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시골에 살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내가 시골타령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마치 내가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뭔가 안 풀리고 억울한 이 느낌과 우울감이 때때로 찾아와서일까.
그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결혼 적령기를 지나 결혼했음에도 남편에 의한 시골 생활은 스스로를 피해자처럼 느껴지게 하곤 한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이곳에 살 수 있을까
발버둥 치듯 벗어나려 해도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이 생각은 환경 탓만 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새로운 비자를 받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행운이고 지금까지 어찌 된 이유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다행인 것이다.
인생에 벌어지는 일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싶으면서도 마치 도파민 중독처럼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삼삼한 시골생활을 도통 적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환경은 같은데 분명히 여기가 좋아 사는 이들도 있을 건데 나는 왜 이리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것인지 최근에는 악몽도 꽤 꾸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무서운 기분에 시달리는 게 나 정말 괜찮은 건지.. 스스로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운이 좋아 남편 덕분에 영국에서 더 오래 살게 되었고, 워홀러 시절에는 그런 경우를 선망하듯 바라본 적도 있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하는 것인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좋아 보이는 것이 사실은 열심히 버텨야 하는 일인지는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다. 삼시세끼 잘 먹고 내가 일하는 날에는 남편이 주방을 도맡아 내 점심도시락까지 챙겨주는데 왜 나 혼자만 이리 적응을 못하고 마음이 휘둘리는지 모를 일이다. 나만 잘 살면 될 거 같은데... 사실 그 사이에 이 동네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그들도 이곳에선 외국인이었고 도통 적응을 못하고 떠난 것이다.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차라리 내가 조금 더 마음과 정신이 아파서 이런 이유로 이곳을 떠날 수 있다면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까지도 말이다.
조금 더 젊었던 20대에는 머릿속이 꽃밭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성선설을 믿었으며 사람들은 다 나를 도와줄 것만 같고 세상은 좋은 곳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생각을 대체적으로 하며 살았던 거 같다. 그런 시기를 보내봤으니 30대에는 조금 더 고뇌에 찬 이면의 삶을 살아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신의 뜻에 이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대체적으로 살만한데 왜 나는 이토록 무료하고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지.. 사람들이 그리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 가장 평온하고 잔잔한 날일 수도 있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저 멀리서 무지개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