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묻고 함께 답찾기" - 참배움은 살맛이 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래가 흔들리고 있다.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에서 행복한 배움을 맛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함께 힘을 모으기보다 남을 짓밟듯 '경쟁'하는 배움이니까. 식민과 독재의 틀 안에서 억지로 강요했던 배움의 연장이니까. 실천하지 않아도 이론만으로 넘어가는 ‘거짓배움’이니까. 모두에게 '교육'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학교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하는 교실을 보라!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재미없다는 학생들의 표정들이 아닌가? 날마다 베풀어지는 ‘교육(가르침)’은 학교에서 겉돌고 있다. ‘수능' 인강과 '수능특강'과 '수능 완성’의 문제 풀이에 코박고 따라가는 고3 학생들은 터널 속에서 힘들 뿐이다.
이처럼 ‘(교실)수업’이 겉도는데 학교생활기록부로 학생을 뽑는다고?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이래도 왜 등급의 허울에 얽매여만 할까?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부정'의 그림자가 도사린 '학생부'를 신주처럼 모시면서.
그러면 배움터(학교)의 선생님들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1980년대 뒤로 1995년 5.31 교육개혁을 거쳐 2014년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대부분 '진보 교육감'이 선출된 오늘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화하며 혁신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런가? 여전히 교실 수업과 학교의 일상은 21세기 학생들의 '내일'을 가두고 있지 않은가?
학교의 실상은 서양 흉내내기, 일본 따라배움의 20세기 틀에서 입시 경쟁과 효율만을 내세우지 않는가? 학생들은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학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교육비에 시달린 채 ‘노후 준비’마저 차압당한 지 오래다. 무엇보다 '교사'는 하나뿐인 ‘정답’만을 죽은 ‘교과서’에서 찾는 기술력으로 평가할 뿐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저마다 밥맛을 잃어버리고 사는 게 죽을 맛이라 말한다.
도대체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삶을 가꾸는 데 꼭 필요한 일인 배움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움은 배움의 알맹이인 ‘앎(지식)’이 몸과 마음에 배어드는 과정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의 ‘버릇’도 ‘배우다’와 마찬가지로 ‘배다’에 뿌리를 둔 것이고. 배우면 절로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어 몸을 지키듯 나날이 ‘앎(지식)’을 익히고 배움에 힘써야 한다. 마음을 잘 다루며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학생들은 묻고 있다. "우리들의 학교엔 진정 배움이 있습니까? " 하고. 학생들이 수업하며 스스로 호기심을 지닌 채 묻고 있는가? 아니다. 스스로 물은 것을 두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답을 찾고 있는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학생들이 참배움으로 스스로 묻고 함께 답을 찾으며 재미를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
진주여고를 2015학년도에 자퇴한 김다운 학생의 학교 방문 시위
가르침(교육)은 무엇을 말하는가? 19세기 뒤로 근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공교육'의 틀아래 대부분 선생님의 전달 내용을 비판없이 따라서 배우는데 그친다. 그만큼 ‘가르침(교육)’에 따라 더욱 빨리, 쉽게,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오히려 잘못 배워서 ‘옳지 않은’ 거짓배움에 그칠 수도 있다. 배우는 이가 스스로 ‘헤아림’ 이나 ‘깨달음’이 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침(교육)’은 스승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스승이 잘 가려서 배우도록 이끄니까.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달랐다. 남과 북녘의 독재정권에서는 달랐다. ‘교육’이란 이름의 ‘따라배움’을 거치게 하면서 시민들을 ‘거짓배움’으로 이끌어 온 것이다. 게다가 '1등 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던가? '시험'이란 틀로 경쟁 배움을 부추기면서?
이제껏 '교육'은 무엇이었나? '따라배움'일 뿐이었다. 남이 가르치는 것을 따라서 배우며 '정답'을 찾고 외는.
하지만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나라를 잃고 나서도 '자강'의 노력을 했었다. '학회', '야학'과 '서당' 등의 배움마당에서. 우리 겨레는 배움에 나라의 운명을 걸었다. 꾸준히 배움에 힘써 왔다. '아는 것이 힘'이니까. 나아가 '실용'으로 나라를 도로 찾고자.
1945년 가까스로 도로 찾은 나라. 하지만 남북이 갈라진 채 미소 군정을 거치고 좌,우 이념 대립을 극복하지 못 했다. 저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을 만들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하지만 적어도 남녘은 독재에 저항했고 ‘씨알(시민)’은 참배움의 길을 당당히 걸어오지 않았던가? 스스로 헤아려 묻고 함께 답을 찾지 않았던가? '배움' 의 길에서 '깨달음'의 보람을 맛보며.
여기서 우리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왜 학교가 무너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마련하려 한다. 잘못을 깨달은 만큼 새삼 무너지는 학교를 그대로 둘 수 없으니까. 이제라도 무너지는 ‘학교’를 올바로 세울 수 있을까? 시원스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학생들부터 희망차고 당당하게.
이런 절실한 생각으로 다시 묻게 된다. 과연 모두가 살맛나는 ‘배움’은 없을까? 그렇다! 배움의 다른 하나는 스스로 헤아려 ‘앎’을 배우는 일. 이 전통은 인류가 있은 뒤로 줄기차게 펼쳐져 온 것. 우리는 이것을 ‘참배움’이라 할 수 있다. ‘앎(지식)’은 몸과 마음에 배어듦을 넘어서 새롭게 깨닫게 한다. 아직 깨닫지 못한 것들을. 모름지기 참삶을 가꾸고자 하는 그대라면 나날이 참배움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제대로) 익힘’에 힘써야 한다. 몸과 마음에 배어들도록. 배움이 더욱 확실히 자리잡도록 해야 하니까.
오늘 <참배움연구소>와 <참배움학교연구회>를 비롯해 뜻있는 배움지기(교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주시경을 이은 한글학자로 초대 편수국장인 외솔 최현배를 새삼 되새긴다. 그는 1963년 <나라건지는 교육> 을 펴냈다. 1950년대 초등학교 입시 문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대학 입시 문제로 비롯되는 '교육'의 폐해. 당시 그의 고민과 대안이 녹아든 책이다.
그러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지옥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마다 참삶을 가꾸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참배움의 기쁨과 보람이. 대한민국이 거듭나는 모습을 기대한다. 이제는 '나라건지는 교육'이 아닌 '나라건지는 참배움' 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을 그려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