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워홀+372] 영어도 못하는데 왜 친구가 많을까

by 콘월장금이

작년 이맘때쯤 너의 앞날은 연두빛일거라고 자가격리 중이었던 호텔 앞 나무가 말하는듯 했는데, 어느덧 계절의 한바퀴를 돌아 다시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다.



남들이 움츠리고 있을 때 기회를 보고 행동하자고 해서


한창 공항이 조용하던 시기에 영국으로 떠나왔다


일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상황도 많이 나아져서 하늘길을


비교적 자유로이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 제대로된 사교육을 받은적 없던 나는 그 시절을 알바를 같이 병행하면서 보냈던거 같다


아마 육남매 중 내 순서까지 학원비가 닿기엔 역부족이었을텐데 그당시엔 학교 끝나고 학원 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그당시에는 학교친구들 말고도 학원 친구들이라는 무리를 형성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 기억에 인생 최초의 알바는 초등학교5학년때쯤인가


육상부 언니를 따라 이틀정도 했던 열쇠가게 스티커 붙이기였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로 가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열쇠가게 스티커를 붙였다. 칠천얼마 정도를 벌었던거 같은데 그걸로 곧장 롯데리아에 가서 양념감자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던 까물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때에는 주말 뷔페 알바를 병행했고


그걸로 나름 잘 생활했던거 같다. 고등학생때는 졸업식 꽃다발 판매도 잠깐 했었고, 고2랑 고3때는 학교 끝나고 피부관리실에 가서 알바를 했다. 아, 횟집 알바도 잠깐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시기에 무척 고됐던 12일이었다.



피부관리실에서 일하던 경험은 자연스럽게 피부미용과로 나를 이끌었고, 대학생이 되기 전 방학때는 뚜레쥬르에서 삼개월정도 일했었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꾸준히 편의점에서 주말 알바를 하며 밥값이랑 교통비를 충당하곤 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피부미용과로 넘어오니 생각보다 공부를 안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나름 상위권에 머물며


장학금도 몇차례 받았다. 등록금을 보태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길 이렇게 큰 돈을 학비로 내본 적이 처음이라


이 배움으로 꼭 인생의 뽕을 뽑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졸업 시기가 되었을 때도 졸업보다 3개월정도 이른


조기취업을 선택했다. 돈이 필요했고, 더이상 학기말의 대학교에서 배울게 없다고 느껴졌다.



훗날, 피부미용 경력이 6년차쯤 됐을 때 나는 처음으로


조기취업을 후회했다. 그리고 초등학교5학년의 나부터


현재까지 쉬지않고 일해온 내가 너무 가엾게 느껴졌다



인생이란 뭘까..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시기가 그때다. 너무 두렵고 무서웠으며, 당장이라도 이 결정이


타인보다 도태되고 망하는 길일거라 생각했음에도


나는 결정했다. 이 길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다 받아들이겠다고, 없어질 때 없어지더라도 하고 싶은거 하다가


가자고 말이다.

-



여전히 영어를 못한다.

공부 보다는 직접 부딪히는게 익숙한 것 같다


그래도 고등학생때는 중간쯤, 대학생때는 상위권의 성적에 머물렀었는데 영어, 수학, 과학의 과목들은 거의 하위권이었다.



( 출근해야 돼서 오늘은 이 정도만 적어보고

나중에 시간나면 더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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