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혁명’이 아니라 ‘배움 혁명’이다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교육 혁명’이 아니라 ‘배움 혁명’이다


교육부 관료들과 교사 단체를 비롯한 우리 ‘교육계’의 생각 없는, 오래되고 '나쁜' 버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얼치기 든사람(지식인)들이 '학벌'을 내세우고 '학연'을 맺어 '학교'와 '언론사'에서 '참'이 드러나는 교과서나 기사가 아닌 ‘거짓 교과서’나 ‘기사’로 사실 전달마저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꼰대’와 ‘기레기’ 들이 거짓말을 일삼았다.

더욱이 ‘한자적기’를 내세웠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밝힌 헌법 제1조와 달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지냈거나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이 ‘국어기본법’을 어기며 ‘초등학교 한자 교과서 병기’를 내세우고 이것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1)

① 누구나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는다. (입시제도의 속뜻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② 한말글 배움(국어교육)은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문법 등으로 어렵게 배운다.

③ 신문*방송 등에서도 빌린말(차용어)를 마구 쓰며 용어는 되도록 어렵게 쓴다.

④ 민중이 깨어나면 큰일 난다.



(1)에서 보듯이 ‘입시제도’에 얽매인 ‘(초중등) 교육’의 또다른 실상은 어떠한가? 무엇보다 ‘교육’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교환가치)이었다. ‘내 돈 내고’ 학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하고 있으니까. ‘상대평가’로 ‘일정 수의 패배자’는 ‘실패자’로 낙인찍히며 ‘불량품’이나 ‘함량 미달 학생’이 생산됐다. 책임은 ‘학생(배움이)’에게 돌리며 ‘머리가 나쁘다’, ‘노력을 덜 하였다’, ‘상대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교육’은 처음부터 일정 수의 학생들이 불량 등급을 받게 되어 있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대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에서 보듯이 점점 더 가열되는 경쟁 입시의 도가니 속에서 학생들은 꼼짝하기 어려웠다.


소통(묻고 답하며 읽고 쓰기)과 어울림을 즐기는 행복 배움


20세기 성장 사회에서는 퍼즐형(학력) 사고와 정보를 처리하는 힘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하나의 정답을 찾을 때는 조금이라도 ‘빠른 머리 회전’으로 정보를 처리하는가에 관심이 쏠렸다. 정답을 찾고 알아맞힐 수 있는 ‘보이는 학력’을 기르고자 했다. 하지만 21세기는 성숙 사회가 아닌가? ‘유연한 머리’로 정보를 편집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해진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선 레고형 사고와 ‘정보 편집력’이 필수 기량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만들어 내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조합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그런 가운데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젠 적어도 ‘배움을 즐기는 행복 교육’이 아니라 소통(묻고 답하며 읽고 쓰기)과 어울림을 즐기는 행복 배움 정도로 말해야 옳은 말이 될 것이다. 단순히 퍼즐 조각을 정해져 있는 장소에 넣는 것이 아니라 레고 블록을 새롭게 조립하듯이. 이처럼 저만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배움 혁명’이 필요하다.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에 따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용 없이 경제 활동을 하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노동과 생산의 틀이 바뀌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아직 이러한 시스템에 적합한 삶의 안전망을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시장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법과 질서는 아직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사이에 불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술이 가져다 준 풍요를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데 쓰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풍요로 가져 갈 것인가는 사람들이 어떤 질서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두루누리(유비쿼터스), 모바일 인터넷,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특징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등장은 사회에 미치는 충격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육체기술, 인지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쇠퇴하고 분석과 대인관계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위한 교육계 혁명은 필수다.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등 과학 기술의 경계를 넘어 모든 기술이 융합하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 따라 뿌리(근본)부터 바꾸자는 ‘교육개혁’ 요구가 커지자 교육부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밝혔다. 또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라며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을 내세웠다. 하지만 과연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된 대입제도로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전과 달리 행복해질까? '행복'과 '교육'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써 버리면 행복해질까? 오히려 '고발당한 학교' 움그림(동영상)을 보면 잘 나오듯이 여전히 불행해지리라 여겨진다.



답이 있는 ‘교육 혁명’? 세상을 바꾸는 ‘배움 혁명’!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을 바꾸는 혁명이다. 사회 전체의 풍요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질서를 만들고 싶으니까. 하지만 ‘교육 혁명’은 아니다. ‘답’이 있음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하면서도 어찌 ‘교육 혁명’을 말할까? 여전히 ‘교육 혁명’이란 말치장으로 ‘흉내내기’에 머무를 듯하다. ‘지식 전달’하는 과정도 눈여겨 보라. ‘교육(가르침)’으로 미래 시대가 바라는 남다른 생각이 길러질까? 그 바탕은 ‘배움’에 있지 않은가? 묻고 답하는 배움 말이다.

이제 묻고 답하는 ‘배움’이 지닌 힘을 똑똑히 봐야 할 때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에서 올바른 소통은 ‘교육(가르침)’이던가? 이야기하듯 묻고 답하는 ‘배움’이지 않은가? 모든 일이 만들어진 까닭이 세상을 움직이는 여섯 가지 물음으로 비롯하였듯이. ‘촛불 혁명’은 어떠한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란 물음을 던진 것으로 비롯하지 않았는가?

세상을 바꾼 것은 물음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판’을 바꾸려면 꼭 해야 할 일은 나라임자들에게 ‘가르침(교육)’이 아닌 ‘배움’을 내세우는 것이다. ‘창의성’이 생기고, 그들이 ‘역발상’을 맘껏 하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생각을 저마다 떠올리도록 ‘묻는 것’에 거리낌이 없게. 그래서 현행 헌법 31조 ‘교육을 받을 권리’를 버리고 ‘배움’을 누리는 권리를 지키도록 헌법에 밝히자. 배움을 바라지하는 법안을 만들어 도와줘야 하니까. 학교를 비롯해 ‘관리하고 통제하는’ 행정틀도 버리자 대신 배움을 지원하는 ‘틀’로 고치고.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묻고 따지며 답을 찾고 깨닫는 참배움의 살맛을 누리게 하자. 이것이 ‘배움 혁명’이다.


○ 징검다리에서 만든 자료 화면입니다.

https://vimeo.com/176862899?ref=fb-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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