야경을 둘러보고,
어두운 밤 코토르를 떠났다.
코토르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건,
코토르 구시가 뒤에 있는
수직 성벽을 올랐던 거다.
그런 코토르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코토르 가자마자, 너무 일찍 겪어서,
UNESCO 문화유산이자 매우 예쁜 구시가에도
별로 감동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바닷가를 걸으면서,
다시 코토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든, 도시든,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거다.
그리고 혹시 다음에 또 오게 되면,
도브로타 지역 북쪽에 있는
페라스트(Perast) 지역,
성 요한 섬(Ostrvo Sveti Đorđe, islet of St. George)과 성모 바위섬(Our Lady of the Rocks, Gospa od Škrpjela)도 보고,
성 요한 요새를 오르는 또 다른 방법인
코토르 사다리(Ladder of Kotor, Merdevine Kotora)도 꼭 한번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언제가 될 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나의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지 중 마지막 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