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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Aug 22. 2019

두 개의 산책로

르완다 12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산책로가 둘 있다. 하나는 돌로 잘 포장된 평평한 길로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가와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후 3시 반이 되면 학생들을 픽업하려는 자가용이 학교 앞에 잔뜩 대기한다. 말끔한 차림의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며 각자의 차로 사라진다.

또 하나는 집 아래 흙길을 따라 내려가 건너편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다. 일반 주택가를 지나면 우리 식으로 달동네 같은 마을이 나온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엔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르완다 정부는 마을마다 한 곳씩 수도를 설치했고 아침저녁으로 이곳은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장소다. 어른들은 큰 물통을, 아이들은 작은 물통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빨래도 수돗가 근처에서 한다.

마을에서 내게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이들은 언제나 꼬맹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를 ‘무중구(외국인)’라 부르며 구경한다. 내가 인사를 하며 관심을 보이면 나를 따라오던 몇몇이 몇 십 명으로 불어나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한 아이의 손엔 흙으로 만든 권총이 들려 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없어 흙으로 이것저것 만들며 논다.




어떤 아이는 구경으로 만족 못하고 꼭 다가와 악수를 한다. 때가 꼬질꼬질 묻은 자그마한 손을 잡으면 생명이 지닌 따스한 온기가 전해온다. 더러 ‘기브 미 머니’라 하는 아이도 있다. 어디서 그 말을 배웠을까. 하지만 아이는 내가 말없이 웃으면 더는 조르지 않는다. 돈 달라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아이는 못 봤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아는 영어가 그냥 그 말인가 싶기도 하다.

한 번은 ‘비스켓’을 조르며 포기하지 않고 내 양손에 한 명씩 달라붙어 계속 같이 걷던 꼬마 둘이 있었다. 마침 하교하던 한 무리의 중학생들과 마주쳤는데 그 중학생들은 꼬맹이들을 보더니 정색을 하고는 내게 자기를 동네형이라 소개하며 그 녀석들을 번쩍 들어 내게서 떼어놓았다. 꼬마들은 금세 순한 양이 되어 형들의 뒤를 따라갔다.

저녁 때면 집집마다 밥 짓는 모습이 보인다. 숯으로 집 한구석에서 음식을 한다. 그래서 마을엔 숯을 파는 가게도 있다. 집 한켠으로는 오수가 흐르는 도랑이 보인다. 오폐수가 이렇게 밖으로 드러나면 우기 때 질병 발생의 위험이 있다. 여기도 국가재정이 허락하면 제일 먼저 하수도를 배설하는 작업부터 할 것이다.

최근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회의하는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 줌으로 찍었는데도 내가 사진 찍는 걸 봤는지 중년의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자기를 마을 리더라 소개하며 사진을 지워줄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공적 모임은 여기서 사진을 못 찍게 한다. 사진을 지우고 마을 대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에볼라 문제로 회의 중이라 했다(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국경에서 에볼라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그 며칠 전에 들었다). 마을회의는 매주 한 번 열린다 했다. 전체 마을 주민은 사천 명 정도란다.

마을 끄트머리에 이르면 그때까지 나를 따라왔던 꼬마들은 더는 따라오지 않고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마을을 다 빠져나오면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 둘 사이엔 이제 도로공사가 시작되었다. 언젠가 재개발로 사라질 수도 있는 마을이다 싶다.

여기 머문 7개월 동안 나는 첫 번째 길로 산책을 많이 갔다. 걷기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막상 돌아갈 때가 가까우니 흙먼지 폴폴 날리지만 지역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두 번째 길을 좀 더 많이 걸을껄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든다. 언제나 반갑게 쫓아와 내 두 손을 잡던 꼬맹이들, 다정하게 미소 짓던 아기엄마들, 무뚝뚝하게 쳐다보던 아저씨들, ‘야마꾸루’라고 인사하면 ‘니메자’라고 반갑게 응수하던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2019 릴라


마을 이장님껜 죄송하지만 아이폰엔 삭제 사진 복구 기능이 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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