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리워진, 비가 추적이는 밴쿠버에서 보내는 겨울
'캐나다'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늘 '추위'가 함께 따라다닌다. 밴쿠버의 유명한 커피 로스터즈인 "49th Parallel (북위 49도)"가 말해주듯, 북쪽에 위치한 탓에 봄은 짧고 겨울은 길며, 빙하로 덮여있는 설산 사진들로 대표되는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상으로 봤을 땐 38선 아래로 위치한 한국이 더 따뜻해야 할 것 같지만, 겨울 추위로 따지자면 한국이 캐나다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특히 철원의 마이너스 26도라는 어마 무시한 온도, 서울에 내린 폭설 및 비교적으로 따뜻한 남쪽 도시 부산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체감은 더욱더 피부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태평양의 망망대해를 약 아홉 시간 정도를 비행해 넘어오면 만날 수 있는 밴쿠버는 '서쪽 연안(West Coast)'에 위치해 있다. 그렇게 9시간을 비행하고 와서,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다섯 시간 정도 더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나 몬트리올에 도착하면, 서울과 비슷한 날씨를 만나게 된다. 정말 "캐내디언스러운" 삶을 경험하려면 캐나다 동쪽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 년에 6개월 정도를 겨울나기를 하며 보낼 생각을 하면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밴쿠버의 겨울은 아주 마일드한 날씨의 연속이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평일 기온은 약 4도에서 7도 사이로, 간간히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예년보다는 적어 귀여운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왠지 추울 것 같아 한국 쇼핑몰에서 몸소 장만해 놓은 발열 내복을 입을 일이 없어 개인적으로는 약간 아쉽기도 하다. 몸을 포근히 감싸주는 따뜻한 스웨터와 하의 밑에 레깅스를 겹쳐 입고, 비를 막아주는 패딩만 하나 걸쳐줘도 외출 시 큰 무리가 없다. 지난 주말에는 두바이 엑스포의 '캐나다 파빌리온(Canada Pavilions)'에서 전시될 비디오에 캐스팅이 되어서 촬영을 다녀왔는데, 얇은 오간자 블라우스 위에 오트밀 색의 스웨터를 레이어드하고, 통이 넓은 바지 아래 기모 레깅스를 신은 후 그 위에 울 코트까지 겹쳐 입었더니, 집에 오는 동안 땀으로 가득 차 사우나에서 갇힌 듯한 찜통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평균적으로 따뜻한 겨울 날씨이다 보니, 밴쿠버에는 동부 쪽에 위치한 도시들에 비해 눈이 오는 일이 현저히 적다. 그래서인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한번 눈이 오기라도 하면, 온 도시 전체가 마비가 되기도 하는 사태가 벌어져 추운 캐나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리는 일도 생기곤 한다. 밴쿠버의 지하철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스카이트레인'이나, 전깃줄로 연결된 버스들이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리는 탓이다. 재작년에 눈이 엄청 왔을 때는 밴쿠버의 교통 시스템을 관할하는 '트랜스링크(Translink)'에서 "가급적이면 밖에 나가지를 말라"며 권고하기도 했다.
저번 주는 밴쿠버에 폭설이 있을 거라는 소식에 사람들이 분주히 길가에 제설용 소금을 뿌려놓았는데, 마치 김 빠진 맥주처럼 눈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어 많은 이들이 허탈함을 달래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눈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많은 사람들이 첫눈을 맞이할 때 설렘과 가슴 벅찬 마음을 가지고 소셜미디어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촬영해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가도, 눈이 쌓여 교통 체증이 반복되면 언제 눈이 그만 내리냐고 불평하는 볼멘소리들을 터져 나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에 오는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벅차오르는 건 아이같은 동심이 아직 꺼져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만든 커피숍 창가에 앉아,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것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하게 차오른다. 갑자기 눈이 그리워진 비가 추적이는 밴쿠버에서, 지난 2018년 함박눈이 왔을 때 찍어 둔 사진을 보면서라도 대리 만족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Written & Photographed by BEYU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