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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May 07. 2020

잘 사는 법 궁리하기: 1 - 자전거 잘 타기

나는 독일에 온 지 두 달 째에 플리마켓에서 첫 자전거를 샀다. 그것도 단 돈 35유로에! 한국 돈으로 하면 47,000원 쯤 된다.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을 잘 공략하면 오래됐지만 상태가 꽤 좋은 자전거를 거의 공짜에 얻어올 수 있다는 사실. 

나의 35유로짜리 첫 자전거. 자물쇠 잠그는 걸 잊었다가 안타깝게도 도둑맞았다. 어딘가의 플리마켓에서 본다면 알려주시기를..

독일 운전자들은 보행자와 자전거를 배려하는 편이라 위협이나 스트레스 없이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도로로 나가는 것도 겁낼 필요 없다. 많은 자동차 도로가 오른쪽 한 켠에 자전거 도로를 함께 마련해두고 있기 때문. 바닥에 자전거 마크가 그려져 있다면 자동차와 함께 달리며 속도 경쟁을 해보자(?). 이 뿐 아니라 자전거 전용 도로가 도시마다 연결되어 있어 자전거와 몸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원래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는데 독일에 와서 본격적으로 맛을 들였고, 레이싱바이크를 사면서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자전거로 달려본 최장 거리는 80km다. 서울에서 천안을 자전거로 간 셈이다. 이 정도 거리를 달릴 때 한 시간에 25km~30km 속도로 달린다. 처음에는 10km를 가는데도 30분 넘게 걸렸는데, 놀라운 발전. 

자전거 위에서 1

누군가 내게 자전거를 잘 타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보더라.  우선 '잘'타는 것의 의미에 따라 고려할 요소들이 달라진다. 두 손 놓고 타기, 사고 없이, 혹은 넘어지지 않고 우아하게 타기 등등 자전거를 잘 타는 것의 정의는 모두에게 다르겠지. 나는 '몸이 덜 고생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자전거 잘 타는 법이라고 가정하고 이 두 가지에 관한 의견을 나눠보려고 한다.


자전거를 조금만 타도 허벅지와 무릎이 뻐근하다면 키에 비해 안장이 너무 낮은 탓이다. 근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은 틀렸다. 안장 높이 때문이다! 안장에 앉은 채로 땅에 발이 완전히 닿는다면(두발 자전거지만 마음만은 네발 자전거라 매우 안심되는 상태) 다리가 아팠을 확률이 높다. 안장이 너무 낮으면 골반과 페달 사이의 거리가 짧아서 무릎을 계속 구부린 채 패달을 밟아야 한다. 다리가 한 번도 쭉 펴질 수 없는 것. 이 피로감이 잘 상상가지 않는다면 비행기 창가 좌석에 앉아 어떻게든 빈 공간에 다리를 뻗으려고 용 쓰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 굽혀진 다리로 자전거를 탄다고 상상해보자. 갑자기 멀쩡하던 내 다리가 저려오는 듯 하다.

자전거 위에서 2

이상적인 안장 높이는 앉은 상태에서 발 끝으로 겨우 땅이 닿는 정도다. 이러면 페달을 밟을 때마다 다리가 쭉쭉 펴지니 피로감이 기적적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높이로 자전거를 타려면 출발하고 내릴 때 페달 한 쪽에 의지해 엉덩이를 안장에 사뿐히 올리고 내리는 스킬을 익혀야만 한다. 게다가 발이 땅에 닿지 않으니 위기 상황에(앞에 강아지가 튀어나오거나, 코너를 돌다 미끄러지거나 등등) 재빨리 균형을 잡지 않으면 바로 넘어진다. 나의 경우 자전거를 산 첫 해에 만든 흉터들이 아직도 없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폼에 맞고 틀린 건 없다. 나한테 편안한 자세가 제일 정확한 자세다.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가 아팠던 이유가 궁금했던 사람은 안장을 높여 레벨업에 도전해봐도 좋겠지만, 괜히 좋아하던 자전거가 무서워질 것 같다면 지금처럼 발이 땅에 완전히 닿는 높이에서 타도 괜찮다. 결국은 자전거도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작은 취미 중 하나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으쓱이며 "안장 높이가 잘못됐..."이라며 말을 꺼낼 때 당당히 답해봅시다. 나한테 더 편한 방법으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일부러 안장을 높이지 않은 거라고.


안장을 높여 자전거를 타보려는 사람에겐 여러 번의 넘어짐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우리가 두발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그랬듯이. 물론 연습만이 그 흔들림을 익숙함으로 바꾼다.


