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글 Sep 26. 2022

바위 사람

진지한 잡담


미처 치우지 못한 죽은 화분들을 볼 때면 내가 전생에 바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전생의 기억 때문에 시들어가는 화분들을 자주 놓치고, 또 보아도 물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내가 내 손으로 불러들인 다른 생명의 생사의 기로에서도 나는 늘 내 바위에 대해 집착한다.  

크게 슬프거나 크게 기쁘지도 않음으로 한 자리에 아주 오래 앉아 머리카락을 꼬으며 나를 설득한다.

“아무래도 진짜 바위였던 것 같아…”

그리고 캔커피를 호로록거리며 어딘가에 놓여있을 내 전생의 바위가 빗물을 맞고 또 맞아 쩍 갈라지는 어느 순간을 상상한다.

그럼 갈라진 바위 단면의 흑백 드로잉 같은 그림자를 보며 ‘작품이다!’ 하고 물개 박수를 치고

속이 뻥 뚫리는 ‘쩍’ 하고 터지는 소리에 깔깔 웃고

날아다니는 이쁘장한 파편들을 향해 눈밑 애교 살을 한껏 부풀리며 윙크를 날리는 그 연극 같은 순간을 상상한다.

상상의 끝에 다달아 다시 책상에 앉으면 시든 화분이 내게 혀를 차며 비난한다.

“그 시간에 물이나 줬으면 소중한 생명 하나를 구하는 건데…”

그럼 나는 이제는 뻔뻔한 얼굴을 완벽하게 완성하고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외친다.

“너무 죄송합니다만 저는 전생에 바위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말잇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