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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May 24. 2021

독일에선 샌들에 양말을 신어보세요

나의 독일은 세모모양 <3편>

<3편>
5. 독일 사람들은 여름이면 샌달에 양말을 신는다?
6. 독일은 인종차별이 없다?

여름휴가 피크시즌에 이탈리아에 가서 바글바글한 사람들 가운데 독일인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샌들에 등산양말을 신고 촌스러운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을 손으로 가리키면 그게 바로 독일인이라고. 독일인들의 어수룩한 패션센스를 놀리는 말인데, 이 역시 앞에서 던졌던 많은 질문들 처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5. 독일 사람들은 여름이면 샌달에 양말을 신는다?

독일은 지역마다 특색이 강한 나라라서 뭉뚱그려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사람들이 대체로 패션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지,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옷차림일 리가 없다. 여름을 빼고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10명 중에 8명이 바람막이에 청바지, 운동화에 큰 백팩을 매고 다닌다. 


서울에 살았던 나는 사람 많은 곳을 갈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 그대로 고데기부터 구두까지 꾸미고 공들여서 화장을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 한채로 외출을 한 날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주눅이 들었는데 독일에 와서부터는 어딜 나가든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 정말 편하다. 어차피 모두가 고만고만한 바람막이 차림이기 때문. 한국에서부터 캐리어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수십개의 화장품은 전부 버린 지 오래다. 

딱히 좋은 옷 입을 생각조차 안 드는 요즘 날씨. 패션은 날씨와도 관련이 있지 싶다.

하지만 뮌헨은 좀 다르다. 나에게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뮌헨을 갈 기회가 생겼는데, 온갖 아름다운 건물과 상점에 눈을 빼앗겨 홀린듯이 걸어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혼자만 계절에도 맞지 않는 추레한 스웨터 차림으로 시내를 서성이고 있었다. 퇴근하고 필라테스만 할 것 같은 여자들이 멋진 오피스 룩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곳, 깔끔한 세미 정장 차림에 수염까지 완벽히 정리한 남자들이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도시가 바로 뮌헨이다. 


하지만 뮌헨같은 도시는 예외일 뿐,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수수하고 편한 옷들을 자주 입는 편. 그리고 여름에는 모두가 버켄스탁을 신는다. 우리집에도 버켄스탁이 종류 별로 4개나 있다. 그리고 나는 슈퍼마켓에 갈 때 (가끔)버켄스탁 슬리퍼에 양말을 신는다. 굳이 집에서 신고 있던 양말을 벗는 것도 귀찮고 아직은 바람이 차기 때문에 슬리퍼에 양말을 신어야 발 온도가 딱 맞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편하다. 나조차도 내 차림새에 신경을 안 쓰고 아무렇게나 외출하니 이렇게 편할 수가.


6. 독일은 인종차별이 없다?

인종차별은 복합적인 문제이고, 백인을 향한 차별엔 동경이 섞여있는 반면 아시안이나 흑인 등 소수인종을 향한 차별엔 경멸이 포함되기에 단편적인 글로 인종차별에 대한 내 생각을 모두 적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이미 많이 논의된 아시안 혐오범죄(anti-Asian  racism, xenophobia, and violence) 대신에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독일에 온 첫 해, 해외 거주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 순진했던 나는 `독일인들은 학교에서부터 홀로코스트를 철저하게 배우며 인종차별을 경계한다`는 말을 믿었다. 물론 독일 학교에서 과거 어두운 역사를 중요하게 가르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게 인종차별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인종차별, 혹은 차별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건 사람들의 보편적인 성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고 점검하면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라도 편견 없이 대하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인종차별자가 되고 만다. 아시안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며 욕을 하고, 흑인을 니그로라고 부르는 것만이 인종차별은 아니다.


독일에 막 도착한 한국인들이 집을 찾으면서 동네를 평가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치안이 나쁘다. 이건 곧 그 지역에 터키계, 아랍계 이민자나 난민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까만 애들이 많은 동네는 살기 나쁘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 인종 집단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건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이민자가 많이 사는 곳에선 실제로 범죄가 많이 일어나기에 논리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외에 나왔을 때 '너는 한국에서 왔으니까 중국어 할 줄 알지? 어차피 다 똑같은 글자잖아'라는 말을 들어도 화내선 안 된다)


독일에서 어학원을 다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아저씨가 지하철 역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며 열을 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분명 외국인들이 훔쳐갔을 거야`라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도 외국인이면서 대체 어떤 외국인을 뜻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답을 알고 있으므로 묻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의 문제는, 사람을 개인으로 보는 대신 그룹으로 뭉뚱그려 버린다는 사실이다. 만약 독일인이 자전거를 훔치다가 잡혔다고 생각해보자. 보통은 그 사람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끝난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 온 난민이 자전거를 훔치다가 잡히면? 역시 난민은 교육 수준이 낮아 믿을 수 없고 범죄율이 높다며 갑자기 한 사람의 잘못이 난민 전체의 문제로 번진다. 


유럽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한국 여자가 조용하고 친절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해보자. 모두가 `역시 동양 여자들은 모두 내성적이고 얌전하다`고 아는 체를 하며 개인을 스테레오 타입 안에 구겨넣는다. 만약 독일 여자가 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그냥 저 사람은 차분하고 착하구나 생각하고 넘어간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독일 빵집에서 파는 <김치 바게트 샌드위치> 김치에 오믈렛, 버섯이 들어가있다. 직원도 손님도 모두 독일인인데 김치 바게트가 있다니 신기했다.

여러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 수록 편견은 쉽게 무너져내리고, 사람을 인종으로 퉁쳐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국제적인 도시일수록 크고작은 인종차별을 겪을 위험이 적은 건 당연하다.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일테니. 


그래서 마침내 질문에 관한 답을 하자면, 독일에도 세상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이 있다. 그렇지만 어떤 도시에서 얼마나 열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지에 따라 이를 느끼기도 하고, 전혀 못 느끼며 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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