독일의 자전거도로 안내판. 지도 없이도 표시를 따라 가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몸을 덜 고생시키면서 자전거 탈 방법을 각자 생각해보았다면 이번엔 빠르게 달리는 법을 고민할 차례다. 이 문장을 보고 비싼 자전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면 땡, 틀렸다. 자전거로 빨리 달리려면 두 가지가 근육이 필요하다. 허벅지 근육과 마음의 근육. 


똑같은 따릉이를 빌려 타도 내가 요만큼 갈 때 누구는 저만치 간다. 자전거의 문제인가 싶어 바꿔봐도 소용 없다. 허벅지 힘의 차이기 때문. 탄탄한 근육으로 무장한 다리를 가진 사람은 더 강한 힘으로, 더 빨리 페달을 돌릴 수 있다. 그러니 우선은 강한 다리를 만드는 게 먼저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다리를 만드는 데 자전거 타기가 도움이 된다)


그래서 허벅지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마음의 근육은 무슨 뜻이냐고? 최고 속도를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몸을 채찍질하는 지구력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멈추고 싶을 때 느리게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끈기. 시속 30km로 달리다가 힘들다고 멈춰서 쉬는 것보다 15km로 달려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사람이 결국 더 빠르기 때문이다. 간단히 다시 말하면,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는 사람이 결국엔 제일 빨리 달린다.


독일에는 자동차도 사람도 하나 없이 직선으로 쭉 뻗은 자전거도로가 꽤 많다. 한계까지 페달을 밟아보고 싶은 욕망을 드글드글 자극하는 곳. 그런데 패기있게 달리다 보면 문제는 터질 것 같은 다리가 아니라, 그만 멈추고 싶은 마음인 때가 많다. '굳이 왜 몸 힘들게 하지?'싶은 단순한 욕구인데 어떤 땐 여기에 못 이겨 속도를 늦춰버리곤 한다. 속도를 완전히 줄이고 나서야 더 달릴 수 있는 힘이 남았다는 걸 알아채게 되지만, 이미 리듬이 깨진 뒤라서 다시 속도를 붙이기가 쉽지 않다.


자전거 위에서 3

꾸준한 운동으로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강하게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그만 멈추고 싶을 때 멀리 보이는 건물이나 큰 나무 같은 걸 목표로 골라서'우선 저기까지만 최고 속도로 달려보자'고 마음의 손으로 내 엉덩이를 두드린다. 그리고 목표를 지나쳤는데도 힘이 남아있으면 또 다음 목표를 잡는다. 몸이 정말로 지쳐 폐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반복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는 거다. 듣는 음악에 집중하거나, 집에 돌아가 먹을 저녁 메뉴를 상상한다거나, 월요일에 출근해서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뭐가 됐든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면 OK. 


몸이 힘들 때 제일 피해야 할 것이 '생각하기'다. '이걸 왜 하고 있지?' , '멈출까?' 등등 힘든 상황에 집중하는 생각은 몸과 마음 모두를 지치게 한다. 힘들 때일 수록 주변을 보고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거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단,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아주 천천히라도 계속 페달을 밟는 게 중요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마음이 단련되면 일상생활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해진 게 느껴진다. 나의 경우 코로나로 집에 갇혀있어야 하는 상황, 락다운으로 졸지에 실직자가 된 요즘에 그간 단련해둔 마음의 근육을 유용히 쓰고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들. 봄날의 평범한 풍경.

그런데 한창 페달을 밟다가도 갑자기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간 얼마나 빨리 달려왔든 상관 없이, 급히 서둘러야 하는 상황인 것도 상관 없이 무조건 멈춰서고야 마는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색깔을 다 가진 듯 아름답게 빛나는 노을을 볼 때, 형광색으로 빛나는 유채꽃밭을 만날 때, 요즘은 어디선가 문득 라일락 향기가 나면 무조건 자전거를 멈춰세운다. 곧 아카시아 꽃 향기 때문에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 코를 킁킁거리며 서 있게 되겠지.


좋아하는 풍경과 봄날의 냄새 아래 정신 놓고 서있다가 자전거에 올라 다시 출발하는 그 순간이 어찌나 행복한지 모른다. 온 몸이 생기로 꽉 찬 느낌.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 듯 상쾌한 기분이 든다. 사실은 자전거를 잘 타는 법 같은 것이 빛나는 계절을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할 리 없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나에게 맞는 안장 높이를 고민하고, 허벅지와 마음의 근육을 키우며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될 거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이 결국 인생을 더 꼼꼼하게 즐기는 법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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