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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May 28. 2018

28. 저 하늘 어디까지가 나의 것일까?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거꾸로 된 주경야독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해 보겠다고 3학년 겨울 방학부터 오전 7시에 도서관에 앉기로 맘을 다졌습니다. 아침은 삼각 김밥으로 때웠습니다. 집 앞 편의점은 650원, 학교 편의점은 700원이어서 집 앞에서 삼각 김밥을 사서 걸어가는 길에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얼어서 굳어버린 손으로 삼각 김밥을 뜯던 저는 그걸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차비를 아낀다는 핑계로 타지 못한 버스가 매서운 찬바람을 내며 지나가는데, ‘한심하다’는 생각도 같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저는 쇄빙선이 빙하를 가르듯이 힘겹게 무릎을 굽혀 앉았습니다. 종이로 얼굴을 베는 듯한 겨울바람. 땅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진 밥알. 주섬주섬 그날 아침밥을 주워서 담는 손.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참함은 차가운 이구나. 이렇게 냉혈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박제시키는구나.’    


그렇게 도서관에 도착하면 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흉내 내는 수준이었지만 다른 책벌레들은 다 그랬습니다. 다들 자기 자리가 있었습니다. 전공이 경영학이라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우들은 주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주요 회계법인에 잘도 입사를 했습니다. 묵묵하게 공부하던 한 동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설레발이 없었습니다. 말이 항상 과거형이었습니다. ‘형, 저 오퍼 받았어요,’라고. 회계법인에 들어갈 때도 그랬고, 나중에 MBA를 갈 때도 그랬습니다. ‘형, 저 오퍼 받았어요.’ 녀석은 자주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은 후 문자로 새로운 이메일 주소를 보냈습니다.   

‘XXXXX@hbs.edu’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더군요. 다른 친구들이 공부를 하려면 홍이처럼 하라고 했었는데, 명불허전이었습니다.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할 만한 한 이력은 아니지만 저도 4학년 1학기 때 한 회사의 상반기 공채에 합격했습니다. 운이 좋아서 처음에 지원한 회사에 바로 합격을 했는데, 우연찮게도 그 회사였습니다. 혁이랑 같이 명동에서 괄시를 받았던 그 옷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이제 4학년 2학기만 잘 보내면 되었던 저는 여름 방학이 되자 그간 미뤄두었던 한 가지 일,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온 구절,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그 구절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제 밖의 무엇이 - 그것이 사람이든 사회든, 권력이든 자본이든 – 정해버린 자격에 무의식적으로 굴복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읽기 전에 개츠비가 왜 위대한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속 시원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정독에는 꼬박 한 달이 걸렸습니다. 읽는 데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읽다가 답답하면 종로의 큰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각 출판사별 <위대한 개츠비>를 모두 모아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찾아 비교했습니다. 모두 여덟 종 정도 되었는데, 저마다 조금씩 번역이 달랐고 오히려 제 맘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역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글을 옮겼는지 의심되는 경우도 많았고,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비교하려던 부분만 쏙 빠진 번역본도 있더군요.  

   

그렇게 힘겹게 읽은 책은 제게 보석같이 빛나는 구절을 안겨주었습니다.  

“A figure… with his hands in his pockets regarding the silver pepper of stars… to determine what share was his of our local heavens.”    


"Silver pepper of stars..."

 

‘은빛 후추를 뿌려 놓은 듯한 별 밤’이라니…. <The Great Gatsby>의 이 구절이 저는 너무나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볼 때면 언제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저 하늘 어디까지가 나의 것일까?”    

 

빌 게이츠의 서재에는 돔 형태의 지붕 천장에 <위대한 개츠비>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He had come a long way to this blue lawn, and his dream must have seemed so close that he could hardly fail to grasp it.”  

(그는 먼 길을 와서 이 푸른 잔디밭에 이르렀고 이제 그의 꿈은 아주 가까이 있어서 그는 그것을 놓칠 일이 없어 보였다)  


길바닥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과 큐폴라(cupola)에 올라 별에 닿으려는 사람... 눈 앞이 흐려지다 다시 밝아지자 <위대한 개츠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책갈피 삼아 꽂아 두었던 그림이 보였습니다. 그 그림, 샤갈의 <도시 위에서>를 책에다 붙이며 저는 제 결심과 바람도 마음속에 풀칠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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