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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Sep 12. 2021

나의 다이어트 강박과 식이장애 - <전개>

이직을 하고서 처음에는 어색함과 긴장, 설렘이 섞여 하루종일 배도 고프지 않았다. 회사에 조금씩 적응을 하다보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짜증과 화가 점차 쌓여갔다. 마침내 한계점을 넘어서자 오래된 버릇이 튀어나왔다. 음식으로 스트레스 풀기. 


나는 사무실 서랍에 온갖 고칼로리 간식을 사두고 쉴새 없이 먹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단 10분도 입을 쉬지 않았다. 먹을 게 없다면 껌이라도 씹어야 했다. 옷이 안 맞을 뿐 아니라 거울로 봐도 체중이 확 늘어난 게 보여서 독일 생활 중 처음으로 체중계를 주문했다. 이게 사태를 더 악화시킬 줄은 모른 채.

지난 달 자전거 여행 중에 만난 야경

체중계 위에 올라서니 인생 최고 몸무게를 이미 갱신한 상태였다. 갑자기 다급해진 나는 다음날부터 연예인 다이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1200칼로리를 먹으며 일주일을 버티는 다이어트가 눈에 확 들어왔다. 고민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오밤중에 계란 10개를 삶아 냉장고에 넣어두며 원래 몸무게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계산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습관처럼 체중을 쟀고 살이 조금이라도 빠져야만 안심이 됐다. 초절식 다이어트는 숫자 낮추는 데에는 최고다. 하지만 그만큼 후폭풍도 크다.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고 해야할까. 극단적으로 음식 양을 줄이는 다이어트는 한 손에 고무줄을 잡은 채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기는 것과 똑같다. 줄을 놓쳐버리면 고통이 무척 크다. 언제든 줄이 끊어질 것 같다는 긴장감은 덤.

마인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던 어느 날

급하게 시작한 다이어트는, 내가 20대 때 수십 번 반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폭식으로 마무리 됐다. 결국 살은 더 쪘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음식에 대한 집착까지 불러왔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낀 건 사무실에서 몽쉘 한 박스를 10분만에 비우고 '토하면 살이 안 찔까?' 생각한 날이었다. 


그리고 식이장애를 없애기 위해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체중 재지 않기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작은 요인에도 몸무게가 바뀔 수 있다. 특히 여자들은 호르몬에 따라 일주일 새 몇 kg가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전 날 과식을 했거나 탄수화물을 많이 먹었다면 다음 날 아침에 몸무게가 확 늘어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게 `살이 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이틀만 평소처럼 먹어도 몸무게는 다시 돌아온다. 

그렇지만 강박적으로 몸무게를 재다 보면 하루만 몸무게가 늘어도 우울하고 나도 모르게 음식을 제한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폭식처럼 더 큰 후폭풍을 불러온다. 

몸무게를 주기적으로 재지 않으면 살이 찌게 된다고? 그럼 그냥 살 찌면 된다. 몸은 내 생활습관과 식습관의 결과물이다. 지금의 일상에 가장 최적화 된 몸이 이거구나 받아들이면 그만.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살이 찌고 있다면 체중계를 살 일이 아니라 생활 습관을 바꾸고 스트레스 관리를 효과적으로 해야한다. 그러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진다.


먹고싶은 음식은 제한 없이 다 먹기

다이어트를 하다보면 음식 종류를 제한하기 마련이다. 밀가루 끊기, 설탕 줄이기, 가공식품 먹지 않기 등등. 우리가 입력값을 넣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라면 좋으련만, 사람은 본래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싶어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즉각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면 더 먹고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평소보다 살이 찐 상태라고 하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어야 한다. 대신, 배가 부를 때 멈추면 문제 없다. 배가 부르지도 않은데 스스로를 속여가며 밥 숟가락을 놓는 것 말고. 충분히 먹은 상태에서 만족스럽게 멈추면 위에도 그리고 뇌에도 즐거운 식사가 된다. 굳이 음식을 제한하지 않으면 폭식할 만큼 비정상적인 식욕이 생기지도 않는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인 바디프로필을 보면서 괜히 걱정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극단적인 식단은 오히려 음식에 대한 집착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프로 선수도 아닌 일반인들이 급작스레 생겨난 식욕을 어떻게 통제할지 의문스러울 뿐. 게다가 고칼로리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몸이 예전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죄책감을 감당해야 하는데,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를 타야만 보이는 풍경들이 있다
몸무게보다 몸의 기능에 집중하기

나는 운동을 할 때 칼로리 소비, 살 빼기의 목적이 아니라 내 몸의 기능을 향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저번 달보다 더 빨리 뛸 수 있고, 자전거로 더 먼 곳을 갈 수 있고, 작년보다 더 무거운 아령을 힘들이지 않고 드는 것. 

체중계는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만 내 몸에 들인 노력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꾸준히 운동하면 그만큼 체력이 늘어나고 근육이 붙는다. 

내 몸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다보면 몸무게에 집착하는 게 어딘지 쓸 데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 몸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엔진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통달한 사람처럼 글을 썼지만, 가끔씩 배가 부른데도 무언가 더 먹고싶거나 케이크를 먹은 게 신경쓰여 굳이 운동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번 생긴 음식 강박은 정말로 떨쳐내기가 힘들다. 건강하게 적당히 먹고 힘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 끊임 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는 결론이 없다.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야 할 노력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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