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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미 Jul 04. 2023

Mt.Batur에서의 일출

1717M의 산을 야밤에 오른다는 것은

Mt.Batur 에 올라 일출을 봤다. 지프차를 타고 오르는 투어도 있었지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멀미를 하는 것보다는 두 발로 오르는 게 훨씬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새벽 2시에 일어나 출발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발리에서 트래킹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흔쾌히 예약했다. 출발하는 날 확인 연락이 오고 시간 맞추어서 숙소 앞으로 픽업을 와주어서 굉장히 편했다.


새벽의 우붓 시내는 낯설었다. 사람과 오토바이, 차로 와글거렸던 익숙한 거리들이 새롭게 보였다.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구나 싶어서 살피다 보면 금방 교외의 로컬 마을이 펼쳐진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정말 곡예하듯 꼬불꼬불 가다 보면 약간 귀가 먹먹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제 고도가 높아졌나 보구나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어두운 숲에 가득 둘러싸여 있었다. 곧이어 도착하고서는 따뜻한 커피로 일단 정신을 차리고 헤드라이트를 하나씩 받았다. 이런 까만 밤에 산행이라니.. 한국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짓인데 발리에서 흔쾌히 결심한 내가 신기했다.

화산폭발로 생긴 산이어서 그런지 모래는 까만색이고 곳곳에 용암이 굳어서 생긴 바위들이 있었다.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어려웠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중간중간에 산악 바이크 택시가 있었다. 처음에는 산악 바이크 동호회인가 했는데 ‘Transport’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곁에 가서 호객을 하는 것을 보고 택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식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올랐다. 맙소사 이 깊숙한 산속에서 무엇을 믿고 저 산악 바이크에 내 몸을 맡긴다는 거지… 오토바이를 많이 무서워하는 나는 다시 한번 산을 걸어 올라갈 힘을 냈다.


생각보다 구름이 많이 껴서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날이 밝아오고 구름이 살짝씩 걷히면서 바투르 호수도 보이고 저 멀리 아궁산도 보이면서 멋진 일출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한국에서나 발리에서나 역시 등산은 계속 10분 뒤면 도착한다는 거짓말 덕분에 정상에 간다. 3번 정도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말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정상은 1717M. 정상에 오르니 아직도 활화산이라는 아궁산이 보였다. 


내내 어두웠던 까만 하늘이 조금씩 푸른색을 띠며 선명한 붉은 띠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름이 많았지만 그것마저 좋았다. 발리의 일출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에너지를 가지고 있구나.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발리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했다. 뜻밖의 수확은 바투르 호수였다. 사실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호수가 있는지도 아예 몰랐는데 생각보다 엄청 크고 잔잔한 데다가 주변에 집들이 모여 있어서 특유의 따스한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물안개가 호수를 가득 채우는 모습을 산꼭대기에서 보면서 자연의 움직임을 실감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우리의 컨디션을 챙겨주었던 가이드는 뚝딱 샌드위치와 계란을 만들어왔다. 함께 고생했던 우리 팀은 일출을 보며 나눠준 샌드위치와 계란을 먹었다. 바투르산의 돌을 갈아서 만들었다는 팔찌도 기념으로 함께 샀다. 돌아가며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 물어보고, 일출이 보이자마자 다 같이 탄식하는 우리 팀 사람들을 보면서 국가도 성별도 인종도 모두 다르지만 결국 사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출도 인상 깊은 아름다움이었지만 밝음이 차오르고 새가 지저귀는 내려오는 길이 더 예뻤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초록들은 얼마나 싱그럽고 푸른지 삶의 해상도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 처음 보는 나무들과 이끼들. 생경한 자연의 풍경에 뜬금없이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올라갈 때는 언제 이 길이 끝나나 싶어 동동거렸는데, 내려갈 때는 정말 피곤한데도 매 순간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 길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동동거렸다.


사실 나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도생활 그리고 이어진 군생활에서 원치 않는 등산을 어린 나이 때부터 굉장히 많이 했다 보니, 등산은 운동과 기분전환이 아니라 해야만 해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번 바투르 산 일출등산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결정이었고, 등산에 대한 관점이 조금은 바뀐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몸의 자극도, 스치는 공기의 온도와 질감도, 마주하게 되는 풍경의 시야도 달라지는 등산만의 매력이 있었다. 여행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삶의 다른 자극들을 기분 좋게 맞이하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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