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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미 May 31. 2023

그래, 난 발리에 가야겠어.

1주일 만에 준비하는 1달 발리 워케이션

삶의 속도를 확 늦추고 싶었다. 생경함에 기뻐하는 에너지를 내 몸 가득 채우고 싶어졌다. 전혀 다른 곳에 나를 놓아두어서, 매 순간 새로운 자극이 있는 곳에서 기뻐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여러 곳을 살펴보다가 결국 발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휴양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해양 스포츠에도 감흥이 없던 내가 발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정글과 습기를 머금은 젤리 같은 기후 때문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한국의 차디찬 겨울과는 정반대다. 후덥지근한 기운과 약간의 끈적임이 느껴지는 공기는 오히려 좋다. 초록으로 가득한 싱그러움이 가장 그리운 겨울이라서 그런지 발리 우붓의 정글에 마음이 뺏겨 버렸다.

그렇게 이런 풍경들을 만나 마음껏 기뻐했다.

지난해부터 달려왔던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간에는 뜬금없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도 할 정도로 벅차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 모든 것들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속된 말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에도, 일을 끝내기로 마음먹는 것은 더 많은 일에 대한 압박감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견뎌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급하고, 혹독했던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의 순간이 왔고 나에게 보상을 해 줄 차례가 되었다.


순식간에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다른 곳을 살펴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냥 정하고 일단 계획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초록과 후덥지근함을 즐기기에는 우붓(Ubud)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붓에 1달 동안 지낸다는 계획이고, 처음 3일의 숙소만 정해두었다. 가서 돌아보며 제일 느낌이 가는 곳에서 지낼 생각이다. 일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인데 그러기로 마음먹는 내가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좋아.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었어.


그러다가 마냥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평일에는 일도 해야 하는 워케이션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반드시 확인해두어야 하는 와이파이부터 책상까지 일 할 수 있는 여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발리는 호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고 들었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여유로운 성격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일부 코워킹 플레이스를 제외하고서는 카페를 다니며 여유롭게 일하는 노마드가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앗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가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 또 그렇게 놓아버렸다.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나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주일.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여행준비를 한다. 퇴근하자마자 네이버 카페부터 에어비앤비까지 온통 발리 생각뿐이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남들과 비교하던 시간들이 없어졌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번 발리 워케이션의 의미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자주 스쳤다.


곧 닿을 그곳을 상상하고, 지도 속의 거리와 상점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 속에 있는 나를 또렷하게 상상해 보며 행복해하는 지금. 결국에는 그곳에 닿아 현실로 만들면 짜릿하기까지 하겠지? 그 순간 나는 마음껏 기뻐할 테다.

생생하게 꿈꾸던 순간들을 마음껏 기뻐했다.


여행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과 많이 닮았다. 또렷하게 상상하고 이루어내는 성공의 과정들이 여행에 담겨있다.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어긋나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가끔은 화가 치솟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행 중이고,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상태이기 때문에 장애물들은 나를 망칠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있는 상태다. 나는 기어코 모든 역경들을 이겨내고 나만의 행복을 찾아내고야 만다. 인생의 여러 모습을 다채롭게 겪으며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어서 여행은 더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여행을 하면 작은 성공들을 내가 만들어낸다. 상상을 구체적으로 할수록 현실에서 느끼는 행복과 만족은 더 커진다. 꿈을 이루어가는 맛을 여행을 통해 제대로 만끽한다. 그래서 애써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짜며 여러 방법들을 살펴보면서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여행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새삼 생각했다.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가는 달콤함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굉장히 많은데, 원칙이 없으면 더 좋은 것이 없을까 계속 두리번 대며 시간을 낭비한다. 세상에 더 좋은 것은 널렸기 때문에 아차 하면 하루종일 고민이 둥둥 떠다니다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준비할 때부터 갈팡질팡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면 순식간에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쏟아질 텐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을 준비했냐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며 발리 1달 워케이션의 원칙을 세웠다.

1. 환기, 새로운 자극을 위한 여행. 순간을 만끽하고 기뻐하기.
2. 다시 오지 않을 순간. 돈 때문에 후회 남기지 않기.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기갈나게 하기. 워케이션의 Work를 잊지 않기.


이제 곧 시작하게 될 발리 1달 워케이션. 나는 어떤 세상을 만나면서 한없이 기뻐할까. 사진만으로는 상상이 닿지 않는 순간들이 펼쳐진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요즘이다. 아 이제 진짜 모르겠고, 떠나는 것만 남았다. 가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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